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칠. 제 인생 첫 책이에요

내 피땀눈물

by 글지마










책이 배달 왔다.


어린이 날과 대체 휴일이 달력에 듬성듬성 징검다리를 둔 4월에, 죄송하게도 인쇄소를 독촉해서 결국 제시간에 책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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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헛. 이쪽에 놔주세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택배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럽게 손님을 맞이했다. 확인 차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계신 거였는지, 이 무겁게 쌓은 상자 위에 기사님은 책을 내려놓으시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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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책이...!

큰 감동이 몰려들었다. 책을 만들 때의 고생은 싹 사라지진 않고, 그래도 요 무섭게 쌓인 꾸러미가 참 반가웠다. *책을 훌훌 훑어보며 어디 누락된 곳은 없는지, 잘못 찍혀 나오진 않았는지 확인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때 의심을 했어야 했어.)




* 맨 처음 책을 받았을 때 확인하는 절차는 무척 중요하다. 인쇄소의 잘못으로 책 인쇄에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수정 요청을 해야 하며, 내 실수를 발견하더라도 빨리 대처할 수 있다.


** 나중에 실수로 사진 한 개가 누락된 것을 알고 스티커 주문을 맞췄다. 다시 한번 후원자 님 죄송합니다. (참 매번 감사하고 죄송하다.)










이제 배송 포장을 할 차례다.

사실 책을 만들면서 진성으로 글(원고)을 쓴 시간은 그 외의 모든 시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글 쓸 때는 작가였지만 이후에는 편집자가 되었고, 이때는 배달 업체, 홍보팀의 일원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은 건데,




책을 만들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책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 이거 글 쓰는 시간보단 사진 편집하는 시간이 더 걸리겠다. 책을 파는데 왜 디자인에 이렇게 공들여야 돼.


하지만 정말 '글'만 쓰고 싶었다면 나는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어야 한다. 단순히 나는 편집 같은 거 못해, 결론을 내리고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열정을 쏟아부은 까만 글씨'를 누군가가 볼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 없었다. 웹사이트에 홀로 글을 쓰는 짓은 너무도 고독해서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간절히 내 책을 읽어주길 바랐다. 누구든 그게 누가 됐든.


때문에 나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글을 쓰는 '행위'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고독하고 서글퍼서 책이라는 형체가 있다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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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면 일상의 사소한 묘미가 생긴다. 책을 쓰면서 나는 포토샵과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배웠으며 (이것은 자격증 수업에서 배우지 않는 노다가 편집 기술!) 두 번째 이름이 생겼다. 명함을 만들었고 신기하게도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아직도 맺고 있다.



무엇보다 집에 내 흔적이 담긴 물건이 늘어났다. 포장지를 꾸밀, 내 이름을 판 도장이 생겼고 그저 컴퓨터에 저장해두었던 사진이 종이에 찍혀 엽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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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하는 손길이 마치 유능한 기계처럼 칼 같았다. 단순 노동의 즐거움과 육체노동의 근육통을 동시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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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어낸 많은 흔적들. 짧은 인간의 삶에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는 말은 언감생심 꿈도 안 꿨지만 어쨌든 여기 내 손도장이 꾹 찍힌 물건들이 마구마구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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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감사한 마음으로 포장했다.


워낙 덤벙대고 부주의한 성격 탓에 얼마나 열심히 후원자 분들의 선택사항을 살펴봤는지 모른다. (덕분에 리워드가 잘못 배달됐다는 메시지는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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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와 책을 종류별로 수많은 플라스틱 봉투에 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 운동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무척 큰 물결의 죄책감이 들었다.



* 현재는 크래프트지(갈색의 까끌까끌한 포장지)로 포장을 하고 있다. 아마 다음 책도 그렇게 포장하지 않을까 싶다. PLASTIC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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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포장 포장.

뜯기는 플라스틱 봉투. 비닐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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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이니 어느새 세 개의 탑을 쌓았다. 우왓, 얘네들을 어떻게 우체국에 가져가지. 당장 걱정이 되었지만 그만큼 뿌듯했다. 이리 많은 응원을 받고 탄생한 책이라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제가 아니라 제 책이요 :-)


특별히 리워드 직접 수령을 선택하신 분들께는 (굳이 배송 봉투가 필요 없으니) ***공무원 사무용 서류에 포장해 드렸다. 직접 얼굴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니 열심히 열심히 준비했다.




***공무원 사무용 서류는 우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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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송을 마쳤다.


가끔 간간이 내 책을 구매했다며, 잘 읽었다고 보내주시는 메시지를 볼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나와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기에 내 책을 고르셨을 테니 더 기쁠 수밖에 없다.



아침에 가끔

혹은 홀로 글을 쓰느라 빠듯한 저녁을 보낼 때 불현듯, 이런 메시지를 받고자 나는 결국 책을 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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