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건 베이킹>을 읽고 동료 작가인 수희 작가님이 인터뷰어가 되어 은정 작가님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삶의 태도,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꼭 미리 책을 읽지 않았어도 8개의 질문과 답변이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마치 완성된 한 편의 에세이 같은 인터뷰, 두 분의 다정한 대화는 이번 주 일요일인 6월 19일부터 6월 25일 토요일까지 매일매일 저녁 10시에 카카오톡으로 제일 먼저 배달됩니다. 평소 에세이를 좋아하시고 즐겨 읽으신다면 꼭 들어오세요. (무료*) 아래에는 한수희 작가님이 쓴 인터뷰의 프롤로그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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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한다. 체육 시간, 피구 게임을 하기 위해 네모난 칸 속에 들어가 있는 여학생들이 있다. 가장 앞쪽에는 체력이 좋고 몸을 잘 다루며 활기차고 목소리가 큰 여자아이들이 선다. 두려운 것이 없어 보이는 그 애들 근처에 비슷비슷한 여자아이들이 몰려 있다. 약간 수줍어 보이지만 기꺼이 누군가의 그림자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 그리고 가장자리에, 뒤쪽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뚝뚝 떨어져 선 몇 명의 여자아이들이 있다. 대개는 표정이 없는 아이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들. 학교로 가는 길이 즐겁지만은 않은 아이들. 교실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 아이들.
나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그 여자아이들 중의 일부로 보냈다. 우리는 초반에 공격수의 타깃이 되어 공에 맞고 퇴장해야 하는, 그러나 그 사실에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우리가 공에 맞을 때는 누구도 웃지 않고 누구도 탄성을 지르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체육 시간에 내 근처에 서있던 조용한 여자아이를 마주친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애에게 말을 건다. 왠지 그 애가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그 애가 기다렸다는 듯 살짝 웃는다. 다행이다. 어느 순간 그 애는 내게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 애는 나와는 너무나 다르지만, 나는 그 애에게 호감을 느낀다. 수줍은 겉모습 안쪽에 숨겨둔 단단한 심지에, 세상을 향한 끝없는 호기심에, 그리고 조용하고 고집스러운 성실함에 나는 감탄한다. 이윽고 갈림길에 도착한 우리는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안녕. 내일 봐.”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건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우리는 다시 어색한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교실 안에 외따로 떨어진 연결되지 않는 섬들. 그런 식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 짧은 하굣길의 대화는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송은정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