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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Sep 22. 2024

글쓰기 모임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이다.

일로 받아들이기

그런 날이 있다. 부산한 하루를 보냈지만 성과는 없는 날. 글쓰기 모임 운영을 덜컥 수락하고 맞이한 첫 월요일이 그랬다. 그날은 출근한 순간부터 유독 고객 문의 전화가 많았는데, 소상공인에게 특히 상품 구매 문의는 너무도 소중해서 한 통도 허투루 흘려 보낼 수가 없다. 뜨끈한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좁은 매장을 뛰어다니며 재고를 확인하고,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갖은 방법을 제안했다. 차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분이 택배 일자가 안 맞으면 직접 배달을 해주겠다고 붙드는 식이다. 그런데 그날은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뭐 어쩌겠나. 당장 성과가 없어도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묵묵히 해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니까.


여전히 고객과 통화를 하던 중에 택배 기사가 발주했던 물량을 매장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큰 박스로 여덟 박스. 제법 무게가 나갔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네. 고객님'이라는 말을 하며, 눈짓과 손짓으로는 기사에게 택배를 이곳에 두라고 했다. 휴대폰을 한 쪽 어깨로 고정시켜 놓고는 주섬주섬 택배비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무거운 짐을 옮긴 노고에 소리없이 웃는 표정으로 감사를 표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다른 색상으로 교환이 가능한지를 묻는 통상적인 고객 문의였다. 영수증을 챙겨 와야 한다는, 늘 하던 말을 반복하고 통화를 마쳤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이제 눈 앞에 쌓인 박스를 모두 뜯고, 상품을 창고에 정리해야 한다. 눈에 띄는 일은 아니지만 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업무. 하기 싫지만 일 하는 마음으로 버틸 줄도 알아야지. 그때 또다시 휴대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글쓰기 모임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한 문장으로 된 메시지를 읽고, 나는 그 자리에서 십 분 가량 꼼짝을 못했다. 글쓰기 모임 운영을 맡겠다고 한 뒤, 처음 받는 문의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CS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문의에 답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필요한 내용만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나 역시 자영업자가 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포괄적이고 짧은 질문엔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는 것을. 


지금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의 날짜, 시작과 종료 시간, 장소와 교통, 신청하는 방법, 공통 글감이 있다는 것, 글의 형식과 분량은 자유이며, 참가비는 모두 N분의 일이라는 사실도 한 자리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타이핑을 했다. 꽤 장문이 되었다. 다음부터는 같은 문의에 이 글을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문의를 했는지 궁금해서 답을 기다렸으나 상대는 그대로 말없이 사라졌다. 참으로 성과가 없는 날이었다. 






나에겐 본업과 일상이 있다. 글쓰기 모임은 어디까지나 여가를 위한 즐거움의 영역이 아니었나. 물론 단순 참여와 운영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눈에 띄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며 하기 싫은 일이 글쓰기 모임 운영에도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로 닥치니 감당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모집 공지, 장소 예약, 참여자 연락하기, 단체 채팅방 개설과 안내문 공유, 모임 진행, N분의 일로 정산을 마치는 일 정도가 전부였으나, 모임이 점점 규모를 갖추면서 해야할 일 역시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엑셀이 아니면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기 시작하더니, 매일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업무가 생기고 말았다. 이 부담스러움을 어떻게 받아야들여야 하는가. 고민하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미식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이다. 


파티시에인 아내는 평소 좋아하던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즐거운 한 순간은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의 이 문장은 어디에나 통용된다면서. 그러니 글쓰기 모임의 즐거움 역시 운영자의 수고로움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에 번뜩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나에게 글쓰기 모임 운영은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고. 


그 즈음 읽은 책이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었다. 저자 토마스 바셰크는 무엇이 '일'인지 새롭게 정의하면서, 돈을 받는 것은 '일'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에겐 단지 매일 해야만 하는 무수한 '활동'이 있을 뿐이고, 그 중에 어떤 '활동'은 '일' 혹은 '노동'이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정'이 핵심이다. 출퇴근, 장보기, 거래처 미팅, 자녀 등하원, 빨래와 설거지, 이메일 확인, 회계와 전산처리 등. 하루에 치루는 무수한 활동 중에서 사회적으로 그 노고가 인정 받는 것은 '일'이나 '노동'이 된다. '가사 노동'이 그렇고, 요즘은 육아 역시 노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돈은 단지 인정을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나에게 글쓰기 모임은 '일'이다. 나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일이라고 인정하면, 세상도 즐거움을 위한 수고로움을 일이라고 인정해주는 때가 오지 않을까. 일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 모임 운영에도 묵묵히 버텨야 하는 부분이 있는 법일 테니까. 눈에 띄지 않아도, 재미가 없어도 그냥 해야만 하는 나의 활동이자 일, 그렇게 글쓰기 모임 운영은 나에게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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