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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Dec 29. 2019

기부 좀 하시죠

그게 뭐 별거라고





자꾸만 미루고 있었던 후원을 오늘, 12월 29일부터 시작했다.



'텀블벅'에서 진행됐던 청소년 지원 펀딩



생리대가 없다니. 얼마나 우울할까.


나는 취업 준비할 때를 떠올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취준생은 커피 한 잔도 마음 편히 못 마신다. 그런데 생리대는 어떨까. 여성 생필품인 생리대는 팬티라이너의 경우 1팩이 3천 원대에서(세일 시) 6천 원대까지 다양하다. 오버나이트(기저귀 수준의 불편함)는 몇 개 들어있지도 않으면서 비싸긴 홍대 파스타만큼 비싸다. 당시 친구가 가끔 보내주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에 "황송합니다 마마" 장문의 카톡을 보냈던 내게도 생리대 값은 대단했다.


20대 중반에 느끼는 빈곤은 취업으로 (그나마)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은 어떻게 할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도 보호자 사인이 필요하고 10시 이후에는 pc방에도 못 들어가는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떨까.


나는 수치스러웠다. 사람들은 흔히 의식주 해결이 최소한의 인권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이력서를 쓰고 파리바게트 1200원 소보로 빵으로 점심과 저녁을 동시에 때울 때보다 생리대 가격 앞에서 고민하는 내가 더 불쌍했다. 밥은 굶고 피곤한 건 참으면 되는데 생리는 못 참는다. 불가항력적인 신체 구조의 문제(난 이걸 정말이지 '문제'라고 인식한다. 생리와 얽힌 즐거운 추억은 손톱 때만큼도 없다)를 해결 못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파운데이션



그래서 새해도 됐는데 후원을 새로 시작했다. 내 관심사는 어찌 그렇게 잘도 아는지, 인스타그램 홍보 계정에 곧잘 등장했던 후원처를 떠올렸다. 얼마나 괜찮은 단체인지 사전 확인을 위해 "지파운데이션" 사이트를 방문했다.


기부는 헤프게 하되 후원처는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2017년 '사랑의 열매' 비리와 최근 '구세군' 빌딩과 관련한 뉴스를 접한 탓이다. 위 두 단체의 기부금 사용에 대한 갑론을박은 지금도 여전하다. 해당 관계자들의 5년간 부당 사용 금액이 7억이라고 부풀려진 것에 비해 13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읭?) 정정보도와, 빌딩은 기독교 신자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는 해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 뉴스들은 논란 제기만으로도 내 유년 시절 기부에 대한 기억을 훼손시켰다.


겨울길, 집에 돌아갈 때면 엄마가 내 손에 쥐어준 몇천 원. 나는 백화점 앞에서 꽁꽁 언 손으로 벨을 흔드는 봉사자들 앞에 놓인 빨간 냄비에 그 돈을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을 때면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뿌듯했다. 나는 배꼽에 공수를 하고는 쑥스러워 후다닥 엄마 옆구리에 달라붙었다.


비록 내 추억은 훼손됐지만, 기부 단체를 못 믿겠다는 핑계로 후원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내 인생 첫 정기후원은 2015년도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스타벅스 공짜 쿠폰 2장을 준다길래 뭣도 모르고 신청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당시 광고 문구가 "아이들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주세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 후원금 1만 원. 스타벅스 음료 2잔과 딱 비슷했다.


"나중에 후원 끊지 뭐."


내 마음의 무게도 딱 그 정도였다.


그 정도라서 다행이었다. 대단한 사명감을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돈 빠져나가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정기 결제는 별도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자가 안 온다). 두 달 후였던가. 집으로 날아온 후원자 카드를 보고 정기 결제를 깨달았다.


사실 가끔 고민했다. 한 달에 1만 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괜히 그것마저 궁한 순간이 있다.



내가 왜 일면식도 없는 애한테 왜. 지금 나도 돈이 없는데.



하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돈이 없을 때만 후원을 했다. 생활비가 넉넉할 때면 '나' 생각하기 바빴다. 저번 달에 찜 해두었던 원피스를 구매했고, 가족과 먹을 케이크를 사들고 저녁을 맞이했다. 지갑이 풍족해질 때면 더욱 철저히 나만 생각했다. 여행은 사진을 남기지만 기부는 돈을 빼간다. 우리는 동남아 여행은 자랑해도, 결손 아동의 식비를 해결해주고 있다고 과시하진 않는다.


후원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숨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다들 마음껏 자랑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마음껏 칭찬해줄 수 있도록. 혹시 나처럼 미루어왔다면 기부 좀 하시라고, 경솔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처음 들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있는 문장 두 개를 아래에 덧붙여본다.



입양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한 아이의 인생은 바꿀 수 있다.

- <집사부일체> 중 신애라 님의 말씀


아가야, 너는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거야.

- 안젤리나 졸리, 유엔 난민기구 글로벌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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