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 여봉도.' 많은 지인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왔다. 딱 봐도 방을 잘 못 찾은 단어다. 곧 줄줄이 놀라움과 비웃음의 답장이 쏟아졌다. 당연히 남자끼리 있을 땐 볼 수 없는 표현이 아닌가. 평소 각이 잡힌 말투와 깍듯한 매너를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연인에겐 동글동글한 애칭을 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연애를 하던 시절에 여자친구였던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재밌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아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자기도 애칭을 새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동안 몇 가지 버전이 있었으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자기' '여봉'처럼 평범한 표현 말고, 다른 사람이 안 쓰는 특별한 단어로 부탁했다. 연인 간에는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래서 과거를 훑었다.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불리어 왔는지.
중학생 때 나의 별명은 곰이 떠오르는 건강기능식품 '우O사'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얼굴도 몸도 둥글둥글한 데다가 걸음은 빨라서 산에 출몰한 곰 같았나 보다. 한 친구가 밑도 끝도 없이 "쟤 뭐야. 완전 우O사야."라고 한마디 했더니, 중학교 내내 "우O사"가 되었다. 이처럼 별명을 붙이는 가장 흔한 방법은 닮은 꼴에서 찾기다.
잊고 있던 곰의 형상을 다시 불러온 이는 연애 초반의 아내였다. 휴대폰에 남자친구였던 나의 이름을 '꼬미'라고 적은 것이다. 곰을 귀엽게 부른 버전이라나. 나는 인터넷에 꼬미라고 검색하면 강아지 밖에 안 나온다고 툴툴댔으나, 애정이 담긴 단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꽤 오랫동안 꼬미로 적혀 있었다. 그러다 수년 뒤에 우리는 크게 싸우고 화해를 했는데, 그때 휴대폰에 적힌 내 이름을 고쳐놓았다. 곰탱이라고.
나를 닮은 꼴로 적었으니 아내의 별명도 그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명을 붙일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귀여운 '오리'의 상을 발견했다. 그때쯤 아내는 파마를 했는데, 그 모습은 또 '푸들' 같았다. 그리하여 오리와 푸들의 조합으로 '오드리' 어떠냐고 말했더니, 만족스럽진 않은 표정이었지만 한동안 사용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아내의 별명은 엄마였다. 이름 뒤에 '맘'을 붙여 'OO맘'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친구들이 의지하고 싶은 이미지여서 그랬을까. 여고시절부터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이 별명은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는데, 나 역시 왜 아내가 'OO맘'이라고 불렸는지 알 듯했다. 푸근한 느낌의 엄마라기 보단, 리더 같은 엄마에 가까웠다. (아내의 MBTI 설명을 보면 총사령관 이미지라고 한다.) 그러니 친구들 사이에선 늘 챙겨주는 역할이었다.
별명에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근원적인 결핍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 사이가 깊어지면서 엄마라는 별명에 담긴 아내의 결핍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맞벌이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남동생 둘을 돌보아야만 했던 여자 아이는 챙김을 받는 게 어색한 어른이 된 것이다.
이제 겨우 대학생이 된 여자가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게 괜찮을 리 없겠다고 생각했다. 챙김을 받아야 하는 시절에 챙김을 제대로 못 받아서, 여전히 누군가를 챙기는 데만 익숙한 상태일 테니까. 이것은 미성숙을 건너뛴 가짜 성숙 상태일 뿐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징적으로 아내의 애칭을 바꿔주기로 했다. 당신도 챙김을 받아야 할 허술하고 어리숙한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상징을 담은 애칭으로.
아내가 데이트 중에 휴대폰을 음식점에 두고 나온 어느 날, 나는 말했다.
렐레야. 이제 렐레라고 부를래.
렐레가 뭐야.
별명, 아니 애칭이야.
무슨 뜻인데.
칠렐레 팔렐레.
아내는 처음엔 그게 뭐냐며 발끈했지만, 사실은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렐레라는 이름으로 이메일 주소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 나의 휴대폰엔 렐레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