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이다. 체계와 질서에서 발생하는 복잡함만큼 불편하고 풀기 어려운 혼란함이 현 세태에서 물씬 풍기는 세상이다. 괴로움과 상실감과 우울함 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을 너무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상이다.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서라도. 인간은 혼자 사는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소위 '길 잃은 어린 양'의 잃어버린 길이라도 가리켜 줄 손가락이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내리는 눈과 비 막아줄 지붕 기둥이라도 같이 세워 줄, 때로는 흉폭한 이빨로 으르렁거리는 포식자를 막아줄 울타리 기둥이라도 같이 세워 줄 그 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손의 주인을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어른이라 부를 테다. 자연과학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진짜 어른. 세포의 DNA로는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진짜 어른이, 30대 중반이 돼서야 이 세상에 부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읊조리기 시작하니 진짜 어른이 필요한 시대이다. 설혹 그 어른이 당대의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깨어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던진다 하더라도, 정제되지 않은 몸짓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 하더라도, 사람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과 이해 그리고 따뜻한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다면 말이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시꺼먼 정장 대신 빨강과 검정이 화려한 복장을 입었다. 가죽장갑 혹은 망사장갑을 곁들인 채 공중파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전부 다 그러면 좀 어떤가. 만연한 부조리를 시원하게 씹어댄 우리 마왕 해철이 형은 다 용인된다, 진짜 어른이기 때문에.(일면식은 전혀 없지만, 고인의 마지막 나이와 지금 내 나이를 비교하면 충분히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겠고 형이라 부르고 싶다.)
만인의 응원가로 자리매김한 곡 <그대에게>가 해철이 형에게 대학가요제 대상을 선사한 것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니 말쑥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전주에서부터 이미 성공의 확신을 준 <그대에게>를 부르는 장면 또한 그때로부터 30년은 지난 후에야 겨우 자료 화면으로 보게 됐음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해철이 형이 제대로 '각잡고' 노래하는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되려 다른 경로로 접한 후 음원을 찾아 듣거나 흥얼거렸을 뿐. 일례로 <Lazenca, Save Us>와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노래방에 같이 간 친구 녀석이, 해철이 형과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녀석이 불러준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이때가 아마도 2005년 즈음이겠다. <그대에게>는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 고등학교 일 학년 시절 방송반 활동을 하며 접했고, 그 외 다른 많은 노래는 해철이 형의 사망 이후 다른 가수가 불렀던 방송을 통해 듣게 됐다. 개중 복면가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현우 님에게 무한한 감사 인사를 올린다.
사실 해철이 형의 첫인상은 굉장히 유쾌하지 않았음을, 겸허한 고백 한 자락 꺼내든다. 해철이 형이 진행한 라디오는 기록으로만 알고 있는지라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많은 이가 기억하는, <MBC 100분 토론>에서 보여준 그의 시대를 앞서간 발언들이 그 이유가 되겠다. 날카로운 표정과 정중하고 논리 있지만 강한 어조, 그리고 꾸밈없이 직설적인 의견 개진이 당시로서는 어리다고 할 나였기에 유쾌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당사자 스스로 엄청난 뭇매를 맞을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옳다고 믿는 신념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형법상 규정되어 있던 간통죄 폐지를 말했다. 당시의 도덕 기준과 법이 혼연일체인 시대 분위기에서 국가가 가정사에 끼어들어 죄를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고 역설했다. 간통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에도 충분히 공분을 사는 발언이었다. 대마초의 비범죄화를 역설하고, 교내 체벌 금지를 주장했다. 범죄라고 규정하여 광장에 목매달고 아이들이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선을 행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무가치하고 효과 없는 방법이라 일갈했다. 똑같이, 대마초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비행을 방조하자는 논조가 아니었지만 시대를 앞서간 생각은 무수한 돌팔매질의 대상이 됐다.
그가 수면 위로 꺼낸 것은 지는 싸움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맞섰던 쟁점이었으며 당시 우리 사회 다수가 법과 도덕을 무기 삼아 철저하게 고수하던 문제였다.(시간이 흘러 교내 체벌 금지는 실제로 실현됐고 간통죄는 그의 사망 이후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고 형법에서 사라지게 됐다.) 동시에 이미 인터넷의 사용과 영향력이 현실 세계에 깊숙이 파고들었던 시기였다. 때문에 방송 이후 해철이 형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욕설 댓글과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고, 자칫하면 그는 연예계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바로 진짜 어른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신념을 곧게 세우고 그것을 밝히는데 하등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반대 의견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보다 논리를 품은 품격있고 굳건한 언어를 고수했다. 스스로의 선택에 필연하는 결과를 회피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여유와 넉넉함도 보여줬다. 정치 신념에 대한 보복으로 행해진 블랙리스트 등재와 그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던 약 10년의 시간과, 그가 사망한 해로부터 다시 약 10년의 시간을 바라본다. 해철이 형 같은 진짜 어른은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가 질문을 던져보지만 대답은 원하는 만큼 긍정적이지 않다.
어른의 존재의미를 궁구 하는 내 발걸음의 시작은 언제인가. 어째서 이 문제에 천착하는지를 돌이켜본다. 무척이나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첫 번째 흔적은 고등학교 이름표를 달고 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내가 속한 반을 책임졌던 담임 선생님의 종례 시간. 조용히 들어오신 선생님은 교탁 앞에 선 채 무거운 침묵을 드리웠고 웅성거리던 우리는 점차 침묵의 무게에 빠져들었다.
