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시사요정 지상파 진출 사건.

by 글릭

우육빛깔 시사요정의 지상파 진출 기념. 아래 그림은 오래전 어떤 기사에 실린 모습을 보고 스케치해 두었던 것이다. 사진 속의 그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ddanzi2.jpg 지금에 비하면 꽤 날렵한 외모의 총수.


그는 이미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이것은 기존 시스템의 도움 없이 순전히 개인적 역량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학연과 이익을 기반으로 공고히 자리 잡은 이 나라의 권위주의는 끊임없이 무시하고 견제했지만, 그것들은 고작 그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을 뿐이다. 이것은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가장 안정된 유년기를 보냈던 7,80년대 생들로의 세대교체라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물려있다. 그의 대중적 화법과 인기에 가려져 있지만 이런 그의 역사적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마 역사를 통틀어서도 한 개인의 힘으로 이 정도로 사회에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음모론자. 그의 존재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공격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이것은 약간은 권력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들려는 그의 전략적 화법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합리적 추론보다는 관습적이고 겉치레에 집중하는 이 나라의 풍토에서 비롯된 나태한 사고방식들의 졸렬함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모든 판단이 옳지 않다. 몇몇 주장의 오류를 들어 그를 음모론자로 몰려는 자는 그 기준의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대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추론은 언제나 참이었던가. 그렇다면 음모론자가 아닌 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처럼 치밀하고 종합적으로 사실들을 나열하고 추론하고 검증하는 인물이 공중파에 있었던가.


아마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그가 만약 순탄하게 사회 기득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면 그는 그저 조금 뛰어난 정도의 평범한 인물에 머물렀을 것이다. 타고나기를 부조리에 순응할 수 없었던 이 사람에게 그 틈을 찾아 비집고 나아갈 능력이 함께 주어진 건 한국사회로서는 약간의 행운이라 말하고 싶다. 그의 분투와, 그리고 기존 문화가 주는 고리타분함과 불합리함에 염증을 느껴오던 이 사회의 대중들이 그를 발견해냄으로써 그는 일종의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에게 헌신이라는 거추장스런 단어는 필요 없다. 그는 그저 즐길 뿐이다. 한 개인의 즐거움이 그 사회의 이익이 되는 것만큼 바람직한 일이 또 있을까. 이 새로운 출발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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