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육아휴직은 첫째 때와는 달랐다.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까 고민하던 첫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조리원에서부터 '나'를 위해 어떤 시간을 쓸지 고민했다. 아마도 마지막 휴직이 될 것이었다. 5년 만에 찾아온 휴직의 기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배우고 싶은 것 맘껏 배우고 싶었다. 두 아이의 출산으로 들어가지 않는 배를 집어넣기 위해 운동도 다니고,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좋은 곳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부지런히 다니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첫째와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틈틈이 가족여행도 가겠다고 계획했다.
하지만 내 몸도 회복되고 아기도 신생아에서 벗어나 이제 좀 외출해도 될까 싶은 둘째의 100일쯤 그놈의 코로나가 터졌다. 둘째와 오롯이 시간을 보낼 수도, 첫째와 따로 데이트를 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게 두 아이와 5개월을 꼬박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다 보니 어느새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어있었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내 휴직기간의 절반이 날아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일하면서 언제 또 이렇게 아이들과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분노하거나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휴직 기간의 절반이 아직 남아있기에.
한 5개월을 먹고 놀고먹고 놀고 해서 그랬을까. 노는 것도 시큰둥해졌을 즈음 우연히 어떤 강의를 듣게 되었다. 전에도 들어본 이야기였는데 그날따라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사람이 변하려면 3가지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사는 장소를 바꾸고, 그리고 시간을 달리 쓰라는 것이었다. 이사를 오게 되면서 환경은 저절로 바뀌었다. 이제 나머지 두 가지만 바꾸면 되는데... 어떻게 바꾸지?
코로나 때문에 동네 이웃 하나 만들지 못했다. 오프 모임이 거의 없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좀처럼 없었다.
'그래 오프라인이 어렵다면 온라인으로 만나면 어떨까? 언택트 시대, 지금이야말로 sns를 시작할때다! '
39년을 아날로그로 살아온 나는 어렵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페이스북도 하고 싶었지만 거기에는 회사 사람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기에 포기. (이상하게 휴직 중에는 온라인에서라도 회사 사람과 소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뭐 죄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sns를 하니 정말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신기했던 건 이 공간에서 만난 사람을 또 다른 공간에서 또 만나게 되는 놀라운 연결감이었다. 14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해온 나의 인맥과는 또 다른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한때 나는 소위 '인증 문화'를 비판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요즘 사람들은 새벽 기상 인증이니 모닝 독서 인증이니 그렇게 인증을 안 하면 뭘 못하나 봐요?"
(뻔뻔하기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그런 내가 새벽 기상을 함께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올빼미족이었던 나의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한 선택이었다. 4-6시 사이에 일어나서 일어난 시간을 타이머 어플로 찍고 하루를 시작했다. 4시를 목표로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일어나는 6시까지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일어나기가 힘든 날에도 다른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 인증을 하는 걸 보면 이불 킥을 하게 되었다. 새벽부터 달리는 사람, 강연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도 받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하니 이제는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지고, 인증을 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새벽시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동안 가고 싶었던 동네 카페에 혼자 가보았다. 코로나도 1단계로 바뀌고 둘째도 이제 하루 한 시간씩 어린이집에 가니 가능한 일. 카페의 첫 손님으로 들어가 넓은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으니 고요하고 아늑한 그 공간을 내가 다 차지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카페에서 힐링이라니. 이게 얼마만인가. 너무 행복해서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그러다 생각보다 너무 내 취향인 커피를 마시며 복직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아니, 벌써? 두 달밖에 안 남았다고!' 하마터면 카페 한가운데서 그렇게 소리 지를 뻔했다. 휴. 일단은 지금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있게 커피를 마시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아이를 찾으러 어린이집으로 향하는데 동네 길목까지 가을이 와있었다. 올해 가을도 늘 그렇듯 스치듯 지나가겠지. 가을에는 단풍놀이 가는 게 최고인데. 내 남은 휴직기간 동안은 뭘 해야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