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나는 왜 도서관 사서가 되었나

by 글빛승연

"책 많이 읽으셔서 좋으시겠어요."

"그럼 사서예요? 그런 우아한 직업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거예요?"

"편하겠다. 그래도 스트레스는 별로 없잖아요?"

"어때요? 너무 조용해서 지루하지 않아요?"


내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한다.


물론 책을 많이 본다. 그런데 책 내용을 본다기보다 책 표지만 정말 많이 본다. 사서 업무 중에도 여러 파트가 있는데 책을 구입하는 업무가 담당일 때는 컴퓨터 화면에 하루 종일 제목, 저자, 출판사만 기계처럼 입력할 때도 있다. 한 번에 몇백 권씩 책을 주문해야 하는데, 일일이 책 목차를 살피고 책 내용을 읽어보고 할 시간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새 책이 도서관으로 들어왔을 때도 '이 책 너무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책들이 많지만 업무 시간에 그 책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업무의 연장으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래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책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하다.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서평을 쓰고, 독서토론 동아리를 운영하고, 독서 관련 행사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 책을 읽고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무감에 꾸역꾸역 책을 읽을 때도 있고, 그러다 책이 잘 안 읽힐 때는 책이 무한히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편한 직업. 그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도서관이 실적의 압박이 있다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곳은 아니니까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도서관이건 그 업무에 비해 사서의 수가 현저히 적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 도서관 역시 예산 문제로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도서관' 그 공간에서 주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처럼 업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면 아래 거위의 발길질이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책 커버를 씌우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행정, 회계 등 복잡한 것까지 방대한 업무들을 조용히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어쩔 땐 화장실도 못 가고 참아가며 일할 때도 있다. 내 몸은 경직되어도 얼굴은 온화하게 유지해야 하니 거참 배우가 따로 없다.


솔직히 십삼 년간 일하면서 내 직업에 대해 좀처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문장의 소리’라는 문학 관련 팟캐스트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 방송은 2부에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하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사서라는 직업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출연을 계기로 다시금 내 직업을 돌아보고 평가(?)해보게 되었다.


내가 사서가 된 이유


어렸을 때부터 책이라기보다는 문학을 좋아했는데 대학 진학하면서 앞으로 유망한 학과라고 하는 지인의 말에 혹해서 문헌정보학과를 지원했다. 하지만 대학 내내 배우는 우리 과 수업은 너무도 재미가 없어서 다른 과 수업을 더 많이 들었다.

졸업 시즌이 되어서 전공과 상관없이 보통의 취업준비생처럼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이력서도 열심히 쓰고 면접 스터디도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취업특강이 열려 참석했다. 그때 그 유명 강사가 하는 말 중에 취업에 도움되는 방법이나 요령 같은 건 하나도 안 들리고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걸 하라’는 그 말만 귀에 꽂혔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그리 특별한 말도 아닌데 난 갑자기 준비하던 모든 걸 접고 전공을 살리기로 결정했고 졸업 후 바로 도서관으로 취업했다.


내가 이 직업을 계속하는 이유


일단 일터로 출근하는 게 그렇게 싫지 않았다. 예전에 은유 작가가 도서관에 왔을 때 한 말이 기억난다. 이렇게 밖의 풍경과 햇살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그 때문일까. 손을 뻗으면 닿는 게 컴퓨터 화면만은 아니라서. 컴퓨터를 박차고 일어나면 보이는 게 책이라서 감사하다. 거기다 일부러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어디를 가지 않아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거기서 나도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도서관이 정적이지만은 않다. 일하다 보면 도서관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계속 도서관 밖으로 나가서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난다. 시류에 맞춰서 민감하게 변화를 감지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런 점이 내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직업이야말로 내게 딱맞는 평생 직업 아니냐고 묻는다면? 틈만 나면 다른 직업을 훔쳐보고 자꾸 다른 일 하는걸 상상해보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가보다. 평생 한 남자랑만 사는 것 만큼이나 한가지 일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십년이 넘게 같은 일을 꾸역꾸역 하다니 스스로에게 기특하다. 마침 어제 읽은 책 문구가 조금 위로가 되는 것도 같고.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나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돈 받고 일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 하다 보면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
- 일하는 마음 / 제현주


*문장의 소리 : 작가들이 직접 만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라디오 방송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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