인간은 무언가가 목표에 불을 당겨주면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그런 존재다?
인간은 무언가가 목표에 불을 당겨주면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그런 존재다?
난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의심을 먼저 품었다. 이 문장이 사실이길 바라면서도 말도 안된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너무 멋있어서 오히려 의심스럽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고,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도 분명 존재하는데, 이 말은 모든 걸 지나치게 단순화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마치 의지가 부족해서 실패한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말 같았다.
하지만 이런 의심은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이어졌다. 정말 목표만 생기면 불가능이 가능해질까?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가지고도 같은 자리에 머루를까?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도 끝까지 가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멈출까?
이 문장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믿기엔 과장 같았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너무 희망이 없는것 같아 버리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맞다" 혹은 "틀리다"로 판단하기보다,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곰곰히 한번 깊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문장은 인간의 결과를 말하는 문장이 아닌것같다. 인간의 상태를 말하는 문장이 아닐까 싶다.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목표에 "불이 붙은 상태"에 대한 이야기같다. 불을 붙인다는 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감정이 개입되고, 이유가 생기고, 지금의 나로는 더 버틸 수 없다는 압박이 더해진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인간은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였다.
이 지점에서 의심은 조금씩 신뢰로 바뀌기 시작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건 기적이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 달라지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피하던 선택을 감당하고, 미루던 행동을 오늘로 끌어당기며, 실패의 가능성보다 정체의 위험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순간, 그때 인간은 분명 달라진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겠다. 이 말을 믿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불을 붙일 것인가? 였다.
방법은 솔직히 의외로 단순했다. 목표를 더 크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더 깊게 파는 것이었다. 왜 이 목표여야 하는지, 이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떤 상태로 남게 되는지, 그리고 그 상태를 정말 감당할 수 있는지, 이 질문에 솔직해질수록 목표는 추상에서 현실로 내려왔다.
이 문장은 막연한 희망의 문장이 아니었다.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말도, 무책임한 위로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불을 붙일지 말지는, 언제나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