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세계, 마틴 스코세이지의 시선
“어렸을 때 영화 공부를 하며 제가 항상 가슴에 새긴 말이 있었는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그 말은 위대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며, <아이리시맨>으로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지목했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스코세이지는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하며 할리우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왔다. 그의 영화에는 감독 고유의 주제의식과 독창적인 스타일이 짙게 배어 있다. 이는 전 세계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오래도록 깊은 영감을 주었다. 시네필이 되고자 한다면 ‘거장들의 거장’이라 불리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세계에 한 번쯤 깊이 빠져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갱스터, 시대극, 심리드라마, 로맨스, 종교, 다큐멘터리 장르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스코세이지를 대표하는 장르는 단연 갱스터 영화다.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아이리시맨>은 스코세이지를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좋은 친구들>은 <대부>와 함께 갱스터 장르의 마스터피스로 평가받으며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좋은 친구들>은 범죄 세계에 대한 동경과 욕망이 강한 인물 헨리 힐이 마피아 조직에서 성공과 쾌락을 누리다, 배신과 불신 속에서 결국 몰락하는 이야기다. <대부>를 비롯한 많은 갱스터 영화들이 마피아 문화를 낭만적이거나 우아하게 묘사하는 반면, <좋은 친구들>은 갱스터들의 치사한 속내와 폭력적인 현실을 집요하게 드러내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관객은 조직 세계의 매혹이 아니라, 범죄 조직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이 작품을 갱스터 장르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놓이게 만든다.
그의 갱스터 영화는 이후 <카지노>와 <아이리시맨>으로 이어지며 확장된다. <카지노>는 폭력보다 운영과 관리가 지배하는 범죄 조직의 산업화를 그려내고, <아이리시맨>은 그 산업화된 메커니즘을 통과해온 인간이 결국 맞이하게 되는 침묵과 공허를 담아낸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마틴 스코세이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택시 드라이버>다. <택시 드라이버>는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퇴역 군인 트래비스 비클의 내면을 따라가는 심리 드라마다. 고립과 분노 속에 살아가던 트래비스 비클이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점점 폭력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다루며, 도시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 한 인간의 시선을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의 균열과 불안을 정면으로 포착한다.
이 영화에서 정치인과 뉴스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정치와 미디어가 폭력을 이용하고 조장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정치인은 범죄와 혼란을 내세워 지지를 얻고, 뉴스는 폭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를 키운다. 정치와 뉴스는 사회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화면 밖의 거리와 개인의 삶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외롭다. 트래비스는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감각을 키워간다. 영화는 정치와 뉴스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사회’와 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의 폭력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처럼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분노를 폭력으로 바꾸는 서사는 이후에도 반복되어 왔고, 오히려 현대에 들어 더욱 선명해졌다. <택시 드라이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인 <레옹>과 <조커>는 모두 사회로부터 밀려난 고독한 남성의 어두운 내면을 전면에 내세우며, 스코세이지가 남긴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코미디의 왕>과 <분노의 주먹>은 뒤틀린 욕망과 결핍을 품은 남성이 각각 언어와 신체라는 서로 다른 방식의 폭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과정을 그린다. <셔터 아일랜드>는 한층 더 나아가 망상 속에 살아가는 남성의 파멸의 순간을 그려낸다.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코미디의 왕>,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코세이지가 꾸준히 천착해온 폭력의 기원과 뒤틀린 인물의 내면을 숨 막히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2002년 <갱스 오브 뉴욕>을 작업하며, 로버트 드 니로를 잇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난다. 이후 스코세이지는 디카프리오와 함께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셔터 아일랜드>를 연달아 작업했고,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플라워 킬링 문>까지 이어지며 총 여섯 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이 협업은 스코세이지의 후반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축이 된다.
<갱스 오브 뉴욕>은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 이면에 자리한 폭력과 욕망의 역사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복수를 위해 갱단의 세계로 들어간 한 청년이, 도시가 폭력 위에 유지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접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뉴욕이라는 도시의 민낯을 보여주며, 특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에비에이터>는 당대 최고 수준의 부자였던 하워드 휴즈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때 하워드 휴즈의 전기 영화 각본을 쓰다 이 작품의 제작 소식을 듣고 작업을 중단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휴즈는 미국 사회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화려한 성공으로 사람들의 동경을 받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강박과 고립 속에 무너져가고 있었다. 스코세이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미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드러낸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실존 인물 조던 벨포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월스트리트에서 대규모 주식 사기를 벌이며 폭주하는 욕망의 세계를 따라가는 영화다. 스코세이지는 70세에 가까운 나이에 자본주의의 광기와 에너지를 놀라울 만큼 젊고 과감한 리듬으로 포착해냈다. 뛰어난 유머와 속도감 있는 연출 덕분에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몰입감을 유지하며,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입문작으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그의 작가주의 성향은 ‘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스코세이지가 평생 붙잡아온 진실이란, 겉으로 포장된 세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폭력,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구조다. 갱스터 영화에서든, 전기 영화에서든, 혹은 심리 드라마에서든 그는 언제나 화려한 성공담이나 영웅 서사를 벗겨내고, 그 아래에 뒤엉켜 있는 불안과 파괴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영화 보존 활동과 다큐멘터리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그는 ‘필름 파운데이션’과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고전 영화를 복원하며,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영화들의 진짜 얼굴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왔다.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탈리안 아메리칸>, <내 이탈리아로의 항해>, <조지 해리슨: 리빙 인 더 머티리얼 월드>에서 스코세이지는 신화처럼 소비되어온 인물과 문화의 표면을 걷어내고, 그 이면에 놓인 개인의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차분히 기록한다. 그는 설명하거나 미화하기보다, 말해지지 않았던 층위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는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강렬한 세계를 다루지만 그 끝에 비정한 현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실화를 자주 선택하는 감독인데, 그 이유는 실제 이야기 속에 인간의 욕망과 폭력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스코세이지는 성공한 인물이나 위대한 사건을 보여주기보다 그 뒤에 감춰진 불안과 폭력에 더 관심을 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의 경험과 시선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진짜 모습을 끌어올린다. 결국 스코세이지의 작가주의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들이 외면해온 진실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는 디카프리오와 함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왓 해픈스 앳 나이트>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 어떤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해보는 마음으로 그의 지난 영화를 다시 꺼내어보면 좋은 시간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