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싶은 부레옥잠

별명에 대한 단상

by 글빛승연

"어머 신부님. 몸 쫙 펴신 거예요? 이러면 드레스를 입어도 태가 안 나요."


10월의 멋진 가을날 아리따운 신부가 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웨딩드레스 투어를 하던 중 드레스샵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토록 하얗고 눈부신 레이스에 정갈한 패턴을 가진 드레스를 입기에 내 몸뚱이는 큰 문제라는 것.


내 몸뚱이 중 유독 나의 등은 굽어있었고 입구가 좁고 스판끼 없는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그 굽은 등은 더 쫙 펴져야만 했던 거였다. 한마디로 내 뒤태는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잠깐만... 그럼 어떡하지? 그렇다고 한복을 입고 전통혼례를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날 나는 울쌍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결혼식에 드레스를 입기 위해 예비신부는 그날부터 등 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전에 요가나 필라테스는 잠깐씩 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검색해보았는데 그중에 카이로프락틱이라는 게 있었다. 도수치료처럼 수기로 뼈를 만줘주면서 치료를 하는 방법이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도 지점이 있던 터라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보기로 했다.

병원과 운동시설 중간지점쯤 되는 그곳에는 유명 운동선수도 다녀갔다는 사진이 걸려있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부터 나이 드신 아주머니까지 여러 명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조금은 신뢰가 갔다.


무언가 시작할 때 늘 엄청나게 조사하고 심사숙고하는 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거의 두 달 동안 여기서 재활치료, 운동, 마사지 등을 번갈아가며 하면서 등을 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물론 내 등이 완전히 펴지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드레스를 무사히 입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약 7년 간 나는 계속해서 어깨 통증을 안고 지내야만 했다. 회사에서 8시간을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몸뚱이는 자세가 틀어지고 그로 인해 목부터 어깨까지 늘 뭉치고 경직되어 있었다.

거기다 집에 오면 유아 상위 10프로 안에 드는 건강한 아이가 자주 안아달라는 통에 손목부터 어깨까지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집-회사-어린이집(또는 유치원)을 오가기도 바쁜 워킹맘에게 운동할 시간은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어깨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거나 가까운 마사지샵에 가서 마사지를 받으면서 통증을 참아냈다. 그 파스 흔적을 보고 회사에서는 내가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는 워커홀릭인 줄 알고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면 되었을까.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내 몸을 그렇게 혹사시키는 게.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통이 있거나 변비가 있거나 하는 것처럼 다들 어디 몸 한 군데 아픈 데는 다 있겠거니 생각했다.


매번 그런 식이 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다른 사람과 충돌하고 싶지 않았다. 자라면서도 부모님께 욕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착한 딸이 되려고 애썼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에게 내가 먼저 좋다고 고백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좋다는 사람이 다가오면 딱 잘라 싫다고는 잘 못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맞벌이지만 주 6일을 독박 육아를 하는 것도,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도 당연히 내가 하는 거라 생각했다. 남편이 나보다 훨씬 바쁘니까.

회사에서도 싫은 사람이 왜 없겠냐만은 동료들에게 적당히 맞춰주고자 했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크게 싫은 소리를 잘 못했다. 무슨 만인의 연인이라도 되느냐 그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겐 적도 없지만 든든한 내 편도 잘 없었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일상이 비슷하니 큰 걱정이 없었다. 적금 붓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면 나중에 만기가 되는 어느 날엔 뭔가 짜잔~하고 멋진 날들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면서. 그러고 보면 그 보통의 하루는 참 더디게 가는 것 같았는데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렇게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산모님 몸이 엉망이야.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 첫째 출산 후 5년 만에 둘째를 낳고 집에서 출장 산후 마사지를 받던 날 우리 동네에서 손맛이 좋아서 인기 절정인 마사지사님이 내게 물었다.

"아 등이 굽은 건 알고 있어요. 근데 다른데도 안 좋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한 군데씩 아픈 데는 있지 않아요?"

"아이고 누가 이래~ 등도 심하지만 목, 어깨, 손목, 하지정맥 다 문제야. 잘 때 똑바로 누워서 못 자죠? 뭘 그렇게 참았대~이게 다 참아서 병 된 거야. 다 비워야 돼요!"

"네, 똑바로 누워서 자본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참기는 참 잘 참는데...."하고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목구멍에서 말이 안 나왔다. 아무리 아파도 잘 참는 통에 마사지받다가 운 적은 없었는데 이날은 자꾸 눈물이 났다. 내가 그랬던가. 뭔가 잘못했구나.


"자기 몸은 자기가 돌봐야 돼. 마사지받는 건 30프로야. 나머지 70프로는 자기가 관리하는 거야. 알았죠?"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프로 마사지사님은 계속 채근하듯이 이야기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오래된 거 같은데?"

"아 그게...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모기만 하게 대답했다.




부레옥잠. 고등학교 때였나 보다. 누군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같은 반 친구가 지어준 내 별명이다. 물에 둥둥 떠있는 모양이 마치 내 굽은 등 모양이랑 비슷하다고 지어진 거였다. 그 별명은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니는데 나도 그 이름이 딱히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 SNS 계정도 ookjam이고, 어느 식물원이든 가면 딱히 예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식물인 '옥잠화'에 괜스레 정이 가는 걸 보니.


울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중학교 때부터 입시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제법 공부를 잘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후로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야겠다는 야심 찬 꿈을 가지고 밤 10시에 야자(야간 자율학습)가 끝나면 교과서나 문제집을 교실 사물함에 넣는 게 아니라 책가방에 다시 잔뜩 넣어서 집으로 가지고 다녔다.

물론 집에 가서 다시 책을 펴는 날은 거의 없었고 혹시 책을 펴보더라도 한 시간도 안돼서 내 몸은 침대 위로 내동댕이 쳐졌지만 말이다. 한창 성장기에 그렇게 책가방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어깨가 자연스럽게 굽어졌고 그 나쁜 자세가 굳어져 버린 거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굳어진 내 몸을 내가 바로 펴주질 못했다. 몸이 굽으니 마음도 움츠러져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특히 나를 위해서. 어쩌면 그게 내일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살면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그동안 고칠 기회는 참 많았는데.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들은 아주 잠깐의 짬이면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연습을 해보려 한다. 젖을 잘 못 물던 갓 태어난 우리 둘째도 30일 동안 연습하더니 잘 먹고 몸무게가 쑥쑥 느는데 30년도 더 산 이 엄마도 연습하면 할 수 있겠지. 나를 돌보는 연습. 나를 아껴주는 연습. 언제까지 물 위에서 가만히 떠있기만 하는 부레옥잠이 아니라 그 수면 위를 오르는, 아니 날아오르는 부레옥잠이 되어보자고. 열심히 내 젖을 빨고 있는 우리 둘째에게 사랑스럽고 담담하게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