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는 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작은 일에도 이유를 찾았고, 상처를 교훈으로 바꾸며 버티려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조차, 어쩌면 의미의 굴레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이유 없이 웃는 일이 어색했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삶’을 사는 대신, ’ 의미’를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을.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그런 나에게 찾아왔다. 그는 말했다.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항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중에서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조용히 흔들렸다. 나는 ‘무의미함’을 두려워하며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삶이 가벼워질까 봐, 나 자신이 하찮아질까 봐 모든 순간에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를 웃음 짓게 했던 것들은 대부분 내가 애써 붙잡은 ‘의미’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운을 발견했을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다독여줄 때, 감정이 서로 스쳤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였다.
쿤데라는 무의미를 지혜라고 했다. 의미에 갇혀 살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열린 태도로 보고, 느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 그것이야말로 쿤데라가 말했던 ’ 무의미의 축제’가 아니었을까.
허무는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 위에서 가볍게 춤추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