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는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시네필 입문 가이드의 첫 번째 인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선택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스필버그를 거치지 않고 시네필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데뷔 이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흥행작과 걸작을 동시에 남긴 감독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하는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형식과 문법 상당수가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에서, 스필버그는 단순한 거장이 아니라 ‘기준’을 만든 인물에 가깝다.
스필버그의 영화 세계는 21세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그 분기점은 1993년이다. 그는 이 해에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를 동시에 개봉시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오락 영화의 최정점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를 한 해에 모두 보여준 셈이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가 아카데미를 석권하며, 스필버그를 바라보는 대중과 평단의 시선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이후 그는 <죠스>, <인디아나 존스>, <E.T>, <쥬라기 공원>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오락 영화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전쟁>, <뮌헨>, <스파이 브릿지>, <더 포스트>와 같은 보다 묵직하고 성찰적인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인다.
시네필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중에서도 <죠스>가 왜 특별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죠스>는 단순히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가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작품이었다. <죠스> 이전까지 영화 홍보의 중심은 신문 광고, 포스터, 잡지 기사와 같은 인쇄 매체였고, 개봉 역시 소수의 도시에서 시작해 입소문을 통해 상영관을 점차 늘려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죠스>는 미국 전역 동시 개봉과 TV 광고를 적극 활용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영화를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이때부터 영화는 서서히 발견되는 작품이 아니라, 개봉 첫 주에 모두가 동시에 경험해야 하는 이벤트가 된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프닝 스코어와 개봉 주 화제성의 개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죠스>에서 보여준 스필버그의 서스펜스 연출 역시 결정적이다. 기술적 제약으로 인해 상어를 충분히 화면에 등장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이를 한계가 아닌 미학적 선택으로 전환했다. 상어의 형상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일렁이는 수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 그리고 공포를 먼저 감지한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긴장을 축적한다. 이로써 공포는 화면 속 대상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관객은 무엇을 보고 놀라는 대신, 무엇이 곧 닥쳐올지를 기다리며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서스펜스 연출은 관객을 압도적으로 몰입시키며, 괴수 영화가 더 이상 어린이를 위한 단순한 오락이나 유치한 장르가 아님을 증명했다. 스필버그는 공포와 흥분을 정교하게 조율해 성인 관객조차 심리적으로 흔들 만큼 강렬한 영화적 쾌감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공상과학 영화와 괴수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이 연출 미학은 <쥬라기 공원>과 <우주전쟁>에서 정점에 이르며, 보이지 않는 위협과 갑작스러운 파국이 만들어내는 극도의 공포감을 영화적 재미로 승화시키는 스필버그 특유의 서스펜스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스필버그는 헐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와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 편의 영화를 성공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세계를 확장하고 지속시키는 방식까지 설계한 감독이자 제작자였다. 이러한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다.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의 아이디어에 스필버그의 연출이 더해져 탄생한 이 시리즈는 고전 모험 영화의 문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며,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냈다. 더 나아가 그는 <백 투 더 퓨처>, <그렘린>, <맨 인 블랙>, <트랜스포머>,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 제작자로 참여하며, 프랜차이즈 영화의 구조를 헐리우드 전반에 확산시켰다.
<쥬라기 공원>이 선사한 비주얼 쇼크 역시 영화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작품 이전의 괴수들은 대부분 스톱모션 기법에 의존했지만, 스필버그는 컴퓨터 그래픽을 적극 도입해 수십 마리의 공룡이 초원을 질주하는 장면을 현실처럼 구현해냈다. 이는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를 단숨에 무한대로 확장시킨 사건이었다. 스필버그는 언제나 최신 기술을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밀어 넣는 ‘체험’으로 전환해왔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주전쟁>을 보며 외계인 침공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에 내던져지거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참혹한 현장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 이르러서는 실사로 구현된 건담을 마주하는 황홀한 순간까지 맞이하게 된다.
스필버그는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온 감독이기도 하다. <1941>을 시작으로 <태양의 제국>,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뮌헨>, <워 호스>, <링컨>, <스파이 브릿지>, <더 포스트>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전쟁이 남긴 윤리적·역사적 흔적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또한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과 같은 전쟁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장편 영화 수준의 연출 감각과 스케일을 TV 매체로 옮기며 매체 간 경계를 허물었다.
이처럼 스필버그는 헐리우드 오락영화에 혁명을 일으키는 동시에, 전쟁과 역사, 가족과 윤리를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 감독이다. 이 많은 작품 중에서 시네필 입문자에게 딱 한 편을 권하자면, <우주전쟁>을 추천하고 싶다. 초기 대표작들은 명성이 너무 커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고, 시리즈물은 진입 장벽이 높다. 그에 비해 <우주전쟁>은 독립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스필버그 서스펜스의 정수와 현대적 감각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톰 크루즈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으며 재난 속에서도 드라마를 놓치지 않는 연출, 그리고 극한의 공포를 영화적 재미로 전환하는 스필버그의 능력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H.G. 웰즈의 원작 소설과 1938년 오손 웰스의 ‘가짜 라디오 방송 사건’까지 함께 언급할 수 있다면, 시네필로서의 첫 발걸음은 꽤 근사해질 것이다. 2026년에 개봉하는 스필버그의 새 외계인 영화 <디스클로저 데이>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주전쟁>을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