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것을 그만하기로 결심하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대학 때 존경하던 선배의 좌우명이다. 그는 본인의 책이나 노트, 독서대 등 물건 대부분에 저 명언을 적어놓았으므로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다면 그의 좌우명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운동, 청소, 공부 등 하루라도 해야 할 일을 빼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매사에 성실했다. 늦게까지 음주를 하더라도 새벽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운동을 나가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뭘 저렇게까지 강박에 사로잡혀서 힘들게 사나’ 하고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매일 지키는 모습이 멋있어 저 명언만 보면 그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오늘 기분 좋으면 하고 아니면 내일 하지 뭐. 오늘 피곤하니 내일부터 시작하자.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부터 걷자.”
그와 비교하면 내 좌우명은 이쯤 되려나. 예전부터 난 나의 게으름을 여러 가지 핑계로 합리화시켰다.
새해만 되면 늘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던가.
새벽 수영을 할 거라고 십 년째 말해왔지만 아이 탓, 남편 탓, 날씨 탓하며 시작도 못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나서부터 집이 좁게 느껴져 짐을 줄이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고 결심했지만 이 역시 아이 탓, 남편 탓, 조만간 이사 가니 그때 정리하자면서 미룬 게 벌써 6년이 넘었다.
주말에도 일하는 엄마여서 아이와 많은 체험을 못하는 게 미안해 박물관, 미술관, 수목원 등 가고 싶은 곳을 리스트업 해놓고는 다른 약속 때문에, 피곤해 서다 음주에, 다음 달에 가자고 하다가 결국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장롱면허를 탈출하고 운전을 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위험해서, 새 차라서 나중에 하자고 미루다 가 택시비만 얼마를 썼던지.
서먹해진 친구와 다시 연락하고 만나려고 하다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그다음엔 출산을 해서 다음으로 미루고 또 미루고.
신혼 때 시부모님과 서유럽 갔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아버님이 좋아하시는 맥주와 해산물이 풍부한 청도에 한번 가려고 했는데 아이 때문에, 회사 때문에, 더 싼 티켓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결국에는 아버님과 영영 여행을 가지 못하고 아버님을 보내드리고 말았다.
ㅇㅇ때문에 못하겠는데...
다음에 한번 해볼까...
좀 더 생각해보고...
그렇게 망설이고 미루다 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매번 못했던 것을 내년으로 미루고. 그러다 잊어버리고 포기하고 결국에는 사라지고 마는 게 안타깝다. 미루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꼭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고민을 너무 하지말고 바로바로 하는 것도.
2020년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표현하기.
자존심 세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아끼며 지냈다. 특히 바쁜 일과 때문에, 내 몸이 너무 피곤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 신경 쓰느라 우리 아이와 남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사과하기를 미뤄왔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아이를 보면 자꾸 지적하고 다그치느라, 남편한테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누구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부끄럽고 새삼스럽지만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자주 말해줘야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려면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 행복하다고 표현해줘야 한다는 것을. 이건 절대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