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가래떡이지!

엄마가 알려준 가래떡의 맛

by 글빛승연

무뚝뚝한 부산 남자와 사는 덕분에 명절이면 어김없이 서울에서 네 시간 남짓 걸리는 시댁에 간다. 명절 연휴에는 평소 네 시간의 거리가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여덟 시간... 장담할 수가 없다. 시간대를 잘 못 맞추면 왔다 갔다 하는데만 하루가 꼬박 걸릴 수도 있을 정도로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난 시댁에 가는 게 참 좋다. 손주를 세상 어느 귀한 것보다 예뻐해 주시는 시어머니께서 반겨 주시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애정 하는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먹는 상상으로 나의 뇌는 제사상을 한가득 차려야 하는 맏며느리의 부담 따위는 쪼그러들도록 작동하는 듯하다.


미도 어묵, 환공 어묵, 고래사 어묵... 부산의 대표적인 어묵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물떡이다. 물떡이란 납작하고 동그란 어묵들 사이에 함께 자리한 가래떡 꼬치를 말한다. 흰 가래떡이 어묵 국물에 적당히 불어 촉촉해지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더욱 찰지게 되는데 이걸 간장에 콕 집어 한 입 베어 물면 얼마나 쫀득하고 적당히 짭짤한지 아마 먹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누가 듣는다면 어이없다 할지 모르겠지만 진심이다. 바로 이 물떡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댁에 가는 게 즐겁고 설렌다. 서울에는 팔지 않기 때문에 부산에 갈 때마다 어묵집을 방문해서 이 물떡을 꼭 먹고 오는데 어묵은 가게마다 맛이 좀 다르지만 물떡은 어느 가게나 맛이 비슷해서 더 편리한 이점도 있다.

물떡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떡볶이인데 부산의 떡볶이는 또 기가 막히다. 요즘 많이 나오는 얇은 밀떡의 국물떡볶이가 아니라 가래떡을 적당히 썰어서 굵직하고 찐덕하게 양념이 베인 걸쭉한 모양의 떡볶이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서울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비주얼이다. 물떡도 그렇고 떡볶이도 그렇고 그 공통분모는 가래떡인데 그러고 보면 난 가래떡의 통통하고 찰진 식감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한테는 밥을 왜 이렇게 안 먹느냐고 혼내면서도 본인은 살을 빼야 한다며 밥 대신 이것저것을 드셨다. 그게 고구마일 때도 있고 옥수수일 때도 있고 떡일 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식탁에 가장 많이 자리한 것은 가래떡이었다. 엄마는 가래떡을 구워서 꿀에도 찍어 드시고 김에도 싸서 드시고 참기름에 발라서도 드셨다. 밥을 먹기 싫은 날엔 나도 엄마의 가래떡을 조금 얻어서 함께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랜 기억이 있다. 그때의 그 맛을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길가다가 떡집 앞 매대에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한 봉지 사서 집으로 오곤 한다.


얼마 전 나는 둘째를 출산했는데 첫째와는 다르게 늘 품에 안겨서만 자려하는 통에 점심은 늘 간단한 걸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안고 먹을 수 있게 깔끔하면서도 든든한 걸 찾다 보니 어느새 냉동실 한 칸을 가래떡으로 가득 채우게 되었다. 빵보다 영양가도 있고 다른 떡처럼 아이 얼굴에 고물이 떨어질까 봐 조심할 염려도 없는 게 제격이다. 떡집에서 사는 건 번거로운 일이어서 인터넷으로 떡을 구입하려고 알아보니 생각보다 그 종류도 많고 공동구매 사이트도 많았다. 나처럼 밥을 챙겨 먹기 힘든 사람이나 엄마처럼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나 보다. 현미가래떡, 쑥 가래떡, 들깨 가래떡 등등 여러 종류의 가래떡을 구입해서 먹어보았지만 역시나 내 입에는 기본에 충실한 흰 가래떡이 제일이다.


그런데 맛있는 가래떡을 먹는다는 건 생각보다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전날 밤에 미리 냉동실에서 가래떡을 꺼내서 해동을 시킨 후 점심시간 한두 시간 전에 밥통에 넣어두어야 비로소 말랑말랑항 본연의 가래떡의 질감을 맛볼 수 있다. 엄마처럼 이 떡을 구워서 김에 싸거나 참기름을 바르는 일은 조금 더 손이 가는 일인데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엄마는 새벽 일찍 출근하는 아빠 밥 차리랴 반찬 투정하는 나와 동생 밥 먹이랴, 그리고 본인 떡까지 구우랴 얼마나 부지런한 아침을 보냈을까. 사실 엄마의 다이어트는 핑계고 학교 가고 출근하는 가족들 챙기기 바빠 본인은 정작 간단히 먹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요즘 먹기에도 부담 없고 영양가도 있는 가래떡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어떤 날엔 둘째를 끌어안고 밥솥에서 갓 꺼낸 가래떡과 커피를 곁들여 먹는다. 또 어떤 날엔 늦잠을 자서 유치원에 늦을지도 모르는 첫째를 위해 구운 가래떡에 김을 싸서 얼른 먹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이 세대를 건너 우리 두 딸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 같아 내 마음도 가래떡처럼 말랑말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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