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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페이, 나는 반댈세

2023년 6월 19일 월 / 형식을 바꾸는 데도 때가 있다

by 글방구리

몇 주 전엔가, 가톨릭신문에서 '가톨릭 페이'라는 전면광고를 보았다. 네이버 페이, 삼성 페이, 이런 것들처럼 앱을 통해 교무금도 내고, 봉헌금도 낼 수 있단다. 그걸 보면서 처음에 든 생각.

'이거 사기네. 아무리 광고라지만 잘 가려서 실어야지, 이런 사기성 광고를 실으면 안 되지.'

처음엔 그렇게 웃으며 넘겼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광고가 아닌 기사로 같은 내용이 올라온 것을 읽게 되었다.

'그게 실화임? 미사 때 봉헌금을 실시간 이체하라고?'

말이 안 나온다. 둘 중 하나다. 내가 화살 날아가듯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 유물이거나, 아니면 헌금을 거두어들이려는 교회의 잔꾀거나.


성당에 가면 얼핏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르신들이 젊은이들보다 훨씬 많다. 휴대폰 앱으로 성가를 부르는 분들보다도 성가책을 뒤적이는 분들이 많다. 매일미사도 큰글자책을 찾으신다. 그런데 휴대폰 앱으로, 큐알로 헌금을 찍어 내라고?

*

며칠 전 사촌언니가 돌아가셨다. 부고가 날아왔고, 상주 명의의 통장에 부의금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형부를 일찍 보내고 수십 년 동안 혼자 세 아이를 키운 언니를 추모하면서 나는 굳이 은행에 들렀다. 현금을 찾고,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돈을 골라서 모양대로 차곡차곡 추렸다. 흰 종이 한 장에 돈을 잘 쌌고, 봉투에 정성껏 이름을 적었다. 은행에 가는 것부터 언니를 향한 내 추모는 시작된 거였다.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니도 그러셨다. 은행에서 대접받는 부자가 아니었던 시어머니가 새해에 신권을 만질 수 있는 때는 오직 설날 다음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세뱃돈으로 받은 신권이 있으면 시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돈을 살짝 더 주시면서까지 바꿔달라고 하셨다. 그 돈을 매 주일마다 성가책 사이에 고이 넣어서 가져가셨다. 신권이 다 떨어지면 어머니는 봉헌금을 내면서도 마치 죄짓는 것처럼 안타까워하셨다. '아이고, 새 돈이 없네. 돈이 더러워서 어쩌나.'라고 하시면서. 어머니의 봉헌금은 그렇게 일 년 동안 준비된 거였다.

나나 우리 시어머니만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다. 봉헌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웠다. 내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나 직장인 예비신자 교리를 할 때도 배운 대로 가르쳤다. 봉헌금은 한 주간 동안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고, 초기 교회 때는 노동의 수확물을 직접 가져왔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돈으로 내는 거라고. 그러니 최대한 정성껏 준비해서 정성껏 내는 거라고. 성당에 와서 미사 중에 내지만 그것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라고. 그런데 그걸 페이로 결제하라니. 식당에서 밥 먹고 결제하듯이, 버스 타면서 카드 찍듯이 앞에 나가서 그렇게 '찍으라는' 거다.

*

여름철이면 주보에서 종종 '민소매와 슬리퍼 차림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본다. 성당은 거룩한 곳이고 미사 전례는 예수님을 만나는 성사이니 예를 갖추라는 말이겠다. 또 미사 때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거나 하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그 뜻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한다. 겉으로 취하는 형식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내용을 담는 형식을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용만 중요하다면 민소매 아니라 발가벗고 미사에 온들, 그걸 갖고 뭐라 해서는 안 됐을 거다.

*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 신자들을 위한 배려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헌금을 더 많이 걷고 싶었다고 하면 솔직하다고나 해주겠다. 다행히 아직 우리 교구는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시행할 모양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처음에는 '헌금 찍는 일'에 어색해하던 신자들도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다. 봉헌한다는 마음은 편리함 속에서 결제한다는 태도로 교체될 테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마음이 행동이나 태도로 유지되기도 한다. 미사 중 분심이 들면 두 손을 합장하면서 마음을 다시 가다듬곤 한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듯, 형식과 내용도 그리 쉽게 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세계 최초라는 이 헌금 페이 결제가 두렵다. 하느님께 감사히 봉헌하는 마음마저 결제하는 시건방진 태도로 바뀌어 버릴까봐.


비판을 하려면 자세히 알아야겠다 싶어서 '가톨릭 하상'이라는 앱을 폰에 설치했다. 기도문이나 성가, 매일미사 탑재 등 가장 많이 사용되는 콘텐츠는 기존 '굿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발 나아갔다면 본인의 성사 정보(세례일, 견진일, 혼배일)가 기록되었다는 건데, 그나마 옛날에 수기로 작성되었던 세례장부는 이미지로도 볼 수 없다. 본당을 적어넣었더니 본당 미사시간 정보가 뜬다. 그거야 본당 주보에 이미 다 나오는 거라 사실 새로 얻게 된 정보도 아니다.


사무실에 가야 하던 교무금이나 기부금 처리를 하는 데는 효용성 있겠으나, 미사 중에 봉헌금을 페이로 찍어내라는 이 정책은 시기상조가 분명하다. 백번 양보해서, 시대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면, 이에 앞서 봉헌에 대한 의미부터 다시 새긴 뒤에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가톨릭 페이,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교회의 정책에서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기왕 돈 냄새나는 교회 일을 더 말하자면, 주교회의에서 펴냈다고 성서나 기도문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요즘엔 바뀌었는지도 모르지만 이십년 전, 내가 출판사에서 일할 때는 저작권 사용료도 일부 낸 걸로 안다), 그리고 매일미사에 실리는 '오늘의 묵상'을 온라인 매일미사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장사하고 있다는 찝찝한 느낌, 이거 내가 '꼰뜨라'라서 나만 느끼는 걸까? 내가 이상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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