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의 <사물의 뒷모습>을 읽고
얼마 전, 남편과 남해 여행을 다녀왔다. 남해 북카페에 책을 구경하던 중 유독 시선을 끄는 책 한 권이 있었다. 안규철 조각가의 <사물의 뒷모습>이었다. 나는 평소 사물의 보이지 않는 면을 상상하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제목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받았다.
사물의 뒷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같은 사물을 두고 여러 사람에게 ‘ 그 뒷모습’을 이야기해 보라 하면, 비슷한 답보다 서로 다른 해석이 더 많을 것이다. 개개인의 신념과 가치관, 경험이 더해져 복합적인 의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연과 사물을 통해 얻은 사유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가볍게 나누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삶이 복잡하고 각자 감당해야 할 무게가 다르다 보니, 오히려 피로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통해서만 이런 생각들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런 내게, 안규철 작가가 사물에서 길어낸 다양한 사유는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글과 함께 놓인 그림이었다. 그림을 먼저 바라보고 스스로 의미를 짐작한 뒤 글을 읽는 경험은, 작가와 함께 사유의 길을 걷는 듯한 친밀함을 주었다. 글과 그림이 서로를 비추며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방식이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이 어떻게 끝날 지를, 그 일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추는 법을, 말하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잊는 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한다. (224p, 사물의 뒷모습 중에서)
특히 4장의 ‘우리가 배우지 않은 시간’에서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멈추는 법, 잘 이별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짊어진 채 정상으로 오르는 것만이 길은 아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는 것, 그 또한 배워야 할 미덕이다. 하산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내려올 수 있는 자가 용기 있는 자일 것이다.
<사물의 뒷모습>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자연과 일상의 작은 흔적을 매일 붙잡으려는 나에게 이 책은 큰 용기를 주었다. 앞으로도 작은 흔적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수집하며, 생각을 채집하는 글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