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에세이 : 포인트 한 가지에 집중하라

글칙연산

by 글쌤 류민정

일기에서 에세이로 변환할 때 필요한 건 ‘포인트 한 가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포인트라는 건 주로 이런 것이다.


1 장면

1 문장

1 단어

1 감정

1 마음



성실하게 써놓은 일기에서 이 중 한 가지 포인트만 건져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에세이스트다. 너무 많은 걸 발견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는 한 가지 포인트에 집중할수록 더 강렬해진다. 글이 깊어지기 위해선 내면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듯이, 이를 위해서는 포인트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에세이를 쓰고자 마음먹은 당신의 머릿속엔 생각과 아이디어가 여기저기 넘쳐흐르고 있다. 그래서 글도 마음도 너무 뚱뚱해질 가능성이 크다.


일기는 보통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다 보니, 경험과 느낌들이 ‘나열’되기 쉽다. 그 안에서 한 가지 단어만 골라 자세히 써보자. 중요한 팁은, 남들이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경험이나 감정을 골라내는 것이다. 아무리 평범한 일기라도 나만의 독특한 순간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에세이의 출발은 바로 그 뾰족한 한 가지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일상 계정에 써둔 일기를 활용해 에세이로 변환한 적이 많다. 그중에서 하나를 소개하자면, 엄마의 고향, 외갓집에 간 일기다.



[일기]

드디어 엄마가 엄마아빠를 만난 날. 몸이 점점 쇠약해지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엄마였는데 9년 만에야 내가 가게 됐다. 외갓집은 모든 게 정말 그대로다. 어릴 때 뛰어놀던 마을 어귀부터 외할아버지가 만드신 또랑이랑 예쁜 포도밭, 꿈에 자주 나오는 외갓집도. 엄마도 인사 잘했겠지? 운전을 배우고 늘 후회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진작 엄마 모시고 외갓집 좀 내려올걸 늦게 와서 미안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나이부터 묻게 되는 동생들이랑 수다도 많이 떨고 시끌벅적한 새해를 보냈다. 뿌듯한 새해, 행복한 새해. 나의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무탈한 2023년이 되길.


이 글은 설날쯤에 외갓집에 다녀와 쓴 글이다. 1년 뒤 에세이집을 만들기 위해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었다. 이 글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은 이것이다.


-외갓집에 오랜만에 갔다.

-엄마를 모시고 진작 올 걸 후회된다.

-가족들과 시끌벅적한 새해를 보냈다.


포인트 한 가지는 무엇일까?


-할아버지가 만든 또랑



또랑은 모든 외갓집이나 시골에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또랑’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훨씬 특별해진다. 여기에 글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그리움의 정서까지 더하면 어떨까?


[에세이]

엄마의 고향에는 외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또랑'이 있다. 알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다 같이 돈 모아서 만들었다는 얘길 들었는데도 은근히 자부심이 드는 곳이다. 또랑이라는 말은' 매우 좁고 작은 개울'이라는 뜻인 도랑의 방언이라고 한다. 엄마나 외숙모가 “또랑 가서 놀아!” 하면 나는 으레 그곳인 줄 알아듣고 동생들을 데리고 쪼르르 달려 나갔다. 외갓집 마당을 나서 오른쪽 길목으로 10초 정도만 뛰어나가면 또랑이 나온다. 그땐 또랑에서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했기 때문에 근처에만 가도 시원한 빨랫비누 냄새가 가득했다. 또랑의 여름 냄새가 늘 낯설면서도 좋았다. 간혹 방금 빨래를 하고 떠났는지 물 주변으로 거품이 흐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 비눗물 안에서 작은 물고기들과 올챙이들이 경쾌하게 헤엄쳤다. 나는 생물이 들어 있는 물속에 발을 담그기 무서웠는데 동생들은 첨벙첨벙 잘도 놀았다.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모르는 할머니들이 오가며 “미숙이 딸내미구먼?” "미숙이랑 똑같이 생겼네!" 하며 주고받던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혼자 외갓집에 내려갔다가 또랑에 갔었다. 그대로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졸졸 흐르는 또랑의 물처럼 흘러가듯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엄마랑 자주 좀 올걸 그랬나. 영영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혼잣말을 하고 말이다. 모든 게 초록으로 살아있는 여름이 몹쓸 그리움이 되어버린 건 시원한 빨랫비누 내음으로 가득한 또랑이 어쩐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랑은 내게 여전히 여름의 놀이터다. 좁고 작지만, 많은 기억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이렇게 일기 속에서 "또랑"이라는 장소가 주는 그리움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맞물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 에세이로 변환되었다. 일기 속에서 단어 하나를 건져내 그것을 확장한 결과다.


다음으로 4학년 학생의 일기를 에세이로 변환한 예시를 소개해보겠다.



[일기]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한국보다 몇 배는 쌌다. 걷다가 천막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고양이 앞에 사료를 놓았는데 고양이들은 20초가 지나서야 그것을 알아채고 깼다. 엄마가 웃었다. 그다음 호텔을 갔더니 한국인들이 많고 한국인 직원도 바빴다. 내가 미국인 직원과 말하게 되었는데 평소 배운 영어가 술술 나왔다. 엄마가 칭찬해 주시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리고 베트남 다낭은 마사지도 유명해서 6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사지를 받았다. 시원하고 피로가 확 달아났다. 가족 세 명이 다 같이 여행을 2년 만에 같이 다니 너무 좋았다.



위 기록은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시장 물가가 싸다는 점, 한국인이 많다는 점, 마사지를 받았다는 점 등 베트남을 다녀온 한국인이라면 보통 겪을 만한 경험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고양이가 사료 먹는 장면



나는 이 장면을 슬로우모션처럼 자세히 써보라고 했다. 고양이의 색깔이나 생김새, 자고 있던 모습, 사료를 준 사람, 고양이가 생활하는 주변 환경, 그때의 느낌 등 일기 속에서는 생략된 모든 것들을 말이다.


[에세이]

베트남의 고양이들은 그 무더운 시장과 수많은 오토바이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시장 천막 위에 치즈 색과 갈색이 섞인 고양이 한 마리와 검은색, 회색이 섞인 고양이 한 마리가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할머니가 사료를 놓아주었고, 20초 후에야 아기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어른 고양이를 깨웠다. 한국 길고양이들은 앞에 사료를 놓으면 몇 초도 안 되어 깨버리던데, 베트남 고양이는 왜 그리고 느긋한 걸까? 그 느긋한 움직임은 마치 베트남의 여유를 닮았다.



같은 베트남 여행기라도 이 에세이는 고양이에 대한 탐구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듯, 일기 속 한 가지 장면을 찾아내어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면, 남들과 다른 에세이가 탄생한다.


이제 당신 차례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짧게 일기로 적어보자. 이미 써둔 일기가 있다면, 그 안에서 포인트 한 가지를 발견해 보는 거다. 그리고 그 한 가지에 집중해 나만의 에세이로 확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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