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들은 대로 전할 수 있을까?
우리말놀이 (1) 얘들아, 책가방 싸자.
일곱 살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날이다. 초등생 아이들과 하는 글쓰기 수업은 이미 3월에 시작했으나, 일곱 살 특별활동은 한 달의 적응기간이 끝난 뒤에 시작하기로 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집중하는 시간이 짧으니, 40분이라고 해도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올해부터 아이들과 하게 될 이 특별활동의 이름을 [일곱 살 책가방]이라고 붙였다. 책가방을 싸듯이 한 해 동안 학교 갈 준비를 차곡차곡 챙겨 보자는 뜻이다. 한글도 배우고, 숫자도 배우고, 소근육을 키울 바느질도 하면서.
십여 년 동안 그만한 아이들과 하루종일 지냈고, 작년에도 비슷한 특별활동을 해봤으면서도 마치 올해가 처음인 듯 긴장되고 떨리는 건 또 뭐람. 그냥 새로운 아이들이라서 그런 거라고, 한두 번 진행하다 보면 왕년에 하던 가락이 나올 거라고 마음을 다스린다. ‘그나저나 첫인사는 어떻게 할까?’
일곱 살이라고 해도 낮에 잠깐 쉬는 시간은 필요하다. 신나게 몸을 움직이면서 놀고 나면 잠깐 쉬어야 또다시 놀 체력이 생긴다. 수업 전에 아이들이 삼십 분 가량은 쉬었을 텐데, 재*이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고 교사 품에 안겨 있다. 활동력이 충만한 저 아이가 저럴진대, 다른 아이들이라고 잠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 졸려.’라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컨디션이 최상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
대여섯 살 때 오가면서 나를 봤던 아이들은 내가 들어가자마자 “종이배!” 하고 부르며 와서 안긴다. 다리에 매달리고, 품에 와서 안기고. 아이들에게서 젖 냄새가 날 것 같아 나도 그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어본다.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아이들은 물론, 올해 새로 등원하기 시작한 아이들도 이미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갔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나를 어색해 할 수도 있으니,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기로 한다.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나씩 말해 보자고 했다.
“나는 종이배야. 나는 글씨를 예쁘게 쓸 줄 알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이가 말한다.
“나는 안 할래. 뭐 잘하는지 몰라.”
소*이도 세*이를 따라 한다.
“나는 이름만 말할래. 부끄러워.”
그런데 그 아이들이 진짜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엄청 큰 걸로 봐서. 어쨌든 아이들이 스스로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된다. 큰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놀면서, 살면서 배우는 것이 많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친구들이 교사요, 교재교구요, 교육과정이지 않았던가.
“그래그래, 그래도 돼. 자기가 뭐 잘하는지 모르면 친구들이 알려주자.”
누구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구는 친절하고, 누구는 다정하고, 누구는 달리기가 빠르고. 아이들은 그동안 지내면서 알게 된 친구들의 장점을 잘도 찾아낸다.
그러다 율이 차례가 됐다.
“율이는 귀여워.” “율이는 한글을 잘 알아.”
물론 이런 것이 율이의 특징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율이는 친구들에게 책을 잘 읽어줘.”라는 말이 나왔을 때 격하게 호응해 주었다. 귀엽고 한글을 잘 아는 것보다는 글씨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책을 잘 읽어주는 모습이 더 칭찬해 줄 일이 아니겠나.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 바퀴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꽤 지났다. 우*처럼 이미 방바닥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난 아이도 있고, 낮잠 시간이 몸에 밴 시간이라 그런지 바닥에 누워버리는 아이도 있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서 오늘의 수업인 ‘말 전달하기’를 시작한다.
앞으로 열 번에 걸쳐서 진행하는 수업은 ‘우리말놀이’다. 공동육아에서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문해교육 과정이 없어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격으로 내가 연구하고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깍두기공책에 통문자를 받아쓰면서 배워도 한글을 익히기야 하겠지만, 한글 창제에 깃든 아름다움을 간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글 창제원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발도르프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도 배웠다. 우리 전래 말놀이와 접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았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적용하고 평가하고 다시 적용하기를 십여 년. 이제는 이 교육과정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우리말놀이’에서는 일단 ‘듣기’에 방점을 찍는다. 잘 듣고 잘 말하면, 나중에 잘 읽고 잘 쓰게도 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말놀이는 자기가 들은 말을 그대로 옆 친구에게 전달하는 ‘말 전달하기’ 놀이로 시작한다.
이 놀이를 할 때는 늘 두 모둠으로 나눠서 게임처럼 진행했다. 그랬더니 두 모둠이 서로 경쟁이 되더라. 그래서 올해는 동그랗게 앉은 채로 놀이를 시작했는데, 두 명이 지나가기도 전에 이미 내가 전한 말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나는 ‘종이배, 안녕!’이라는 말을 했더니, 그다음 아이가 ‘똥배? 똥꼬?’라고 말한다. 아이들 모두 웃으며 바닥을 뒹군다. 여기에서 일차 멘붕! 아하, 웃기는 말로 변질될 만한 문장을 말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어쩔 수 없이 두 모둠으로 나눠 앉았다. 경쟁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 모둠만 나누고, “1대 0이야.” 따위의 말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격적으로 말 전달하기 시작.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전할 수 있는 말을 찾는다. 돈가스 집 딸내미가 맨 앞에 앉아 있을 때는 “돈가스는 맛있어.”라는 말을 전달하게 했더니 어려움이 없다. 아이들이 잘하고 노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말도 끝까지 잘 전달되어 왔다. 물론 “김치는 매워.”와 같은 말은 중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어디에서 그 말이 사라졌을까 한 명 한 명 거슬러 물어본다. “네가 잘못 말했잖아!”라고 큰소리치는 옆 친구의 추궁에 “난 맞게 말했단 말이야.”라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나왔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 전달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수업 시간이 다 지나갔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우리말놀이’를 시작한다. 우리말놀이를 할 때마다 부를 ‘우리말 노래’를 크게 틀어주면서 마무리를 한다.
다음 주에 만나자고 수업을 마무리하는데, 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한다.
“그런데 왜 책가방 안 만들어?”
다른 아이들도 여럿이 합세한다. “책가방 만든다고 했잖아?” “우리 엄마가 책가방 한다고 했는데?” "책가방은 언제 만들어?"
여기에서 두 번째 멘붕.
‘아, 음, 저, 있잖아, 얘들아. [일곱 살 책가방]이라고 책가방을 직접 만드는 건 아니란다. 이름을 잘못 지었네. 내가 잘못했네.’
얘들아, 나도 들은 대로 전하는 게 쉽지 않단다. 뒷담화하지 않고 말하기는 더 어렵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