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 미니멀은 글렀어!
결혼할 때 따로 신혼집을 알아보지 않았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도배장판만 새로 하고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던 것.
흰색으로 도배장판을 새로 하고 밝은 톤 원목 가구가 들어가니 번쩍번쩍은 아니지만 꽤 따뜻한 신혼집 느낌이 났다. 그는 집에서도 일을 할 때가 많다며 그동안처럼 본인이 쓰던 방을 쓰겠다고 했다. 그러렴.
새로운 집에 적응하며 빠르게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나는 친정집에서 입던 옷과 보던 책들을 수시로 날랐다. 한창 신혼집 꾸미기 재미에 빠져 집의 빈 곳을 채워나갔다. 빈 벽이 보이면 협탁이나 장식장 같은 소가구를 놓았고, 그 위 빈자리는 액자나 조화 같은 인테리어 소품들을 배치하는 신공을 발휘했다. 싸이월드에 신혼집 사진을 한 번씩 올리는 게 그 시절 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정작 내 물건들을 둘 곳이 부족해져 남편 서재방까지 그 영역을 넓혀야 했다.
찬찬히 이 구역을 살펴보니 여기야말로 만물상이었다. 방에는 1800 책상을 중심으로 뒤쪽에는 5단 3연짜리 책장 두 개가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헹거와 전신 거울이, 반대편에는 카메라 냉장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내가 올라가 앉아도 멀쩡할 것 같은 거대한 수납박스가 서랍장을 대신해 차곡차곡 올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오래된 음악 CD가 한 박스, 여행 갔다 올 때마다 모아둔 여행지 입장권이나 팸플릿, 교통 티켓 등 여행 관련 물건들이 한 박스, 멀티탭 같은 전선 용품들이 또 한 박스 가득이었다. 책상이나 책상 서랍도 사생활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일체 손을 대지 않았는데 호기심이 발동해 여기저기를 훔쳐봤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해도 믿을법하게 화장품 파우치 같은 게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안에는 형형색색의 펜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 손발톱 손질 도구 같은 미용용품 가방, 비상약 가방을 비롯한 무슨 용도인지 모를 각종 특이한 물건들이 즐비해있었다. 매우 촘촘한 이 공간은 각각의 구역별로 보면 정갈한 듯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여백이 남아 있지 않을 때쯤 아이가 태어났다. 차츰 현관에는 택배 박스가 쌓여갔고,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굴러다녀 거실을 다닐 때는 발바닥을 조심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이 집에 들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 지 한참이나 지났을 무렵 물이 샌다며 내려오신 윗집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애기 엄마, 이사온지 얼마 안 됐나 봐요."
그러는 사이 아이가 하나 더 늘었고 신혼집보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미니멀한 집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소파를 버렸고, 시들시들하던 화분들도 싹 다 없앴다. 조화며 액자 같은 장식품들, 안 쓰는 아이 장난감도 치웠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니 또 필요한 게 생겨났다. 작은놈들이 가니 더 큰 놈들이 들어온 거다.
이전 집에서는 자리가 없어서 둘 수 없었던 에어컨과 식기세척기를 큰맘 먹고 샀다. 미국에서 온 이모가 좋은 가죽인데 버리기 너무 아깝다고 하길래 전에 쓰던 것보다 훨씬 덩치 큰 소파를 우리 집에 데려왔다. 그래 여기까지는 필요한 거니까. 그리고 놔둘 자리도 있으니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가전제품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뭔가를 계속 주문했다. 어느 날에는 회사에서 쓰는 복사기만 한 공기청정기가 배달되어 왔고, 또 어느 날에는 스피커가 계속 생겨났는데 하나는 이동식 블루투스 스피커라고 했고, 또 다른 건 CD플레이어 겸용의 블루투스 스피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브이 연결용이라는 스피커 바라는 녀석까지 들어왔다. 이게 꼭 필요한 거냐고 물으면 남편은 가전제품 전시장처럼 스피커 볼륨을 높여 음악을 틀고는 '소리가 다르잖아. 음악은 이렇게 들어야지'라는 말로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 후로도 더 이상 뭘 넣을 수 없을 것 같던 남편의 서재방에는 책장이 하나 더 세워졌고, 컴퓨터 모니터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어느덧 책상 위로 세 개의 모니터가, 그 앞으로 노트북이 앙증맞게 놓였다. 감전의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이었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물건을 사면 2+1으로 주는 건가 싶게 같은 물건 여러 개가 한꺼번에 오기도 했다. 여름에는 써큘레이터가, 겨울에는 에어워셔가 흑백으로 쌍을 이루어 배송되었다. 청소기는 다이슨이지 라는 내 말에 거기다 유선도 필요하고 스팀도 필요하다며 결국 청소기까지 3대나 자리 잡았다. 그래, 가전제품은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라 치자.
