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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n 11. 2024

땅. 끝까지 무너지는 걸 지켜봤다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어만 줘

나에 대해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보였다. 생각이라고 하는 게 맞나? 상태, 생각, 고민 등 어쨌든 맥락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바로 어제, 내가 줄곧 사람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 서 자연스럽게 내가 요즘하고 있던 '나'에 대한 생각들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결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었다. 평소에 잘 들어주고, 자기 얘기를 앞세우지 않는 친구였는데 본인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놓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그 자체로도 참 좋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또 듣기 시작하면서, 내면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소소하게 있었는데,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다면 이 대화 끝에 좋은 방향으로의 작은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 고민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매번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문제'였다.


예를 들면, 나는 직업을 약 5번 바꾸면서 매번 하나의 직업을 그만둘 때마다 '내가 정말로 행복하게 살려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명치를 때렸다. 뭐든 열심히 할 자신은 있는데 어떠한 한 분야에 적응하고 능률이 오르고 업적이 드러날 때 즈음 (보통은 이런 순간을 통해,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하는 것 같은데..) 마음 한편에 심하게 공허함이 느껴졌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강한 느낌'이 동반됐다. 그 느낌은 곧바로 외로움으로 이어져 나 스스로가 지구에 불시착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머물 세계를 잘못 택해서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시작되면 너무 외로웠다. 서럽기도 하고. 신이 나를 정성껏 빚어 이 세상에 내려보낸 목적이 분명 있을 텐데, 그 목적을 찾지 못하고 잘못된 곳에 놓인 느낌. 그래서 제대로 빛나보지도 못하고 퇴색해 가는 기분이 들어 불안함에 잠 못 들고, 조바심이 늘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고, 진짜 내가 만들어진 그대로를 최대한 활용하며 살 수 있는 일을 찾기로 결정한다. 그러면 또 따라오는 바로 그 물음표.  '내가 정말로 행복하게 살려면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결국 제자리다. 매번 나는 발전하지 못하고, 변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풀고자 한 이 문제에 대입한 공식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식은 '내가 쓰일 곳'을 찾는 공식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쓸 곳'을 찾는 공식을 대입했어야 했다. 내가 객체가 될 곳 말고, 내가 주체적으로 거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나'를 알아야 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해서, 당장 속할 곳이 없으면 불안하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하는 것들이 내가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을 정하는 일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생각까지는 어떻게 해 내었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러면 뭘 생각해서 그 결과를 기준 삼아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해야 하지?

나의 어떤 것을 그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그 고민의 결과, 일단 지금은 그 직업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뭘 하든 상관없다고. 나 삶의 만족도와 행복의 여부는 직업이 결정하지 않는다고. '나'라는 사람이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내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 위해 노력할 수도 있고,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피하고 도망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나는 모른다.


내가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건지, 좋아해야 해서 좋아하기로 결정한 건지.

저 사람이 좋은 건지, 싫어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좋아하기로 결정한 건지.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서 오늘 내가 점심으로 뭘 먹고 싶은지, 뭘 입고 싶은지, 누굴 만나고 싶고 만나기 싫은지를 명확하게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는지 하는 것들을 명확하게 아는 것.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연습이 되고 그 연습이 잘 되면 조금 더 크고 복잡한 나의 생각 덩어리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어떤 직업이 내게 맞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어제저녁을 먹은 그 친구와도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다툼이 잦은 부모님 아래에서 성장했다. 정말 선한 분들이고 삶이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정말 죽어라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도 못 하는 그런 분들. 그러나 그 치열한 삶 속에서 두 분이 부딪히며 모진 말을 쏟아내고 큰 소리가 벼락처럼 쏟아지던 날들이 있었다. 맘 놓고 미워라도 했으면 좋았을걸 너무 좋은 분들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어린 날의 우리는. 그런 어린 시절을 슬쩍 꺼내놓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해왔기에 단번에 그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동안에 느껴온 모든 것들을.


그러고 나서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참 잘 자랐다. 부모님들도 우리에게 고마워하시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잘 자라지 못했다. 아니, 아직 자라지 조차 못했다. 어린 날에는 마구 자라야 한다. 그 가지가 이상한 곳을 삐져나가고, 잎사귀 모양이 바르지 못해도 에너지가 뻗는 대로 일단 세상으로 표현해내야 했다. 그러기도 전에 이것이 옳은지, 괜찮은지를 생각하고 미리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린 우리가 뭘 알아서 그 옳음을 바르게 판단했을까. 그저 나쁜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일단 냅다 참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 마구 자란 가지들을 부모님이 예쁘게 다듬어 주었어야 했다. 잘 자란 곳은 쓰다듬어 주고, 웃자란 곳은 정리해주었어야 했다. 근데 우리는 그걸 스스로 하려 했다.


그렇게 뻗어나가 보지도 못한 에너지들은 가슴 깊숙이 자리 잡아, 영문도 모르는 순간에 북받친다.

서러움.

우리가 서로 입을 모아 말했던, 나를 가장 지배하는 단어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그럴 구실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그렇게 서럽다. 작은 마음하나 알아주지 못해도 서럽고, 잘하는 걸 발견해도 이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서럽고. 그냥 다 서럽다. 아직 다 크지 못한 어린애라 그렇다. 하지만 그 어린 우리에게도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주 희망적이다. 어린 날의 나를 둘러싼 상황에 지지 않고 그게 뭐든 내가 주체의식을 가지고 살아내는 힘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기특하고 귀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직장엘 다닐까 어떤 직업을 갖을까를 고민하던 발길이, 미처 자라지 못한 나를 알아주는 가장 시작점에 닿았다. 또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와 제자리에 있다는 좌절을 맛보지 않으려면 근본부터 챙겨야 한다. 그 시작점에는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 봐 무섭고, 무서운 이 분위기 자체가 무서워 엉엉 울고 싶지만 그 울컥거림마저 꾹 참고 견디던 9살짜리 꼬마가 있다. 그때는 못 그랬지만 지금은 그 꼬마가 아이답게 엉엉 울며 땅끝까지 끌려 내려가는 것을 지켜봐 줄 수 있겠다. 이리 든든히 지켜봐 주는 이가 있으니 맘 놓고 땅 끝까지 무너져보자.





결혼을 해보니, 한 사람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지금의 그 사람만을 이해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그 사람의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는 일이다. 그리고 미처 알아주지 못했던 그 사람 속 어린아이를 알아주는 일이다. 그렇게 내 안의 아이를 알아봐 주고, 그 아이가 비로소 아이답게 살아 그 시기 지나 보낼 수 있도록 해주는 순간이 진정으로 사랑이 탄생하는 순간이리라.


그리고 또 한 번의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동안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이렇게 글로 정리하며 체화시키는 동안, 마음이 훅-하고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몸 안의 장기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훅 추락하는 느낌. 목이 메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9살의 나라면 이런 느낌이 아주 큰 울음을 터뜨릴 만했겠지만 지금 나는 30대 중반이 되어있기에, 그 눈물이 내 몸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9살의 나를 땅끝까지 무너지게 했을 감정을 느꼈다. 그 9살의 내 검지 손가락이 30대 중반의 내 검지손가락에 와닿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미뤄두고 미뤄두던 9살의 나를 만났고, 그 꼬마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던 크나큰 절망감을 30대의 내가 대신 처리해 줬다. 그러고 나니 9살의 내가 지금의 내 안에 아주 편히 들어있는 듯하다.


사랑한다 근아야. 이제 그 안에서 두 발 쭉 피고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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