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별처럼 하늘에 뜬다

프롤로그 / '관티아고'에서 이미 시작된 순례길

by 글방구리

꿈은 마음에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 하늘에 뜬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 순식간에 쏜 화살기도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느 곳에 날아가 박힌다. 기도를 했던 나 자신은 정작 잊어버렸어도 그 화살을 맞은 하느님은 그 기도를 기억하였다가 적절한 순간에 응답해 주시듯, 시위를 떠난 꿈은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그 순간에도 어디선가 조용히 나를 비추다 때가 되면 존재를 드러낸다. 저 하늘의 별처럼.


2000년대 초, 우리 가족은 자주 캠핑을 갔다. 여름휴가는 으레 캠핑장에 콕 박혀서 지냈고, 주말에도 자주 전국 방방곡곡 자연 속의 캠핑장을 찾아다녔다. 설치하려면 한참 땀을 빼야 했던 작은 텐트, 의자 두 개, 코펠과 버너. 그 외엔 이렇다 할 장비가 없었던 우리는 근처에서 커다란 돌멩이를 주워다 식탁으로 썼다.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 남을 만큼 모든 게 넉넉하고 여유로웠다. 예약을 할 필요도, 자리다툼을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저런 것까지 가져오려면 집에 있지 뭐 하러 캠핑을 왔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온갖 장비를 갖춘 캠핑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캠핑카나 트레일러가 자주 눈에 띄고, 커다란 타프, 텐트 주변에 설치한 온갖 전기기구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을 무렵부터 캠핑을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됐다. 그렇게 우리 식구는 자연스레 캠핑을 접었다.


2010년 언저리였나. 도보여행에 관한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던 때가 있었다. 국토순례, 제주 올레길, 국내 성지순례 등 장소를 불문하고 혼자 걸어 다니며 쓴 에세이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사서 읽었다. 그때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런 순례는 나 같은 평범한 아줌마 말고 한비야나 서명숙처럼 '넘사벽 인간들'에게나 가능한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은 그때 하늘에 떴던 것 같다.


그 후 숨겨 놓은 보석 같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길을 걸으면 발에 차이는 돌멩이 같아졌다. 순례를 다녀오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관련 서적은 쏟아져 나왔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왔으리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광고처럼,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아니 해마다 다녀온다고 하는 사람들도 속속 나왔다.


'뭐 거기에 간다고 별 거 있겠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지.'

아무리 절약한다고 해도 40여 일의 시간과 그에 드는 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사실 이 순례길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여행이기는 했다. 영적인 피정이나 순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해도 수백만 원짜리 패키지 해외 성지순례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치부했다. 솔직히 그만큼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낼 수 없었던 내가 '신 포도' 기제를 발동시킨 셈이다. 더욱이 '붐'이 일어나는 것에는 별로 동참하고 싶지 않은 성격 탓에, 나는 내 버킷리스트에서 이를 미련 없이 지워 버렸다. 비슷한 시절 캠핑을 접듯 그렇게.


"우리도 죽기 전에 산티아고 한 번 가봐야 하지 않겠어?"

11월 초, 남편이 이런 말을 던졌을 때 나는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산티아고에 가 보고 싶다고 먼저 말해 본 적이 없었던 그였다.


새해가 우리 부부에게 중요한 시점이기는 하다. 아이들 둘 다 품을 떠나 실질적으로 독립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 없이 둘만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누가 먼저일지 모르지만 혼자 살아갈 준비를 슬슬 해야 하는- 창창한 노년을 목전에 둔 우리는 하느님께 길을 묻기로 했다. 오래전에 떴으나 그간 잊고 살았던, 산티아고 순례라는 그 별빛에 의지하여.


며칠이나 갈 수 있을까. 우리 부부야 원했다 해도, 본의 아니게 순례길에 동참하게 된 아이들까지 무작정 오래 걸릴 수는 없었다. 글쓰기 수업과 자원봉사를 최대한 뺄 수 있는 날짜 안에서 여행과 순례를 반반 섞자고 했다.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하면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이스탄불과 포르투, 바르셀로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우리가 가고 싶은 순례길도 일주일. 기왕이면 완주를 인정해 주는 최소한의 거리, 101km를 갈 수 있는 코스로 정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엿새로 잡았으니 하루에 걸어야 할 거리는 20여 km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네 뒷산을 가도 5분 만에 헐떡이는 내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떠날 날까지는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숙소나 교통편 등 모든 일정 계획은 남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내 몸을 단련하는 데만 몰두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내가 공연한 욕심을 부려 가족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첫날은 2km, 둘째 날은 4km, 그다음 날은 8km. 집에서 일터가 있는 관평동의 성당까지는 대략 9km 남짓 되니까 왕복으로 걸으면 얼추 하루 걷는 거리가 나왔다. 그렇게 연습 삼아 걷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 갔다.


'내가 정말 산티아고를 가게 되었구나. 왜 난 가고 싶어 했을까? 지금은 도대체 왜 가려고 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달라져서 와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지는 않은가?'

손으로는 묵주를 돌리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다녔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나'인 이상 지금 관평동 성당까지 걷고 있는 이 길이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걷는 그 길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무 큰 기대도 하지 말고, 너무 큰 두려움을 갖지도 말자. 내게 필요하면 허락하실 테지. 이렇게 걸으면서 그분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길이 산티아고, 아니 관티아고 아니겠나.'


그렇게 순례는 관티아고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