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하는 요리와 식사의 의미
오랜만에 카트를 밀면서 마트를 누볐다. 샐러드용 채소도 담고, 찌개에 넣을 두부도 담고, 굽거나 삶아 먹을 고기도 담았다. 비상시에만 먹자며 건강한 식재료 사이에 피자와 치킨 같은 냉동식품도 몇 개 담았다. 그래. 비상 식품도 있어야지. 요리하기 너무 힘든 날이나, 재료가 다 떨어진 날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장을 봐온 날 저녁에 바로 피자를 데웠다.
오늘이 비상이라면서.
거의 매일 저녁 비상을 외쳤고, 자연히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냉동 식품이 먼저 사라졌다. 그리고 손쉽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 사라지자 냉장고를 여는 일 자체가 줄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매일 이 질문이 돌아올 때마다 건강하게 먹겠다며 채워놓은 재료들을 뒤로하고, 오늘도 비상이라며 밖에서 사먹거나 배달을 시키자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다.
오늘만, 오늘만, 오늘만이 반복되는 동안, 냉장고 속 상추는 초록색 물이 되었다. 양배추는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거뭇거뭇한 상처를 키웠고, 파프리카는 바짝 말라 주름진 모습으로 쪼그라들었다. 장을 보고 온 날에는 냉장고 칸마다 생기 넘치는 채소와 식재료들로 가득했는데, 어느새 손도 못 댄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사다 놓은 지 얼마 안 됐잖아. 왜 벌써 상했지, 하고 말하자, 아내는 장 본 지가 벌써 삼 주가 넘었다고 했다. 시간은 언제나 망각을 자각할 때 돌아온다.
맞벌이 부부에게 집밥을 꾸준히 잘 해먹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날의 장바구니는 그저 건강하게 먹고 싶은 자의 자기만족이었을 뿐이었는지, 버려지는 식재료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봤다.
직업이 파티시에인 아내는 원래도 요리를 잘했고 또 좋아했다. 신혼 초에는 거의 매일 함께 저녁밥을 먹었는데, 아내가 요리하면 나는 괜히 주방을 서성이며 도울 일을 찾곤 했다. 칼과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의 곁에서 나는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불도 못 피우는 내가 불을 다루는 마법사를 만난 것 같았다. 옆에서 원시인이 어떻게 바라보든, 마법사는 그저 온전한 자기만의 주방이 생긴 결혼 생활만으로도 요리의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설거지는 내 몫이다. 모든 음식을 예쁘게 그릇에 옮겨 담았으니, 두 사람 식사에도 제법 설거짓거리가 나왔다. 매일 한 끼 이상,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바람에 냉장고는 금세 빈자리를 보였다. 그러면 다시 장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일정을 맞췄다. 그때를 낭만적이라 느끼는 이유는 매일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장을 보는 번거로움에서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낭만은 비효율을 즐길 때 느낄 수 있으니까.
신혼이 지나고 마법사는 MP(마나 포인트)를 모두 소진했다. 마법을 쓰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인 MP를 충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게임 속에선 무방비 상태인지라 전투로부터 피해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집 마법사는 밤새 조금 충전한 MP를 가지고 매일 출근해서 모두 소진하고 돌아왔다. 치열한 전투를 치루고 왔는지, 주방의 마법은 배달앱에 맡겨야 했다.
신혼의 낭만은 각자 고군분투하는 맞벌이 부부의 생활 속에서 점차 효율적인 방식으로 대체됐다. 처음엔 메인 요리 하나를 하고, 나머지는 반찬통만 꺼내서 설거지를 줄이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후에는 요리하는 것 자체가 조금 버거워서 밀키트로도 바꿨다가, 결국 배달을 시키기 시작했다. 배달앱의 VIP가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 5년 차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퇴근 시간마저 불규칙해졌고, 식사는 대부분 각자 해결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샐러드와 포케, 떡볶이와 김밥을 주로 먹었고, 나는 돈까스, 제육, 국밥을 주식으로 먹었다. 둘 다 쉬는 날에도 장을 보기보단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휴식을 선택했다.
둘 다 바쁘니 이게 합리적이라고 위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와 냄새가 사라지자 삶에서 중요한 가치도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느낌도 희미해지는 듯했다. 합리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부부 사이까지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어느새 우리는 냉장고 속에서 말라비틀어져 가는 채소처럼, 생기를 잃은 부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활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다가 삶의 의미도 효율적으로 바짝 말려버린 부부. 각자의 사회생활이 너무도 고단해서 서로를 제대로 바라봐주기 어려운 맞벌이 부부. 이게 우리의 현주소였다.
1992년에 발간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는 오랫동안 서구 문명이 닿지 않았던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급자족의 전통적 삶을 영위하던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정부의 개방 정책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서구식 개발 모델은 라다크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 대신,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사회 갈등을 증가시켰으며, 공동체의 유대감을 해체시켰다.
저자는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에서 현대의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급자족과 공동체 중심의 삶은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적 보상을 넘어선 인간관계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냉장고 안의 상한 음식물을 비우며 생각한다. 함께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 속에서 부부의 의미도 다시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효율을 추구하며 잃어버린 가치는 비효율의 낭만을 즐기면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인생의 의미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때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집밥이 우리 부부 사이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아주리라고 믿는다.
직접 밥을 해 먹는 일은 너무도 인간적인 방식이니까.
그렇게 원시인은 주방의 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