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권은 반드시 나온다

느린 것들의 세계에서

by 글쌤 류민정

글과 책, 창작은 언제나 느리고 멀다.


자꾸 딴짓을 하곤 있지만, 결국 내가 계속 머물러 있는 곳은 이런 세계다.


그걸 극복해 보려고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봐도 결국 여기다.


결과물이 나온다 한들 빛 좋은 개살구가 되거나, 빛도 좋지 않은 그냥 개살구, 아니 오히려 개살구도 못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꾸 다시 돌아보고, 돌아보고. 내팽개쳤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좋아하다가 미워하다가. 그러다 보면 처음 봤던 그 개살구로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그 바보 같고 게으른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빠르게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아니다. 시작은 아주 많이 하지만 어디선가 문득, 멈칫거리고 빙 돌아간다. 예전에는 그게 싫었다. 왜 나는 한 번에 안 될까. 왜 자꾸 돌아가고, 의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책하느라 또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런 나를 받아들였다는 것. 멀~리 한 바퀴 돌고, 또 돌고, 돌다가 지쳐서 멈추고, 멈춰 있다가 다시 도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감상화시는 올해 3권의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야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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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씨가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책이다. 제일 오래 품었고, 제일 많이 고쳤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 거의 다 온 것 같다. 아마도? (마법의 단어)

포천에서 <이야기씨>를 원작으로 한 이머시브 시어터 형식의 공연을 기획 중이기 때문에 최소한 4월에는 출간을 해야 한다. 뭐가 부족하고 뭐가 어색하고 뭐가 어쩌고저쩌고는 일단 접어두자.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가는 거야!


<감상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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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책 다음에 연결되어 나올 책. 아이들이 나와 함께 직접 찾은 이야기들을 엮은 그림책이다. 네 컷 만화 같은 구성인데, 그림책 단편집의 형태다. 아이들 손에서 나온 것들이라 내가 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게 좋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다. 아주 옛날에 만들었던 이야기부터 지금 만드는 그림책의 스핀 오프 형식의 이야기, 그림책 수업 때는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게 자유로운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길 예정이다.


<감상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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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름과 똑같은 이름의 책. 내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며 서로 말하고, 그 입말이 뒤엉켜 만들어진 동시들이다. 아이들의 삽화가 함께 들어간다. 공모전에 낼 요량으로 수정된 많은 동시들을 다시 한번 뒤집어 원래 처음에 적었던 입말을 살려 다시 정리할 예정이다.



내 손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이 세 책을 내고 나면 교재 제작도 서둘러야 한다. 교재라 하면... 2023년에 시작해서 2024년에 한창 작업했던 책이었다. 거의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교재야말로 급하게 가다가 올스톱한 책이다.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했고, 그 수정할 생각들이 너무 넘쳐서 손을 놓았다. 손을 놓으면 멀어진다. 멀어지면 다시 손대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걸 알면서도 놓고 있다가 '이젠 해야지'의 순간이 찾아왔다.


최근 다시 파일을 열어봤더니 낯설기 그지없는 문장들로 가득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쓴 건데 내 것 같지 않고 또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 얼마나 지났다고 그때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과 또 조금 다르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는 알겠는데 너무 많다. 그래서 또 빙글빙글.


어떤 사람은 이 느림과 빙글거림을 게으르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성장이라고 부른다. 한 끗 차이인데, 나는 잘 모르겠다. 게으름인지, 성장인지 퇴보인지.


느린 게 좋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난 느리면 불안한 사람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아직도 여기서 빙빙 도나. 그런데 또 빠르게 만들어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란 걸 안다. 급하게 낸 것들은 나중에 꼭 후회가 남으니까. 그때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들여다볼걸. 그런 생각이 한참 뒤에 찾아오곤 했다.


결국 어떻게 해도 후회는 하는 거다. 느려도 후회, 빨라도 후회. 그럼 결국 내 속도로 돌아온다. 게으르다가 조급하다가, 왔다 갔다 하는 나의 속도. 이것도 속도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감상화시라는 이름도 그렇다.


감상하고, 화시하다.

느끼고, 창작한다.


그게 빠를 리가 없다.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린다. 느낀 걸 말로 만드는 데 또 시간이 걸린다. 말을 글로 옮기는 데, 글을 다듬는 데, 다듬은 글을 다시 보는 데. 그 모든 과정에 시간이 쌓인다. 그래서 감상화시로 나올 나의 책들은 느리다. 앞으로도 느릴 거다.


하지만!

올해 3권은 반드시 나온다.

여기까지는 확정.

빙글빙글 돌면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방황이라는 단어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지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괴테의 유명한 말은 좋아한다.

멈추지 않으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거라고 일단은 그렇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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