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란 무엇인가
최근 5년만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총 임직원의 1/3이 이동하는 대대적인 인사이동이었다. 한동안 적체되어 있었던 것이 갑자기 변화하니 직원들의 동요가 엄청났다. 나도 물론 그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인사이동 대상자였다가 팀장님의 잔류신청으로 기존 팀에 남게 되었는데 이게 좋지만은 않았다. 작년 한 해 회사일에 많이 올인했었지만 기대만큼 보상이 없었기에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새로운 팀에 가서 리프레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일년을 더 남아야 하다니.
거기다 올해 퇴직예정이신 팀장님이 새로 오셨는데 처음 현장에서 실무를 해보시는 분이라 이 역시도 반길 상황은 아니다. 팀의 새로운 주요 업무는 새로 오는 직원에게 떼어주고 나에게 기존에 해왔던 업무들을 몰빵 해주신 것은 또 어떤가.
개운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면담신청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 바로 그 마음은 접었다. 어짜피 다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니 소용없다는 것.
팔랑귀인 나는 그렇지?하고 바로 포기. 수용하기로 한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서로의 자리에서 존버하자는 인사를 나누고 작별했다.
이 시기에 마침 읽은 책이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니.
마음이 요동칠 때마다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필사를 하면 문장력이 늘고 기록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안정. 나 만족감. 이런게 훨씬 큰 것 같다. 그게 필사가 주는 즉각적인 아웃풋이다.
'대안 없음'이 대안이 될 때
대안이 없다는 건 다른 수가 없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혹은 인생의 어느 구간에선 꼼짝 없이 막다른 길에몰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일은 없어서, 종종 불행하다 여긴 일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인생은 다 알고 시작하는 게 아닌 거였어요.
이번 인사이동을 겪으며 동료들의 입에서 '퇴사'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너는 젊으니 이직을 해봐라, 나는 퇴직을 고려해야 할 때다' 같은 우스갯소리에서부터 점을 보러 간다는 동료, 둘째 유치원 때문에 재직증명서를 뗐더니 이직하느냐 부럽다고 하는 직원까지 있었다.
'저는 10년인데도 이런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안힘드셨어요?' 라는 질문도 받았다. 진짜 나는 왜 이직도 하지 않고 이곳에서 18년을 다니고 있는걸까. 생각해보니 엄청나다.
물론 중간에 다른걸 하려다가 잘 안된것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이곳이 아닌 다른곳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제일 강했다. 다른 분야로 전환 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 분야는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물론 지금은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 빼앗긴 시간들이 얼마야.
하지만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한다.
나는 전문가인가?
나는 누군가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사람인가?
정작 회사를 방패 삼아 내 시간을 무한대로 방출해낸 것은 나였다.
내가 아닌 내 직업으로 나를 대변한 것도 나였다.
더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들을 더 많이 해야겠지만, 대안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축적의 시간이 어디 가지 않는다는 걸 믿고 말이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내일!'이라는 방부제를 먹으며 존버.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보기.
작지만 아웃풋을 내고 세상에 자꾸 드러내기를 해보기.
내가 세상 밖에서 내 브랜드를 만들어가듯이 회사에서도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보기.
올 한해는 이런 마음으로 일해보려 한다.
내가 가진것을 세상도 원하고 있다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