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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승연 Feb 16. 2022

아이가 오늘 어린이집에 두 번 갔다고 했다

나는 좋은 엄마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지?

어머니 지금 집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돌봄 선생님께서 지금 돌봄이 불안하신가 봐요.



퇴근 시간 삼십 분을 남겨놓고 아이들 하원 돌봄 선생님을 관리하는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올해부터 저녁 시간 돌봄이 필요해서 돌봄 서비스(하원 도우미)를 신청했다. 최근 둘째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연달아 나왔는데, 오늘 오후 처음 양성이 나온 아이가 속한 반 전체가 확진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돌봄 선생님께서도 둘째를 하원 시키려고 갔다가 그 이야기를 들으셨고, 때마침 콧물을 흘리는 둘째를 보니 불안하셨던 모양이었다.


둘째가 그저께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여러 번 검사를 했다. 집에서 키트로도 해보고, 병원에 가서도 검사를 하고 음성 확인서도 받았다.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온 지도 5일이 지났고 이만하면 괜찮겠지 싶어 어린이집을 보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칼퇴는 가능하지만 퇴근시간보다 미리 나갈 수는 없었다.

"지금 바로 갈 수는 없는데 어떡하죠?"


그럼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하시니 가급적 빨리 와주세요


'어린이집에 맡긴다고요?'


어린이집에서 하원해서 집에 온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으로 보내겠다는 말이었다. 바로 집으로 갈 수 없는 나는 그 순간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첫째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퇴근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다 퇴근하셨네요. 지금 다시 집으로 가고 있어요.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둘째는 감기로 콧물을 훌쩍이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처럼 집에 왔다가 영문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서둘러 갔다, 또다시 집으로 걸어오고 있을 아이들 생각이 났다.


'진짜 그지 같네.'


버스에 앉아서 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왜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을 수도 있으니 확인 먼저 해보겠다고 말할 생각을 못했을까. 다른 것 보다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내 상황이 제일 원망스러웠다. 머리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침착하게 이해했지만,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창피하고, 아이들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집으로 뛰어가면서 찬바람에 눈물을 말렸다. 핸드폰으로 얼굴을 살피고 한번 싱긋 웃어 보며 마음을 추슬러 집으로 갔다.


"엄마!"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오는 아이들. 다행히 아이들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안 추웠어?"

이제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둘째는 내가 묻는 말 대신 다른 대답을 했다.

"쪼끔 무서웠어."

그 말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었다.

"괜찮아. 얼른 밥 먹자."




15년 넘게 일하면서 한 번도 일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가장 일찍 등원하고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였던 첫째를 키우면서도, 태어나면서부터 아파서 고생하던 둘째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검사를 받으러 다녀야 할 때에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바쁜 남편과 아이를 키우느라 전투적으로 직장일을 할 수 없어 고과에서, 승진에서 밀려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내 일을 놓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작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역시도 이런 내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원래 육아 체질이 아닌 엄마니까.
나는 아이들보다 일이 더 좋은 이기적인 엄마니까.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잘 챙기는 엄마는 못되니까.

이런 생각으로 아이를 키웠다. 좋은 엄마 타이틀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육아와 직장을 줄타기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생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회사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몸상태가 좋지 않아 '엄마 가지 마. 나랑 놀아.'라고 발목에 메달려 칭얼대는 아이를 뿌리치고 도망가듯 현관문을 나서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학교도 학원도 갈 수 없고 집에서도 아직 혼자 있지 못하는 첫째를 할 수 없이 직장에 데리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책 보고 그림 그리고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요즘 들어 자꾸만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좋은 엄마이고 싶어진다.


'나는 원래 이기적인 엄마인데 내가 왜 이러지?'


원래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깔아 두었던 밑밥이 자꾸만 바닥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기적인 엄마라는 말 하나 꽉 붙잡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새삼스럽게 왠 좋은 엄마 욕심이 나는 걸까.  


요 며칠 마음이 소란스러워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마음이 약해져 아이에게 그동안 못하게 했던 것들을 맘껏 풀어주는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는 내가 못나 보이고 약해빠져 보였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하니까 자꾸 다른 게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번잡한 마음을 다스리려고 분리수거를 정리하는데 옆에서 아이가 자기도 도와주겠다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씩씩하니까 괜찮아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괜찮아요."


요즘 우리 둘째가 꽂힌 노래였다. 나도 아는 노래라 따라 불렀더니

"엄마 부르지 마. 내가 불러줄게."

라며 다부지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이들을 재우고 분리수거를 하러 밖을 나가니 하늘에 큰 달덩이가 떠 있었다.

'아, 오늘 보름이었지.'

환하게 뜬 달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환한 달이 하루 앞을 모르는 내일의 걱정은 잠시 멈추고,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은 자기한테 다 말해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다가오는 맞바람은 잠시 피하고 소란스러운 마음이 들면 그런대로 그 마음을 안아주라고도 하는 것만 같았다.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씩씩하니까 괜찮아요. 나는 나는 나는 나는 괜찮아요."


찬 밤바람이 슬리퍼만 신은 발가락 사이로 훅 들어왔다. 그래도 무거웠던 짐들을 분리수거장에 버리니 손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깜깜하고 고요한 밤중이라 마음 속으로 나도 한번 노래를 불러본다.


좋은 엄마 아니어도 괜찮은 나를 위해. 아이처럼 다부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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