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밥을 든든히 먹여둔다면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 아이들이 노는 소리는 언제나 옳다

by 글방구리

[신나는 글쓰기] 첫모임을 하는 날이다.

원래 함께하기로 했던 두 명의 아이가 엊저녁과 오늘 아침에 갑자기 하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다. '안 할 거면 며칠 전에만이라도 말해주지.' 인원수에 맞춰 준비물을 구입하고, 어떻게 놀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통보에 조금 언짢다. 하지만, 시작하고 나서 "나 재미없어 안 다닐래."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오늘은 글쓰기를 하지 않고 서로 '분위기 파악'을 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일찍 가서 자리 배치를 하고, 준비해 간 것들을 정리해 놓고, 시간 맞춰 만나기로 한 너른마당으로 나왔다. 마침 하교 후 너른마당에서 놀고 있던 졸업생 아이들이 "종이배~~~!!!" 하고 부르며 달려온다. 졸업한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이산가족 상봉한 듯이 반갑다. 그새 자기 발이 더 크다며 발 크기를 재는 수현이, 두 발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윤슬이, 졸업 후 처음 보는 거라며 안기는 솔이, 여러 아이들 틈바구니에 어느새 끼어들어와 안겨 있는 예설이, 특유의 시크한 태도로 씩 웃기만 하는 승연이. 참 반갑고 예쁘기만 하다.

막 입학한 '1학년 코딱지'들을 보고 있자니 오늘부터 만나는 초등학교 2,3학년 아이들이 너무도 의젓한 형님들이다. 와서 안기는 대신 "안녕하세요?"라며 꾸벅 인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어느덧 입에 익숙해진 존대말도 그렇고.


"엄마한테 뭐라고 듣고 왔어?"

글쓰기 모임을 신청해 준 엄마들이 아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했는지 궁금했다.

학원을 포함한 사교육은 아이들의 흥미를 가장한 엄마들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일 때가 많았기에, 이 아이들도 엄마들의 성화와 등쌀에 밀려 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놀기도 하고 글도 쓰는 거래요."

"그래, 맞아. 그런데 글 쓰는 것 좋아해?"

이 질문에 답이 각각인데, "전 시 쓰는 건 좋은데 일기 쓰는 건 싫어요."라는 아이도 있고, "전 일기는 재미있는데 시는 별로예요."라는 아이도 있다. 2학년 하준이는 "전 아직 그림일기 써요."라고 하는데, 갑자기 "저 상어 보고 왔어요.(거기에서 어쩌구저쩌구~~~)"라며 엉뚱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다. '으으윽, 뜬금없이 그 얘긴 왜? 언제 이야기를 끊지?'라고 고민하며 듣는데, 하준이 마무리하듯이 큰소리로 "그거 일기로 써서 칭찬받았어요."라고 한다. 내 비록 아직 그림일기를 쓴다만, 마음만 먹으면 칭찬받을 만큼 씁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은희는 "저는, 음, 아니, 지금, 종이배한테, 아니, 음, 선생님한테, 반말을 해야 하나, 아니, 음, 존대말을 해야 하나, 음, 그러니까, 그게 가장 걱정인데... 그러니까, 어떻게, 음."라고 한다. "너 편한 대로 해. 나오는 대로."라고 하니, 쑥스러운 듯 "존대말이 낫겠어요."라고 스스로 결정한다.

여섯 살 때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가 4년만에 다시 돌아온 준서. 어린이집에 다닐 때 담임을 맡았던 적이 없어서 내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니,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부끄러워한다. 이 아이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려면 한동안은 친해지는 데 주력해야겠다. 아래로 여동생 둘을 둔 단우는 생각보다 말도 많고, 사용하는 단어가 제법 어른스럽다. 가장 까불이일 줄 알았는데 아이들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


한 시간 동안 아이들과 준비해 간 '쌍륙놀이'를 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이 놀이를 처음 해보는 거라 했다. '뒤집어라 엎어라'로 팀을 정하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아주 단순한 주사위 게임이라 승패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단우네 팀이 두 판 연속 이겼다. 그 다음에는 간식 메뉴에 참고하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보는 '동시에 대답하기' 게임을 했다. 별 것 아닌 놀이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마지막에는 '30초토크'로 오늘 느낀 소감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주부터는 지금 말로 한 것들을 종이에 옮겨 적어보는 글쓰기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도 그러자고 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 긴장했던 표정은 없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동안 유아들과 만나며 느꼈던 진리를 초등 아이들에게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신나는 글쓰기, 그 해답 역시 신나는 놀이에서 찾으면 된다는 것을. 놀이밥을 먹은 아이들은 뭘 해도 힘차게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