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칙연산

글쓰기에는 왕도가 있다

by 글쌤 류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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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생을 풀어주는 마사지다


글 쓸 결심을 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한 사람이라도 글 쓸 결심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글쓰기 교본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글 쓸 결심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 글 쓸 결심을 할까?’


내가 처음 글쓰기를 했던 건 누구나 그렇듯이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6년 동안 일기를 내내 쓰게 했기 때문에 타의적으로 일기를 꾸준히 써야 했다. 나는 모든 일기장을 매일 가득 메웠다. 하루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생각을 길게 적어내려가는 것이 즐거웠다. 일기를 쓰면서 글쓰는 감각을 키운 셈이다.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던 내가 진정으로 '글을 창작한다'라는 감각을 처음 알았던 건 10살 때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때다. 주제에 맞춰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꽤나 감동적인 글을 써서 제출했는데 교내에서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게 될까? 하던 글을 인정받고 나니 처음으로 ‘창작의 기쁨’을 느꼈다.


어린 시절 글의 감각을 이런 식으로 익혔기 때문일까? 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글은 세상에 없는 것을 ‘지어내는 일'이었고,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게 즐거웠다. 그렇지만 세상은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막연히 글쓰기를 전공을 삼기로 마음 먹고 문창과 입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시쓰기에 빠져 살았다. 문학 이라는 걸 제대로 배우고 나니 소설이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보다 응축된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시가 더 멋지게 느껴졌다.


졸업 후 1년 정도 방송작가로 일하다가 10년 넘게 그림책 스토리텔링 및 글쓰기 선생님과 프리랜서(글 노동자)로 살아가는 지금, 내게 글은 조금 다른 것이 되었다. 문학적인 글, 내 상처나 고통, 고뇌를 적은 글보다는 목적과 활용도에 맞는 글, 모든 사람에게 쉽게 읽히는 글이 나를 먹여 살려주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돈 되는 글’만 쓰는 나날을 보냈다. 못 다 이룬 순수 문학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신춘문예에 내려고 간헐적으로 시를 쓰기도 했지만 간절하지 않은 자에게 기회가 올 리 없었다. 습관처럼 일기쓰기나 필사하는 등 일명 ‘글 생활’이 내게 전부였다.


어린 시절 꿈꾸던 문학 작가의 꿈을 접어두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 글 생활자로 살던 나 자신을 곰곰이 돌아 보니 내가 글 쓸 결심을 할 때는 생각이나 마음이 굳어 있을 때다.


근육이 굳었을 때 기운 센 마사지를 받듯이, 글은 내게 마사지처럼 느껴진다. 꼿꼿하기만 한 마음을 딱딱하기만 한 생각을 천천히 살펴보고 어루만지거나 시원하게 주무르는 것이다. 작가들은 글을 쓰고 나면 고통스럽다는데 나는 뭔가 개운한 기분이 더 자주 든다.


근력 운동을 아무리 열심히 하면 뭐 하나, 잘 풀어주지 않으면 굳어서 몸의 모양을 망치거나 아프기 마련이다. 인생이 근육 운동이라고 한다면, 글은 인생을 잘 풀어주는 마사지인 셈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마사지가 누구에게나 맞는 게 아니듯이, 글도 모두에게 필요한 건 아닐 텐데.

어떻게 글의 맛을 알릴 수 있을까?’


글에도 왕도가 있다


내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스토리텔링과 글쓰기 교사로 일해왔기 때문에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책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내가 영감을 받은 책이 상대방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쉬운 책을 추천하면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최대한 많이 알려진, 검색하면 맨 위에 뜨는 트렌디한 책을 추천하는 데 그칠 때가 많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잘 쓰는 법을 물어보면 당황하곤 한다. 가끔 나조차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선생님’, ‘글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말이다.


어느 날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 글 어떻게 하면 잘 써요?"

