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odbbang.page.link/iVuFgwUHSpraq2NB8
연애를 둘러싼 수다의 밤을 두 번 보내고 비로소 독백의 밤 아래 목소리를 밝힌다.
연애를 기피하는 것이 만연해진 현대 사회라 했다. 어쩌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납득할 수 없는 명제를 논하며 우리가 모여 생각을 나누는 이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 행위에 천착했던 두 번의 자리, 두 시간의 서울 아래 펼쳐진 밤.
연애란 누군가는 맺기를 주저하는 관계일 수도. 사랑이 목적이 되고 애정의 교환이 필수조건이 되는, 성문 되지 않았으나 관습의 지위를 획득하는 관계. 부러 의문과 의심의 막대기를 휘둘러 이리저리 쳐댔던 행위는 의도치 않게 시간 속에 침전해 있던 과거를 불러일으켰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필연적인 운명이었을지도.
사랑의 말을 귓가에 건네고 사랑의 마음을 온몸으로 주고받았던 옛 인연의 얼굴.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채취. 그들이 차지했던 내 안의 공간. 꾹꾹 눌러쓴 우리의 역사. 너와 내가 한때 새겨 넣었던 우리의 관계를 습기로 먹먹한 어두운 하늘에 흩뿌려 반추한다.
나는 왜 연애를 하려 하는가. 나는 왜 연애를 삶의 일부로 인식하고 매일의 시간을 그려나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물감으로 여기는가. 가격이 오르고 때로는 질감이 바뀌어 내가 의도했던 그림을 그리는데 심지어 방해가 될지언정 나는 왜, 연애를 듬뿍 캔버스에 올려 나의 인생을 그려나가는가. 돌이켜보건대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임을 깨닫게 된다.
외로워서일까. 누구나 적정 수준의 외로움은 지니고 살 텐데. 태생부터 외로운 존재라서 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동물이다. 그렇기에 가족을 꾸리고 집단에 속하며 사회를 일구고 살아가는 것일 테니. 단순히 여자가 좋아서, 일까. 나 자신의 성적 취향은 이성애가 맞으니 여자를 좋아하는 것 또한 맞다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이것이 연애를 원한다는 결론을 연역하지는 않는다.
지금껏 걸어온 기억 속 시간의 회랑을 종종 걸어볼 때가 있다. 종종 이곳으로 나를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그곳에 걸린 그림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 인연을 맺었던 그들과의 시간이 수많은 그림 속에 펼쳐져 있다. 나는 왜 연애를 하려 하는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오늘도 회랑 속에서 걷고 있는 중이다.
감탄사를 내뱉었던 그림 앞에 다시 선다.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그림을 조금 더 밝은 조명 아래서 들여다본다. 실망하고 상심하고 격정에 차올라 소리쳤던 애증의 그림들을 천천히 손으로 쓰다듬어본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그림의 나는 첫 번째에 그려져 있지 않다. 세 번째 그림의 나는 두 번째 그림의 나와 같지 않다. 네 번째 그림,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쭉 이어져 가장 마지막 그림까지. 안경을 깨끗하게 닦고, 순서를 뒤집어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봐도 역시 그렇다.
머릿속이 점차 환해지기 시작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유를 찾은 듯하다. 내가 연애를 갈구했던 것은, 그녀와 내가 피워낸 사랑을 온몸으로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내가 품은 이 소중함을 상대에게 줄 수 있다는 쾌감, 상대가 전해주는 사랑으로 인해 내가 달라짐을 느낄 수 있는 충만함,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하고 변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매일의 삶에 충실한 자세로 임하게 해주는 기적, 이 모든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연애를 원하는가 애써 단념하고자 하는가. 연애를 원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은 사실 이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였을지도.
연애를 원하지만 연애를 두려워한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희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사랑을 약속한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을 두텁게 연결하여 끝없이 주고받는 애정이 기껍지만 상대를 잃고 난 이후의 공백이 처절하게 쓰다. 내 안을 채웠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기에 이 자리가 다시 채워지는데 수반되는 고통은 괴롭기 그지없다. 연애의 경험이 더해질수록 상처의 고통은 경감되지 않고 되레 곱절로 악화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연애를 직시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20년 전의 상실과 가장 최근의 상실과, 과연 다를까. 겉으로 짓는 표정의 질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찌푸린 입가에 맴도는 그 쓴맛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거듭되는 상실이 더욱 두려운 것은, 연애를 갈구하는 작은 소망이 빛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이 더욱 어두운 것은, 여러 차례 쌓인 상처의 깊이가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기 때문일 테다.
작게 일렁이는 소망의 빛과 일렁이는 어둠이 끈적거리는 오늘의 밤을 또다시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