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땀눈물
책이 배달 왔다.
어린이 날과 대체 휴일이 달력에 듬성듬성 징검다리를 둔 4월에, 죄송하게도 인쇄소를 독촉해서 결국 제시간에 책을 받게 되었다.
"아, 헛. 이쪽에 놔주세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택배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럽게 손님을 맞이했다. 확인 차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계신 거였는지, 이 무겁게 쌓은 상자 위에 기사님은 책을 내려놓으시곤 사라졌다.
드디어 책이...!
큰 감동이 몰려들었다. 책을 만들 때의 고생은 싹 사라지진 않고, 그래도 요 무섭게 쌓인 꾸러미가 참 반가웠다. *책을 훌훌 훑어보며 어디 누락된 곳은 없는지, 잘못 찍혀 나오진 않았는지 확인했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때 의심을 했어야 했어.)
* 맨 처음 책을 받았을 때 확인하는 절차는 무척 중요하다. 인쇄소의 잘못으로 책 인쇄에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수정 요청을 해야 하며, 내 실수를 발견하더라도 빨리 대처할 수 있다.
** 나중에 실수로 사진 한 개가 누락된 것을 알고 스티커 주문을 맞췄다. 다시 한번 후원자 님 죄송합니다. (참 매번 감사하고 죄송하다.)
이제 배송 포장을 할 차례다.
사실 책을 만들면서 진성으로 글(원고)을 쓴 시간은 그 외의 모든 시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글 쓸 때는 작가였지만 이후에는 편집자가 되었고, 이때는 배달 업체, 홍보팀의 일원처럼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은 건데,
책을 만들면서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거지 책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 이거 글 쓰는 시간보단 사진 편집하는 시간이 더 걸리겠다. 책을 파는데 왜 디자인에 이렇게 공들여야 돼.
하지만 정말 '글'만 쓰고 싶었다면 나는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어야 한다. 단순히 나는 편집 같은 거 못해, 결론을 내리고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열정을 쏟아부은 까만 글씨'를 누군가가 볼 때까지 그저 기다릴 수 없었다. 웹사이트에 홀로 글을 쓰는 짓은 너무도 고독해서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간절히 내 책을 읽어주길 바랐다. 누구든 그게 누가 됐든.
때문에 나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글을 쓰는 '행위'로는 만족할 수 없었고, 고독하고 서글퍼서 책이라는 형체가 있다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책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익숙해진다면 일상의 사소한 묘미가 생긴다. 책을 쓰면서 나는 포토샵과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배웠으며 (이것은 자격증 수업에서 배우지 않는 노다가 편집 기술!) 두 번째 이름이 생겼다. 명함을 만들었고 신기하게도 책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아직도 맺고 있다.
무엇보다 집에 내 흔적이 담긴 물건이 늘어났다. 포장지를 꾸밀, 내 이름을 판 도장이 생겼고 그저 컴퓨터에 저장해두었던 사진이 종이에 찍혀 엽서로 만들었다.
포장하는 손길이 마치 유능한 기계처럼 칼 같았다. 단순 노동의 즐거움과 육체노동의 근육통을 동시에 경험했다.
내가 만들어낸 많은 흔적들. 짧은 인간의 삶에서 이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는 말은 언감생심 꿈도 안 꿨지만 어쨌든 여기 내 손도장이 꾹 찍힌 물건들이 마구마구 펼쳐져 있다.
참 감사한 마음으로 포장했다.
워낙 덤벙대고 부주의한 성격 탓에 얼마나 열심히 후원자 분들의 선택사항을 살펴봤는지 모른다. (덕분에 리워드가 잘못 배달됐다는 메시지는 받지 않았다.)
엽서와 책을 종류별로 수많은 플라스틱 봉투에 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 운동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무척 큰 물결의 죄책감이 들었다.
* 현재는 크래프트지(갈색의 까끌까끌한 포장지)로 포장을 하고 있다. 아마 다음 책도 그렇게 포장하지 않을까 싶다. PLASTIC ATTACK!
끝이 없는 포장 포장.
뜯기는 플라스틱 봉투. 비닐봉지.
차곡차곡 쌓이니 어느새 세 개의 탑을 쌓았다. 우왓, 얘네들을 어떻게 우체국에 가져가지. 당장 걱정이 되었지만 그만큼 뿌듯했다. 이리 많은 응원을 받고 탄생한 책이라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제가 아니라 제 책이요 :-)
특별히 리워드 직접 수령을 선택하신 분들께는 (굳이 배송 봉투가 필요 없으니) ***공무원 사무용 서류에 포장해 드렸다. 직접 얼굴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니 열심히 열심히 준비했다.
***공무원 사무용 서류는 우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배송을 마쳤다.
가끔 간간이 내 책을 구매했다며, 잘 읽었다고 보내주시는 메시지를 볼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나와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기에 내 책을 고르셨을 테니 더 기쁠 수밖에 없다.
아침에 가끔
혹은 홀로 글을 쓰느라 빠듯한 저녁을 보낼 때 불현듯, 이런 메시지를 받고자 나는 결국 책을 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