"너희 부모님도 다 노동자다 이놈들아. 그걸 알아야지..."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침묵. 선생님의 눈은 교실 천장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당시 30대 중반의 미혼이었던 그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너희들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땀 흘려 희생하면 그게 노동자지, 뭐가 노동자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가끔 툭툭 던지던 선생님이었지만, 그날의 말은 유독 쓴 향기를 풍겨 내 무지를 용서했기에 그저 선생님의 씁쓸함을 곱씹을 따름이었다. 그의 눈과 입에 배어있던 약간의 분기와 약간의 자조. 그때의 그보다 몇 년은 더 나이를 먹은 지금 돌이켜보니 그는 분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비웃고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선생님과 관련된 제반 사실을 기반으로 추론은 할 수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모르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우리 사회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2000년대부터 하나씩 손가락으로 꼽아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와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가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 청년들은 이 사회를 헬조선이라 칭하기 시작했고, 부정하기 힘들 정도로 이 사회의 매일은 어둡고 거칠었다. 동시에 꽃 같은 아이들의 영혼이 바닷속으로 영원히 사라졌고 짐승 같은 가짜 어른들만 비겁하게 살아남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진실된 사죄의 마음으로 고개 숙인 진짜 어른은 없었다. 메르스(MERS)가 이 땅을 할퀴었고 코로나(COVID-19)가 절망의 칼을 휘둘러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애써 외면하던 온갖 갈등이 시뻘건 마그마로 터져 나와 여전히 이 땅을 뒤덮고 있다. 빈부 격차, 세대와 성별과 직업과 지역을 망라하는 모든 갈등과 혐오는 잔혹할치만큼 끔찍한 수준이다.
더 과거로 넘어가지니 1990년대 말의 IMF가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렇구나, 깊은숨을 내쉰다. 끝나지 않을 질곡의 세상을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토록 힘든 것이다. 스스로의 언행에 책임지고 스스로의 선택과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옳다고 믿는 가치가 왜곡되고 파괴될 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조차 원하지 않는 결과가 드리워져 고통에 휩싸여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뒤따라올 세대가 걸어갈 길이 너무나 어두우니 헤매지 않도록 불을 밝히고 넘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다져야 하는 것이 어른의 책임이기 때문일 테다.
등대. 나침반. 북극성. 기둥. 어느새 마음속에 새겨진 해철이 형의 얼굴이자 모습을 묘사하자면 이렇다. 해철이 형을 그리며 어른의 자격을 곱씹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어른이 현관문을 연다. 잔뜩 칠해진 낮 위에 잔뜩 뿌려진 밤의 시간 사이로 옅은 현관조명등이 눈을 뜬다. 저마다 다른 그림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어른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빠, 엄마, 아들 혹은 딸로 돌아간 어른의 책임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날 얽매는 가장 찐득한 주제 중 하나는 아버지이자 죽음이다.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아버지는 황망히 세상을 떠났고 15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시간은 약이 되질 못하고 깊은 고민만을 안겨준다. 해소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후회, 답을 구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는 따라서 찐득한 한숨과 고찰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해철이 형의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 또한 착각했듯, 해철이 형의 노래가 전부 사회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전의 음악 활동에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이 그가 오래 품었던 깊은 고민의 무게이다. 그가 바라본 그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숙명이라 해야 할 개인의 죽음까지. <아버지와 나 Part I>는 그의 첫 번째 고백이자 어찌 보면 긴 여정의 중간 과정에 해당한다. 아들인 신해철이 아버지를 인식하고 공감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읊조리는 가사는 그의 고백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가사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아버지와 나 Part II>는 연주곡이고, <아버지와 나 Part III>는 공개하지 않았고 내레이션 트랙만 완성되어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나 Part III>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철이 형을 추모하고자 생전 깊은 연을 가진 이승환 님과 하현우 님이 유재석 님과 함께 별도의 곡으로 완성시키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 Part I>의 핵심은 아버지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믿는다. 해철이 형의 어린 시절에 투영된 그의 아버지의 모습을, 해철이 형이 아버지가 된 후 비로소 이해하게 됐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발표되지 못한 <아버지와 나 Part II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같은 아버지이자 가족을 책임질 어른으로서 깊이 그의 아버지의 생을 공감하고 연민하며 수긍하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부모님 전 상서'에 해당한다.
"아이는 열리지 않는 그의 방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칭찬에 굶주리고 대화에 목이 마른 아이였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자, 아이는 망치를 들어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상의 머나먼 끝에서 고독의 눈물이 흐르던 날
아이는, 그가 스스로 방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문을 잠근 적 역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오래전 박아 넣은 날카로운 못들을 하나씩 빼내자 문짝에선 피가 흘렀고 문을 떠밀자 그 문은 힘없이 열렸으며 그 문의 저편엔 주름과 세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수줍은 아버지와 겸연쩍은 아들은 난생처음 뺨을 맞대게 되었다."
어른이란, 발자취로 남은 지난 궤적을 돌아보려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깨닫고 반성하고 배울 줄 알아야 한다. 마음에 품은 칼의 예기를 다스리고 부드러운 칼집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서 흠결을 찾기보다 빛나는 점을 보려 해야 한다. 종내에는 듣고 알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샌가 아버지를 멀리 하고 마음을 닫아걸고 원망하기만 하던 나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은 어른이 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나는, 해철이 형의 읊조림을 마주한 덕분에 뒤늦게나마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어른이 되는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외로운 삶이다. 인간은 어찌 이렇게 외로울까 싶을 만큼 외로운 삶이다. 사회에 발을 내딛고 쭉 어른의 길을 걸었다고 여겼지만 돌아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외로운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가득 채운 찐득한 고민들 떼어버리고 왁자지껄 웃든 욕을 한바탕 뱉든 외로움을 토로하든, 어른의 족쇄는 벗어던지고 같이 마주한 채 술 한 잔 기울일 어른 신해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