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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Dec 15. 2018

나 너랑 손잡고 싶어

터널








어제는 무엇을 했을까. 일기는 요즘 오늘이 아니라 어제에 대해 회상하는 기록장이 되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너무 열중하면 주변을 안 둘러본다. 앞으로 뻗어나갈 생각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과거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오늘 아침에 뭐 먹었더라.'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내 식사와 삶의 패턴을 현재의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의사는 이런 말을 했단다. 머리에 쏟아지는 정보량이 많아질수록 과거의 기억이 밀려나 사라진다고.


어제 아는 작가님의 북 토크를 다녀왔다. 지각을 한 탓에 헐레벌떡 의자에 앉았다. 친절한 작가님의 보충 설명 덕분에 현재 어떤 이야기 중이었는지 금방 파악했다. 미래에 우울하고 절망할 순간에 쉽게 불러일으킬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이런 감정적인 순간에 누군가를 엿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지만, 눈을 감은 옆자리의 누군가와 웃고 있는 누군가가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2주 전에 김장한 거,라고 말하기엔 앞에 놓인 종이에 '아주 좋은 결과를 얻어 최고의 기분이었을 때를 떠올려보자'는 문장이 눈에 밟혔다. 좋은 결과라. 내 성취했던 기억이란 마치 서로의 허리에 단단한 끈을 동여맨 것처럼 고생했던 기억들이 줄줄이 딸려 왔다. 결과에는 매번 마땅한 과정이 쫓아왔다. 남들은 반대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내게는 매번 그랬다.


힘들게 맺은 결실에 대해 기뻐하기보단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그렇게 죽어라 했는데 이건 받았겠지.' 1등 할 줄 알고 달리는 경주 같았다.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단 나를 불신하며 쥐어짜 낸 노력에 마땅히 주어지는 결실로 여겼다. 결국 나는 행복한 표정 한 번 못 지었고, 작가님은 다음 파트로 넘어갔다. 당혹스럽고 고마웠다.


이번에는 현재에서 미래를 마주했다. 작가님의 말을 따라 요즘 나를 괴롭히는 고민을 손에 쥔 채 나는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으니 터널은 더욱 컴컴해져 그럴싸했다. 근데 터널이 이렇게 짧아도 되나. 나는 금세 보이는 반대편의 햇빛을 보며 터널을 조금 연장했다. 작가님은 그 햇빛에, 바깥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 문제를 해결한 미래의 나를 마주하라며.










저쪽의 나는 나를 쏙 빼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그 뒤에는 커다란 산이 놓여 있었다. 설산이었으나 나무들은 여름처럼 푸르렀고 그는 반팔 위에 체크무늬 남방을 겹쳐 입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2년 전에 나는 저렇게 웃었다. 미국에서 찍은 모든 사진의 나는 저렇게 바보처럼 천진난만했다.


그 풍경이 의아해서 계속 바라봤다. 내 손도 다시 들여다봤다. 터널 속 나는 굶주림을 손에 쥐고 왔다. 미래의 너는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멋진 물질들을 몸이든 어디에든 치장하고 있으리라 기대하고 왔는데. 너는 나보다 가벼운 차림이었다. 아주 소박했다. 그러면 안 되지. 이 상황을 부정하면서도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 현재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이거였구나, 싶어 웃겼다.


다시는 저렇게 웃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의 친구를 알고 싶었다. 더욱 친해지고 언제쯤 그쪽으로 갈 수 있을까 묻고 싶었다. 저기 보이는 설산이 네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스위스 그 산이 맞는지, 여긴 놀러 온 건지 이곳에 사는지 궁금했다. 소설을 몇 편이나 썼는지 글은 쓰면서 그렇게 웃고 있냐고, 아니면 글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한지 어깨 붙잡고 흔들어 볼까. 어차피 손 안 닿을 거 알기에 나도 그저 웃었다.


너만큼은 아니지만 그럴싸한 미소를 지었다.








* 이 매거진은 모바일로 읽기 좋은 글 편집을 거칩니다. 모든 글 및 이미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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