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루는 다 아름답다

2025년 12월 31일, 포르투에서

by 글방구리

○...2025년을 시작할 땐, 이 해의 마지막날을 이 낯선 항구도시에서 맞을 줄 몰랐다. 어디 몰랐던 게 그뿐이냐. '지금 이 순간, 나는 여기에 있다'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 지난해, 두 아이를 통해 누린 기쁨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밥 해주고 빨래해준 것밖에 없는데도 자기 길을 또박또박 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게 대견하다. 그 아이 둘이 내 옆에 있다. 이 아이들로 인한 기쁨이 얼마나 큰지 오롯이 공감할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도 곁에 있다.


○... 올해도 배움은 지속되었다. 수많은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읽었다. 교실에 앉아 있어도 모든 학생이 모든 강의 내용을 다 알아듣는 건 아닌 것처럼, 내가 알아듣고 배운 부분은 극히 적다. 그러나 인내롭게 앉아서 귀 기울여 들으려 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올해 내내 인문학 크루즈 안에 타고 있었다, 들으며 읽으며 놀며 쉬며 배우며.


○...'약은 청지기'처럼 잔꾀를 써서 천국에 지인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지만, 그들이 겪는 단말마의 시간을 잠시 지켰으므로 내게 그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이 도와주러 오리라.


○... 반드시 만나야 아는 게 아니고, 반드시 알아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한 시간을 사랑하는 것이 함께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이 분명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아왔다고 착각했던 예수를 그렇게 새롭게 만나는 중.


○... 낯선 곳에서 2026년 날수 세기를 시작한다. 365번 세고 나면 박노해 선생이 쓴 바대로, "모든 처음은 다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맨 마지막날에 하는 것. 오늘은 "모든 하루는 다 아름답다"라고 말하며 걸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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