어떡하지? 뭐라하지? 머릿속이 굳은 나는 할 말이 없어 농담 섞인 대답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비밀인데. 맛있는 거 사주면 알려줄게." (정말 별로인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서 농담으로 넘어가기는 했는데, 생각이 많아졌다. 글쓰기를 하려면 진짜 ‘그냥 써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걸까? 뭐, 1 더하기 1부터 배우라는 식의 깔끔한 대답은 할 수 없는 걸까?


나는 12년이 넘게 평균 연령 10세인 아이들에게 수십 가지 장르의 글쓰기를 가르쳐 왔다. 그러면서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글쓰기는 누구나 어려워 한다.

글쓰기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시작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누구나 어려워하니까.

(여기서 대부분 도돌이표를 겪는다.)

그래서 글쓰기는 시작하는 법만 알려주면 누구든 해낸다.

어쩌면 글에 왕도가 있지 않을까?


내가 일하는 곳은 아이들이 직접 그림책을 만드는 곳이라서 그동안 내가 한 글쓰기 수업은 '글쓰기를 할 필요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엄마 손에 억지로 끌려 온 아이, 그림만 그리고 싶은 아이, 자기 지식을 뽐내고 싶어하는 아이, 글쓰기에 두려움을 가진 아이 등등.


어쩌면 나는 글쓰기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달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했다. 글쓰기에 관심 없던 사람도 ‘아, 나도 글 써볼만한데?' 하는 마음이 드는 교본을 만들고 싶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현자처럼 말하기 보다 "그럼 이거부터 해볼래요?" 하는 손길을 내미는 책 말이다.


글쓰기의 첫걸음이 ‘일단 써보라’인 이유는 글쓰기에서 반복적인 연습이 중요해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첫 문장부터 완벽하게 쓰려고 하므로 글을 어려워하고 두려워한다. 한 번에 훌륭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글을 쓰려다 보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있는 멋진 글을 한 번에 완성하려 하다 보니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고 끔찍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글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단 써보고, 나중에 고치면 되는 일이다.


문득 수학이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어렸을 때 매일 열 몇 장씩 풀던 더하기, 뺄셈, 곱하기, 나누기 학습지가 떠올랐다. 글쓰기와 수학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수학을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사칙연산을 반복해서 배우듯, 글쓰기에도 그런 기본 원리들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에서는 1+1처럼 명확한 출발점이 있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는 그 기초가 어디부터인지, 어느 지점에서 중급이 시작되고, 고급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내가 접한 많은 작법서는 실용서와 감성 에세이의 중간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의 글쓰기 작법서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쓰니,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글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이런 내용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글쓰기가 누군가에게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는 점, 답이 없다는 점, 혼자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사실 맞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딱 떨어지는 원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긴 글을 줄여서 세 줄로 요약 하듯이, 글쓰기도 직관적으로 한 방에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런 욕심을 부린 이유는 내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무엇이든 쉽게 설명해야 했다. 다양한 아이들과 여러 장르의 글쓰기를 가르치며, 난 글 쓰는 방법을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매 순간 고민해 왔다. 만약 글쓰기를 수학처럼,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며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글쓰기를 어렵게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글쓰기의 '사칙연산'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학의 사칙연산이 글쓰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 원리가 사칙연산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우리가 수학 교과서를 보기 전부터 접하는 기본 개념이다. 더하기와 빼기를 배우지 않고 2차 방정식을 풀 수 없듯, 글쓰기도 기본을 익히지 않으면 복잡한 글을 쓸 수 없다. 물론, 이게 마법처럼 완벽한 글을 완성해 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들에게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렇듯 12년간의 글쓰기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을 고민했다. 글쓰기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아, 나도 글을 써볼 만하네?"라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그 출발점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다. 더하기는 글감을 찾는 방법, 빼기는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는 퇴고의 기술, 곱하기는 글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 나누기는 다양한 문학 장르로 확장하는 법이다. 수학에서 사칙연산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기초가 되듯, 글칙연산의 원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글쓰기에도 자신감이 생기리라 믿는다.



자,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