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지키기가 필요해
봄을 맞이해 물건을 정리해보기로 하고서는 옷장문을 열어젖히고 한참을 째려보았다.
5년 전쯤이었나 사놓고는 한 번도 입지 않은 패딩을 발견했다. 이 패딩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겨울, 아주 추운 날에 입어보겠다며 구스로 된 것 중에서도 800 필 이상, 그리고 옴니히트로 돼있어서 온몸이 뜨끈뜨끈 해질 정도로 빵빵한 것을 찾아서 까다롭게 구입한 녀석 되겠다. 그런데 길이가 짧고 아웃도어 브랜드 옷이라 회사에 입고 다니지도 못하고 평소에도 안 입게 되어서 결국 장롱 속에 콕 박혀 바깥세상에 나오지도 못했던 것이다.
“또 팔라고? 아니 좋은 옷 사놓고 왜 안 입고 파는 거야. 이걸 얼마에 파는데?”
패딩을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남편이 다가와 물었다.
”이거 계속 가지고 있어 봤자 안 입을 것 같아서. 2만 원에 팔려고”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가 삼십얼마에서 할인받아 십 얼마에 샀던 옷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식도 오래되고 인기 있는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에 싸게 내놔야 팔릴 것 같아 중고사이트에 2만 원에 물건을 내놨다.
“뭐 이만 원? 그냥 입는 게 낫겠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물건을 올리자마자 몇 명이 바로 관심이 있다며 연락이 왔고 한 명은 내일 바로 사고 싶다고까지 했다.
‘내가 너무 싸게 올렸나?’ 순간 남편의 말에 살짝 마음이 동요되면서 중고사이트에 등록한 가격을 3만 원으로 수정했다.
‘그래, 2만 원은 너무하지. 안 팔리면 내가 입지 뭐’
그런데 3만 원으로 가격을 수정하자마자 물건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의 연락이 뚝 끊겼다. 중고 시장 구매자들에게 만원 차이는 체감이 꽤 크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안 팔리면 내가 입겠다고 했지만 막상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역시나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옷장에 이 옷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찰나에도 이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다니 진짜 간사하다.
‘어떡하지? 그냥 내가 입을까? 아니면 다시 가격을 내려볼까?’
옷을 들었다 놨다 고민하다가 결국 중고사이트에 물건 가격을 다시 2만 원으로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내 생각대로 2만 원에 올렸더라면... 벌써 물건이 팔렸을 텐데. 아니 그냥 처음부터 이 옷을 안 샀더라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 소중한 오전 시간만 홀라당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품절’
어젯밤에는 새벽 배송으로 상품평이 좋은 갈빗살을 시켜서 아침에 구워 먹고 싶었는데 국내산, 호주산, 미국산 고민하다가 결제하려고 보니 그 사이에 품절이 되고 말았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새벽 배송의 기회도 날리고 만 것이다.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놓친 게 한둘이 아니다. 취업준비 중일 때도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인데 연봉이 작아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않은 회사. 나중에 경력이 쌓이고 연봉이 높아진다는 걸 뒤늦게 듣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신혼 때 주택 청약을 할 때도 여기저기 비교만 하다가 정작 청약이 된 곳은 정말 원하는 곳이 아니어서 향후 청약의 기회마저 날려버리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이쯤 되면 비교대상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걸 알고서도 외면한 것은 아닐까. 처음 결심했던 내 마음을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면서 매 순간순간마다 선택에 직면한다. 매일 점심에 뭘 먹을까 하는 작은 선택부터 일과 인간관계가 얽힌 복잡한 선택까지. 수많은 선택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막상 결정을 하고 나면 또 처음 생각했던 게 나은 건 아니었을까 제대로 결정한 거 맞나 고민하고 걱정한다. 다른 사람이 보면 참 깝깝하다고 할 테지만 정작 가장 답답한 건 나 자신이다. 고민하느라 소비한 시간+미리 사서하는 걱정과 스트레스+결정한 후 다시 고민하는 시간. 이런 어마어마한 시간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기저귀, 분유, 장난감 구매에서부터 유치원, 학원 선택까지 결정해야 할 게 많다. 내가 선택하기 앞서 보통은 아이한테 먼저 물어보는 편인데 “여기 다닐래.” 또는 “싫어” 하고 두 번도 생각 안 하고 말하는 아이의 용기와 결정력에 감탄한다. 훨씬 더 오래 살고 경험도 풍부한 어른보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바로 드러내기에 주저함이 없는 아이의 선택 능력이 결국은 아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구나 싶다.
괴테는 사소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을 마음대로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선택만큼은 그저 처음 생각했던 데로 쉽고 빠르게 결정해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선택을 제대로 하는 것이 결국은 나를 보호하는 일이라는 걸, 안 그래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 속에서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