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빛승연 Jan 26. 2024

자작극으로 끝난 핸드폰 분실 사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8시 50분. 

사무실로 들어가 외투를 옷걸이에 걸고,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후다닥 컴퓨터를 켜고, 

출근도장 찍은 후 책상 충전기선에 핸드폰 연결하기. 

9시 업무 시작 전의 루틴이다.  


그런데 없었다. 충전기에 꽂아야 할 핸드폰이 출근과 동시에 사라졌다. 항상 있어야 할 외투 주머니에도 없고, 가방 앞주머니에도 없었다. 분명 버스에서 동생과 카톡을 주고받았으니 집에서 가져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디로 간 거지?


회사 전화로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벨소리는 아무 데서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버스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 버스정류장에서 회사로 오는 길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떨어진 핸드폰 같은 건 없었다. 


급하게 인터넷에서 '버스 분실물 찾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먼저 유실물센터에 핸드폰 신고를 하고, 버스회사로 전화를 해봤다. 몇 번 버스를 어디서, 언제 탔고 내렸는지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버스회사에서는 지금은 버스가 운행 중이니 나중에 차고지에 도착하면 찾아보고 연락을 주겠노라고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편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내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했다. 이상하다. 회사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신호가 가던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충전도 충분하게 되어 있었는데?

누가 주워서 가져갔나?


내 핸드폰은 최신 기종은 아니지만 중고 시장에서 잘 나간다는 아이폰이다. 누군가 주워서 전화기를 끈 것 같았다. 


마침 버스를 다 찾아봤지만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는 버스 회사의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버스에서 누군가가 발견하고 가져간 게 분명했다. 젊은 학생들이 많이 타는 버스였다. 줍자마자 전화기를 끄고 이미 당근에 내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당근마켓 앱을 켜고 아이폰 판매 글을 샅샅이 읽어나갔다. 얼핏 보면 내 폰 같이 생긴 핸드폰이 많이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내 핸드폰과 일치하는 건 없었다. 


누가 내 폰을 가져간 것 같다고 말하자 남편도, 회사 동료들도 모두 그런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핸드폰에는 아이들 사진이며, 내 중요한 일정들이 다 들어있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내가 바보 같아 미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회사 점심시간에 서둘러 관할 경찰서에 갔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누가 버스에서 주워간 것 같아요. 혹시 버스 cctv 같은 걸 볼 수 있을까요?"

경찰아저씨는 종이 한 장을 주며 일단 거기에 몇 번 버스를 탔는지, 어디서 타고 내렸는지 등등을 적으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cctv를 보려면 형사사건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며 나를 형사과로 안내하셨다.


그냥 분실신고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나는 경찰서 깊숙한 곳에 위치한 형사과 방까지 당도하고 말았다. 거기서 아까보다 더 상세하게 진술을 했고, 버스에 찍은 신용카드 정보까지 조회를 받는 등 보다 더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받았다. 


번거롭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훔쳐간 핸드폰을 어떻게든 찾고 말겠어!'라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고 있었다. 형사님은 일단 조사를 진행해 보고 연락을 주겠노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집에 있던 안 쓰는 핸드폰을 우선 사용하는 중이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그거 못 찾는다고 그냥 핸드폰하나 사는 게 어떻냐고 조언했다. 하지만 가끔씩 걸려오는 형사님의 목소리는 늘 긍정적이고 우렁찼다. 


"제가 어떻게든 꼭 찾아볼게요." 

전화를 끊을 때면 늘 마지막에 이 말을 하셨다. 나는 형사님을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출처: pixabay



이 주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형사님께 전화가 왔다. 

"버스 cctv를 봤는데 핸드폰을 버스에 떨어뜨리지 않고 내리셨어요. 버스는 아니고 내려서 어디서 떨어뜨린 것 같네요. 버스정류장 쪽 외부 cctv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뭐야. 버스가 아니야?'


당연히 버스에서 누군가가 주워갔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가만, 난 도대체 왜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책 속 문장처럼 내 해석과 판단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내 판단의 근거는 순전히 내 직감 하나뿐이었는데. 


그런데 진짜 충격적인 일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 찾아왔다. 잠시 쓰고 있던 핸드폰으로 형사님이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왔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과 그 옆에 덩그렇게 떨어져 있는 내 핸드폰이 사진 한 장에 담겨있었다. 정류장 반대편 어느 cctv에서 찾아낸 귀중한 결과물이었다. 


출처: pixabay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사건의 결말을 알 수 있는 사진이었다. 핸드폰은 내 외투 주머니에서 떨어진 다음 버스와 버스정류장 사이 도로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리고 많은 차들이 내 핸드폰 위로 지나갔고 핸드폰은 산산조각이 나서 어떤 이가 쓰는 빗자루에 실려 깔끔하게 치워졌을 것이었다. 이것도 추측이긴 하지만 사진에 근거한 정확한 추측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도 내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오롯이 나의 과실이었다. 주머니가 얕은 외투에 핸드폰을 넣은 것도, 핸드폰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걸어가던 것도 모두 내 잘못이었다. 누군가 가져갔을 거라고 확신에 차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조사를 의뢰했던 것도 '무지하고 섣부른' 내가 행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를 의심했던 나는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내가 떨어뜨린 핸드폰 하나 찾겠다고 수많은 cctv를 보고 또 돌려봤을 형사님께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평소에도 굽은 내 어깨는 더 말려들었다. 


"진짜 찾아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돼서 저도 참 안타깝네요. 그럼 수사는 여기까지로 종결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친절한 형사님의 말에 고맙다고 그리고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를 의심하고 비난하며 부풀 대로 부풀려있던 나는 완전히 납작해지고 말았다. 


순간은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되게 위험하고 안일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가 핸드폰을 훔쳐갔다고 단정 짓는 순간, 나는 그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핸드폰을 새로 사지도 못하고 한 달 동안이나 계속해서 이름 모를 누군가를 비난하고, 화를 내고, 마음을 조리고 피해자 모드에 빠져 지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장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다. 


당장은 

내가 졌다,

내가 손해 봤다,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멀리서 보면 훨씬 더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형사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핸드폰은 누가 가져간 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끝까지 본인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해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라는 주문을 외우며. 

매거진의 이전글 맥시멀리스트와 함께 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