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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멤버십,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둘 다 사양할게요. 신청도, 구독도.

by 글방구리

브런치에 접속하니 첫 화면이 '오늘만 무료'다. 남은 시간이 11시간 얼마란다.

'어? 이거, 데자뷔인가? 매우 익숙한데?'

검색하다가 잘못 누르면 연결되는 원치 않는 광고 화면이나 대형마트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하는 할인행사, 휴대폰 매장 앞에 도배되어 있던 문구들. 낚이는 줄 알면서도 작은 이익을 지나치지 못하는 내 이름은 '호갱'인지라, '무료' '특혜' '원 플러스 원' 같은 유혹에 매우 약하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오늘만 무료'라니! 이 작가 브런치를 들어가 봐야 하나, 마우스를 잡은 손이 움찔거린다.


'아니야, 그냥 지나가자. 무료라는 말이 없었다면 들어가 보지 않았을 제목이잖아.' 첫 번째 유혹을 넘었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어진다느니,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느니 했던 오래된 잠언 덕분이다.

내 브런치에 진입했다. 글쓰기 버튼 옆에 더 큰 '멤버십 작가 신청' 버튼이 선명하다. 내가 만들어 놓지 않은 프로필이다. '어쩌라고~!' 2,3초 눈을 두었다가 무시한다. '내가 돈 주고 읽어달라고 하면 모를까, 돈 내고 내 글을 읽겠다는 사람이 있겠어?' 주제파악을 잘 한 내가 멤버십 신청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마음 먹었던 덕분에 두 번째 유혹은 가뿐히 넘길 수 있었다.


주부도, 할매도, 글쓰기 교사도 아닌 '브런치 작가'라는 자리를 마주한다. 한 달에 서너 번 글을 올리지만 구독자는 좀체 늘지 않고 알림 종도 잠잠하다. 퇴직을 하면서 '사람은 사실 자기 아닌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덕분에 서운함도 없다. 나는 쓸 뿐, 읽는 건 '그들' 몫이다.


5초 후, 내가 글을 읽는 '그들' 자리로 온다. 게으른 독자인 나는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새 글 리스트를 몰아서 읽는다. 글감도, 장르도, 문체도 참 다양하다. '내가 왜 구독했더라?' 하는 의문이 드는 작가도 있다.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는 한 라이킷을 누르고, 격하게 공감될 땐 댓글을 쓴다. 영 아니다 싶을 땐 구독을 취소한다. 또는, 취소하려다가 구독자 수가 너무 적은 작가인 경우에는 멈칫. 그럴 땐 대부분 구독을 유지한다. 그들에게는 내 구독 버튼이 잠깐의 희망이 되었을 테니, 내 취소로 인해 실망하지 않길 바라서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안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 멤버십'이 정식 오픈한 이후로 몇몇 작가님들의 대문도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주로 구독자가 네 자릿수 이상, 한두 권은 출간한 글쓰기가 본캐인 작가님들이다. 프로필 사진 위에 초록 배지가 달려 있고, 하단에는 '멤버십 시작하기 월 4,400원'이라는 버튼이 있다. 평소에 그분들의 글을 애독해 온 나는 세 번째 유혹 앞에 선다.

'월 4,400원이라. 5천 원도 안 되는데 구독을 눌러야 하나? 구독을 한다고 내가 그 글을 다 읽을 수나 있을까? 돈을 주고 글을 살 만큼 이 작가님의 글에 목말랐던가? 아니면 그냥 응원한다는 표시로?'

마지막 유혹 앞에서는 꽤 생각이 깊어진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받은 세 번의 유혹에서 마지막 유혹이 가장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무척 순진했던 때가 있었다. 뭘 몰랐던 때다. 내 글이 연속해서 피드에 노출되고, 조회수가 떡상했다. 다음 메인 화면에 올라가기도 하고, 스토리 대문에 거의 한 달 연속 게시되기도 했다. 조회수를 알리는 알림 종은 초등학교 수업 시작종처럼 수시로 종을 울려줬다. '이게 뭔 일이래?' 덕분에 구독자 수가 2백 명 갓 넘은 내가 '어쩌다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난 내가 글을 제법 잘 써서, 독자들과 브런치 편집자의 눈에 띌 만한 글감을 골라서 그리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브런치의 세련된 호객행위, 거칠게 말하면 '사기'였음을 알게 된 건, 내 글보다 훨씬 더 길게 메인에 노출된 글을 읽으면서였다. 아무리 내가 문학에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도무지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글들이 자주 올라왔다. 내 글이라고 다르랴. 알고리즘의 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애할 때 그렇듯, 헤어질 결심이 싹트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미운점만 속속 눈에 띈다. 또한 상대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작가 데뷔와 출간을 꿈꾸는 무명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출판 프로젝트, 과연 투명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걸까? 배고픈 작가들에게 응원하는 마음에 그리 큰 수수료를 물어야 하나? 멤버십을 하면 글의 노출이 많아지고 출판사 출간 기회가 더 주어진다고?'

반갑게 읽던 작가들의 글이라고 해도 구독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지 못하게 한다는 발상. 작가가 힘들게 썼으니 돈 내고 읽으라는 발상. 너도 이제부터는 애써 쓰는 네 글을 돈 받고 팔라는 발상. 작가와 독자에게 윈윈 한다는 발상으로 시작했을 멤버십이겠으나 나는 사양해야겠다, 신청도, 구독도.


한때 캘리그래피에 꽂혀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내 마음대로 쓰곤 했다. 단오 즈음이면 부채를 만들고, 동지 즈음이면 이듬해 달력을 만들었다.

어느 해는 합죽선을, 어느 해는 천으로 된 부채를 주문했다. 어느 해는 고급 한지를 주문하고 어느 해는 화선지를 사용했다. 마음에 남았던 글귀를 고르고, 나름 정성을 다해 글씨를 썼다.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종이끈으로 제본하여 완성하기까지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부채든 달력이든,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었고, 달라는 사람에게 되도록 거저 주려고 했다. 그러나 거저 받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팔라고 했다. 나 역시 욕심이 생겨 팔기로 했으나, 내 글씨값, 그림값을 매기기가 참 어려웠다.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자체 제작하기에는 꽤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들어갔으나,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비쌀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달력이나 부채 따위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 역시 다를 바 없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월 4,400원은 집필의 수고에 비해 말도 안 되는 헐값이라고 생각되겠으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걸 굳이 돈 주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돈이 오가지 않아 더 뿌듯했던 부채와 달력처럼, 내 글도 누군가에게 공짜로 누릴 수 있는 정성스러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돈 받고 팔았던 달력과 부채들. 그러나 이젠 내 글씨를 팔지 않는다.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고, 달라는 사람한테 준다.

구독자가 수천 명인 작가가 부럽다.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해서 당선된 작가는 더욱더 부럽다. 그러나 나는 내 깜냥을 알기에 브런치의 미끼를 물지 않으려 한다. '그래요, 노출 빈도가 낮아도 괜찮아요. 출판사 출간 기회가 없어도 괜찮아요. 그냥 제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누구나 공짜로, 마음껏 읽으세요. 저 역시 공짜로 읽을 수 있는 글들만 읽을게요. 멤버십, 말씀은 고마운데요 저는 사양할게요, 신청도, 구독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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