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만 아니면 될까?

넷플릭스 <지옥>을 보고 나서

by 글방구리

"그거 보면 기분 나빠질 텐데 괜찮겠어?"

<넷플릭스>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 <지옥>을 보기 시작했다는 말에 대한 남편의 걱정이다.

나는 좀비가 나온다거나, 피를 철철 흘리는 귀신이 나오는 납량특집류의 공포영화, 죽고 죽이는 전쟁영화는 물론, 조폭들이 빠짐없이 등장해서 치고 때리고 부수고 싸우는 일명 '액션스릴러' 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를 다 빼놓으면 사실 별로 볼 것이 없어 주로 감동을 주거나 여운이 남을 만한 주제의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 보게 되는데,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아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경우에는 호기심이 생긴다. 지난 번 <오징어게임>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렇게 난리지?' 하는 궁금증 때문에 힘든 장면들을 꾹 참고 다 봤더랬다.

공포물들을 그나마 끝까지 볼 수 있는 건, '절대 착한 주인공은 죽지 않는 해피앤딩일 거야.'라는 믿음이 있거나 '이거 결말이 이런 거랬어.' 하고 자발적 스포를 당할 때다. 그래서 <지옥>의 줄거리를 미리 찾아보는데, 작품보다 먼저 접한 건 "사제가 본 넷플릭스 <지옥> 어떤 의미일까?"라는 영상이었다. 가톨릭 교계 내 방송사에서 올린 영상이고, 영성심리 쪽으로는 꽤 유명하신 신부님과 나눈 대담이라, 어쩌면 <지옥>에 대한 바른 해석이나 감상 방향을 알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정주행 시작. 처음에는 그저 '죄를 지은 사람들, 죽음을 날잡아 놓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심적 공포를 다룬 거구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공포나 불안감을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에 관한 거네?'라고 생각하다가, '어? 선을, 정의를 지킨다는 사람들의 또 다른 악은 뭐지?' 하다가, '죄 없는 이들이 당하는 무고한 희생은?'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건 수치심인가?' '사랑이 신의 의도를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다음에 남은 찝찝함은, 무섭게 표현된 괴물들에게서 온 것도, 새카맣게 타버린 시신도,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들도 아니었다. 죄를 짓든 안 짓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재해'인데, 그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돼, 내 일이 아니야'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 그래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일부러 찾아가서 볼 수도 있고, 휴대폰으로 촬영할 수도 있고, 인터넷에 올릴 수도 있는 거였다.


오래 전 아이들과 재미있게 보았던 예능 프로그램 중에 <1박2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지 모르겠고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복불복 게임이 있었다. 정해진 인원수보다 적은 잠자리를 놓고 게임을 해서 탈락시킨다든지, 겉으로 보기엔 똑같아도 내용물을 다르게 해서 골탕을 먹이거나 술래를 뽑기도 하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재미나게 보면서도 볼 때마다 마음에 걸렸던 건, 그렇게 게임을 하고 나면 걸리지 않은 사람이 "나만 아니면 돼!" 하고 즐거워하는 거였다. 옆에서 까나리를 한 컵 마시고 괴로워하든 말든,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찬 계곡물에 빠져야 하든 말든, 나만 안 걸리면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거였다. 나 역시 그걸 보면서 같이 웃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말이 무척 싫으면서도, 연예인들이 '웃자고'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까지 윤리적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꼰대이고 싶지는 않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지옥>을 보면서 '나만 아니면'-엄청난 재해도, 무서운 죽음을 당할 거라는 예고도, 그 예고 때문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는 삶도, 옆에서 싸우고 찌르고 죽이는 싸움이 나도-, 된다는 상황에 다시 맞딱드려진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되는 그 무리 속에 나도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함.


재해는 있고, 계속 있을 것이다. 세월호처럼 막자고 생각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재해도 있겠고, 코로나처럼 막자고 해도 잘 막아지지 않는 재해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실수나 죄로 인한 인재든,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해든 그것이 일단 벌어진 다음에는 인간이 재해를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럴 때 "하느님,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나요?"라며 '신의 의도'를 묻는다. 드라마에서처럼 재해를 죄 지은 인간을 벌하기 위한 신의 의도나 심판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다시 가톨릭 교리로 돌아와서. 예전에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죽어서 가는 또다른 어떤 공간'으로만 가르쳤고, 나도 어릴적 그런 교리로 배웠다. 천국은 꽃향기가 나고, 기다란 젓가락으로 산해진미를 서로 먹여주는 곳으로 그리고,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그 전에 연옥이라는 더 무시무시한 곳을 지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아이들에게 왜 그런 무시무시한 공포심을 조장하면서 가르쳤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그렇게 가르치진 않을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공간적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혼자 겪어야 하는 고통, 고통을 겪는 타인에게 무심한 개인들, 나만 아니면 유지할 수 있는 일상,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불안과 공포. 이것이 바로 그 자체로 지옥이다. 앞으로 갈 곳이 아닌, 지금 이 곳, 이 세상이 지옥인 거지.


그런 점에서 드라마 마지막 부분들- 죽은 이와 아무 관계없지만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는 노인, 살아남은 아기에게 자기 옷을 덮어주는 여인, 남에게 관심을 갖고 그에게 다른 길을 안내해 주는 택시운전수, 그리고 자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죽었다가 다시 몸을 입게 되는 여자-이 마음에 남는다. 내가 작가라면, 후속편에서는 부활한 삶과 천국에 관한 질문을 던질 것 같다. 아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미 <지옥>에서 보여준지도 모른다. 세상이 지옥일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생명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 신은 끝까지 함께해서 결국 생명을 구해내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 우리가 비록 미숙아로 태어나 아주 약하고 부족하지만, 또 말도 못해서 살려달라는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신은 그렇게 부르짖는 울음소리를 듣고 함께 해주실 거라는 것, 뭐 그런 것들....


2021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