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음악의 유사성, <타르>

by 금키위

리디아 타르는 절대적인 비호 아래 있는 사람이고,

이 영화는 그런 리디아의 믿음이 깨지는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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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했을 때부터 주인공 리디아 타르는 정점에 서 있다. 부와 명예와 우아함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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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위키피디아에 나오고, 각종 언론들이 찬사 하고, 눈부신 경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재능과 완벽주의가 리디아를 그 정점까지 이끌어 놓았고, 리디아는 그런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능력주의?) 초반 시퀀스에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리디아가 고른 이미지에 맞게 재단된 옷을 차려입고 앉은 곳이 대중이나 악단 앞도 아닌 삼면거울 앞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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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그것을 하는 완벽하게 탁월한 나!


리디아는 음악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그 지위에 걸맞은 자신에게 완벽한 면제권을 준다. 리디아의 명예와 위상은 워낙 공고해서 리디아가 스스로에게 면제권을 주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드러나거나 논란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는.



흠집 없이 매끈한 리디아의 일상에 리디아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이 스멀스멀 나타난다. 그건 바로 옛 동료 크리스타, 딸 페트라를 괴롭히는 아이, 그리고 집, 차, 작업실에서 마주하는 작은 소음들이다. 이것들에 대한 리디아의 대응은 모두 같다. 죽여 잠재워버리는 것이다. 이 거스르게 하는 것들은 반대로 리디아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반대항이다. 바로 권위, 딸 페트라, 그리고 음악이다.




무정하고 매서운 리디아에게도 페트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다. 잠 못 드는 딸아이의 발을 만져주는 마에스트로의 모습을 봤다면 까무러쳤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몇일까.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에게 상처 입히는 다른 어린이를 봐줄 수 없다. 리디아는 그 아이를 직접 마주하고 협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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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트라의 아버지이고, 한 번만 더 페트라를 다치게 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고, 너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란다.'


이때 리디아가 선택한 단어들이 매우 흥미롭다.


레즈비언인 어머니가 '아버지', '어른'과 '아이'의 차이.

성공한 음악가인 리디아가 아이를 겁박할 때 꼭 필요하다는 듯이 '아버지'의 지위를 취한 것이 놀랍다. 리디아에게 남자의 지위란 무엇인가? 그에게 음악의 지위와 유사할 것 같다.

어쨌든, 그 협박 이후로 페트라는 표정이 밝아졌고, 리디아는 그것이 흡족하다.


어른이 아이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위협이 늘 그래왔듯이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페트라와 그 아이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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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와 리디아의 보복에 못 이겨 자살한 크리스타가, 페트라와 새로운 첼리스트 단원 올가가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리디아는 이 질문에 전혀 다르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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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은 음악이 될 수 없고, 음악가는 그가 하는 음악으로만 평가되며, 교수-학생처럼 지휘자-대중의 위상 차이는 분명하다고 믿는다. 분명 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리디아가 하는 음악이 흐르고 닳고 무뎌져 벨소리가 되고 신호음이 된다. 분명 일반적인 대중은 리디아만큼 민감한 예술의 경지를 느끼지 못한다. 리디아는 그래서 견고한 경계를 세웠다. 어린 린다와 성공한 리디아 사이에, 페트라와 다른 여자 아이들 사이에. 지휘를 좋아하는 사업가와 자신 사이에, 노인을 간병하는 옆집과 자기 작업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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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악은 홀연히 그 경계를 넘어선다. 애초에 음악은 고여있을 수 없고, 그래서 고인 물처럼 망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리디아가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옆집을 팔려는 사람들이 리디아를 찾아온 순간이다. 그들은 집을 팔기 위해 리디아가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오는 시간에는 음악 소리가 나지 않았으면 한다. 리디아의 고급스럽고 고상한 음악이 그들의 목적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전락한다. 일상 앞에서 리디아가 받은 상과 찬사는 무가치해진다. 리디아에 대한 평가도 순식간에 변한다. 리디아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SNS를 통해 리디아의 지위가 해체되고 리디아는 객체가 된다.


영화는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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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는 예술가의 추락에 대한 영화가 아닌 '리디아 타르'의 영화여서 리디아 타르의 인생처럼 이 영화는 계속된다.




고급 호텔, 전용기, 익숙한 찬사와 알아차림, 존경의 세계를 떠나(혹은 쫓겨나) 타르는 낯설고 시끄러운 세계로 간다. 거기서 리디아는 스스로를 비추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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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다르게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대신, 정말 스스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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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음을 받아들인다.

리디아는 나아간다. 여전히 사랑하는 음악을 진지하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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