결혼 이후 내 손으로 세제나 욕실용품을 내 손으로 사본적이 있던가. 떨어져야 말이지! 어느 날은 회사 화장실에서만 보던 커다란 업소용 유한락스가 배달되어 왔고, 그다음 날은 그 락스만큼이나 큰 샴푸가 왔다. 칫솔이며 치약, 비누, 주방세제, 심지어 수세미까지 종류별로 박스채 배송되어 오기도 했다. 세제가 이렇게 많은데 세제를 묻히지 않아도 되는 수세미까지 사는 건 뭔지. 기함을 토하며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물어보면 남편이 하는 말은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이거 놔두면 어차피 다 쓸 거잖아. 썩지도 않는데."
맙소사.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그런데 그 후에 티브이에서 이런 사람을 한 명 더 봤다. 어떤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서민정 씨의 미국 생활장면이 나왔는데 그녀의 남편이 정말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와 그때 정말 반가워서 눈물이 날뻔했다.
물건을 줄이고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거나 아이들에게 화내는 빈도가 1/10으로 떨어졌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집에 물건이 늘어날수록 매일 그의 멱살을 잡고 싶을만큼 내 안에 화가 가득했다.
돈이 어디서 나서 저렇게 물건을 턱턱 사지?
우리 집이 무슨 백 평이나 되는 줄 아나?
싼 거 사고 나중에 바꾸면 되지 뭘 저렇게 비교 분석해서 가장 좋은 걸 산다고 난리야?
배송비 아끼려고, 10원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가격비교를 하고 집사님께 깎아달라고 하는 신공까지 발휘하며 겨우 겨우 물건 하나를 고르는 내가 보기에 그는 가정경제 파탄범이었다. 그런데 '이거 안치우면 버려버린다'라고 엄포하고 진짜 보다보다 못한 물건들은 쓸어서 내다 버리는 내가 남편에게는 가족들의 귀한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싹퉁바가지같았나보다. 일회용 포장용기를 자르는 랩칼을 버렸던 날, 그 중요한 물건을 왜 맘대로 버렸냐고 화를 내는 남편과 한 시간을 싸우며 본질적으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는 그 사람과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기 시작할 때고, 우리의 사랑이 끝날 때는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 나눌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다.
- 공유 / 박신현 -
치열한 고민을 풀어줄 실마리는 우연히 본 책의 한 문장에 있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카페에서 좋은 노래가 나올 때 '이 노래 뭐지?'하고 물으면 어찌 알고 제목을 척척 알려줬다. 나중에 그 가수의 앨범을 빌려주거나 내가 좋아한다고 했던 음원들을 모아서 CD로 만들어주었다. 쓰던 컴퓨터가 고장 나면 하루 만에 뚝딱 고쳐주거나 그게 안되면 필요한 사양으로 조립해서 아예 새로운 CPU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결혼하고서는 몸에 이상한 뾰루지라도 생기면 서랍에서 신기한 도구들을 찾아와 의사보다도 더 안 아프고 빠르게 피부 트러블을 제거해주었다. 그의 방대한 취향과 재능은 꽤 쓸모가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음악을, 영화를, 때로는 신문물을 함께 나누며 소소한 기쁨을 누렸다. 생각해보면 뭘 이런 걸 샀냐고 투덜대긴 했지만 남편이 고른 물건을 쓰면서 후회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다른 소비패턴이 큰 화로 번지지 않았던 이유는 실은 나도 편해서였다.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써보니 좋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굳이 내가 고민하고 알아보지 않아도 남편이 집사처럼 집안 구석구석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놓으니 집안일에 손이 덜 갔다.
과연 어떤 게 더 합리적인 것일까. 한번 결정한 물건은 끝까지 쓸 생각으로 신중하지만 빠르게 결정해서 구입하는 것 VS 천천히 고심해서 가성비를 따져 물건을 그때그때 필요할 때 사는 것.
물건을 고르고 구입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취향과 안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결정장애가 심한 나는 매번 물건 하나 사는데도 끙끙거리기 일쑤인데 그래 놓고도 또 교환이나 환불한다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내 결정이 나빴다는 패배감과 돈 아끼려다 돈 버린 리고 말았구나 하며 후회를 맛봐야 할 때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늘 분명했다. 가장 좋은 제품을 골랐다는 자신감과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하겠다는 포부, 이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속옷 한 장도 고민 고민해서 사놓고 다음날이면 별로인 것 같아 바꾸는 내겐 넘사벽인 도전정신까지.
얼마 전 내가 일하는 도서관에서 지역과 공간, 경제를 함께 나누는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그 슬로건이 '우리는 동네에서 산다(buy&live)'였다. 이 슬로건을 보는 순간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집에서 산다!' 집은 사는 곳(buying)이 아니라 사는 곳(living)이 되어야 할 테지만, 부부란 함께 공간과 경제를 공유하고 소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적 공동체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기꺼이 누려보자고 마음먹는다. 당근 마켓조차 어려워하던 내가 집에서 공유경제를 실천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결국 이번 생에 미니멀한 삶은 영영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그는 채움으로 창조성을 실현시키고, 멍 때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비움으로 해방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그래도 살다 보면 나의 해방이 승리를 거두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져봐도 괜찮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