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지 말자
백화점에 가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며칠 안 남은 둘째 백일잔치를 위한 상차림 과일도 알아보고, 둘째 선물 받은 옷 교환도 해야 했다. 몇 개 안 남은 디카페인 네스프레소 캡슐 구입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지하식당에 있는 홍대 개미 큐브 덮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요즘 아기띠만 하면 잘 자는 둘째를 데리고 외출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다. 지하 식품코너부터 들러서 싱싱한 과일을 둘러본 후 홍대 개미에서 점심을 먹고, 1층 네스프레소 매장에서 커피 시음과 캡슐 구매 후 6층 유아복 매장에서 옷 교환 후 마지막으로 다시 지하로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귀가.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리라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백화점 동선을 그려보았다.
딸기, 멜론, 샤인 머스켓도 괜찮고... 바나나는 상태가 별로여서 패스! 과일코너 과일이 생각보다 모양이 별로인 거 같아 금방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가로 향했다. 인기 많은 홍대 개미에 아직은 자리가 많아 적당한 곳에 골라 앉았다. 그런데 주문을 하고 벨을 받자마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꿉꿉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것 같았다. 방금 조리되어 나온 음식을 받고 한 숟갈 먹어보지만 계속되는 아이 울음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6층 유아휴게실로 가서 기저귀를 갈려고 했는데 그새 기저귀가 새서 바지를 조금 버렸다. 어떡하지... 일단 대충 입히고 다시 지하 식당코너로 내려갔다. 나의 큐브 스테이크가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새 내 자리만 빼고 나머지 자리엔 사람들로 꽉 찼다. 좁은 틈에서 매우 불편한 자세로, 아이 옷이 젖어있기 때문에 얼른 식사를 마쳐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덮밥은 식어도 맛있었다. 아이를 안은 채 너무 허겁지겁 먹었는지 식사 후에 아이 얼굴을 보니 밥풀 세알이 붙어 있었다. 조금 미안했다.
다시 아이 옷을 교환하러 6층으로 가서 한 십분 정도 구경을 했는데 그러는 동안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왔다. 더 이상의 쇼핑은 무리인 거 같아서 커피와 빵만 서둘러 사서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집까지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였는데도 마치 인천공항역에서 내려 기나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항 탑승장을 찾아가는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진하게 커피 한잔을 마셔도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겨우 두 시간 정도 돌아다녔는데 어깨도 아프고 졸리고 힘들고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집에서 나갈 때는 마음도 발걸음도 가벼웠었는데......
나 왜 이러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그럼 앞으로는 더 심해질 텐데. 덜컥 겁이 났다. 30대 후반이 되면 몸이 훅 간다고 하는 말을 듣긴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을까? 일에 치여서 정신없이 지낼 땐 오히려 몸이 아파도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만 앉으면 아픈 것도 잊고 일했던 나였다. 그런데 휴직하고 일을 쉬는 요즘 긴장이 풀렸는지 더 내 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열흘 정도만 지나면 내 나이 39세, 진짜 30대 막바지에 다다를 거였다. 다양한 건강 지표들이 35세를 주기로 나빠지기 시작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뼈나 근육 피부 노화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저하된다는 것도. 생각해보니 나도 30대 중반부터 만성 위염이 왔고 소화도 잘 안되곤 했다. 최근에는 조금만 피곤하면 눈에 염증이 생기고 온 몸이 건조하고 두피도 가렵고... 몸속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해도 내 성격 상 꾸준히 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해보면 어떨까.
1. 질 좋은 수면습관 만들기
언젠가부터 아이를 재우다가 9시 정도에 함께 잠들어서 밤 12시쯤 깨서 집안일 등등을 하다가 새벽 3,4시에 다시 자고... 아침 7시에 힘겹게 일어나는 이상한 수면 패턴을 이어나갔다. 어떤 땐 새벽에 계속 못 자다가 6시에 깜빡 잠들어서 한 시간도 못 자고 다시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진짜 피곤했다. 또 누워서 핸드폰을 꼭 삼십 분 정도 하다가 잠드는 습관도 수면 시간을 방해하는 원인이었다. 단 몇 시간을 자더라도 깊은 수면을 위해서 자기 전 잡생각도 지우고, 핸드폰도 보지 않고, 잠에만 온전히 집중해보자.
2. 몸에 안 좋은 것 줄이기와 좋은 것 챙겨 먹기
"몸에 안 좋은 거 안 먹는 게 좋은 약 백개 먹는 것보다 낫거든"
유명하다는 영양제란 영양제는 다 사서 먹으면서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너무 좋아하는 남편한테 내가 평소에 하는 말이다. 근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사실 나도 밀가루 음식, 단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빵을 밥 대신 먹을 때도 많았는데 언젠가 회사 동료가 '아침에 이 빵 한 개 먹으면 점심때까지 배가 하나도 안 고프더라고요.'라고 말하면서 비건 빵을 권한 적이 있었다. 하나 고백하자면 맛도 아쉬웠지만 두 개나 먹었는데도 계속 뭔가 먹고 싶었다. 몸에 안 좋은 거라고 아예 안 먹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많이 안 먹도록은 해야겠다.
그리고 남편처럼은 아니더라도 몸에 좋은 게 있으면 일부러 좀 챙겨 먹기도 하고. 내 몸에 투자를 해야겠다 싶다.
3. 운동 못하더라도 스트레칭은 꼭
사실 수영을 정말 해보고 싶은데 매년 할 거라고 말만 한 지 10년이 넘었다. 더 이상은 나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지. 운동 못하는 걸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스트레칭을 하는 걸로 몸에 유연성을 기르고 근육도 이완시키면 어떨까.
4. 효율적인 육체 쓰기
# 나는 좀 사서 고생하는 스타일이다.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라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끔 차로 가면 가깝지만 버스나 지하철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들이 있다. 그런 곳에는 그냥 택시를 타면 5분이면 갈 것을, 버스 타고 지하철 환승하고 또 버스 타고 30분씩 걸려서 찾아간다. 3800원 지불하고 내 다리 조금 쉬게 해주자.
# 그동안은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새벽이고 밤이고 배송되는 편리함을 뒤로하고 굳이 실물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슈퍼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일일이 확인 후 배달을 시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지 말자. 장보는 것도 노동이다. 노동은 가급적 줄이자.
이렇게 쓰고 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기는 하지만. 사실은 매운 떡볶이, 투샷 라테, 초콜릿이 들어간 모든 것들,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을 못 먹는다면 백 년을 산다 해도 우울할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저것들을 먹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지. 39살을 기점으로 더 건강해지는 기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