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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n 10. 2024

요이. (리)조리 우연히 만날 타이밍을 봐보자

자꾸 보면 정든다잖아.

이 전 글에서 스트레스 가득한 나에게 쉴 곳을 알려주고, 내가 너를 쉬게 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그로써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조금은 생겼으리라. 그렇다면 이때를 놓치지 말고 그 의미를 굳건히 다지는 단계로 돌입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란 게 낯선 얼굴도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작은 구석이라도 예쁜 구석 하나쯤은 발견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또 작정하고 만든 자리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작정했다는 것 자체가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하면서, 편해지려야 편해질 수가 없는 마음상태를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도록 '우연'을 살짝 계획해 보기로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할 텐데,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도록 하되, 어떠한 형태든 그 어떤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저 '생각해 볼 시간' 정도로만 계획을 잡는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통해 뭘 달성하겠다는 목적성은 없는, 그저 '갖는 시간'말이다. 그저 혼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갖는 것.


예를 들면, '내일 저녁 9시에 집 앞 카페에 가서 30분 동안 캐모마일 티 한 잔 마시고 오기.' 뭐 이런 거! 이걸 좀 여러 번 생각해 두는 거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살짝 낯선 공간에, 나를 오롯이 나와만 단 둘이 두는 일이다. 일 생각이 떠오르면 일 생각을 하고, 멍 때리게 되면 멍 때리면 되고, 카페 주인과 수다를 떨게 되면 떠는 거고. 그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도 제한하지 않고 그 시간 동안 드는 충동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 와서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얼 했는지를 적어보는 것. 그 정도면 된다.


그런 시간을 몇 번 연이어 갖다 보면, 나 자신과 독대한 시간 자체가 의미가 있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자연스럽게 한 활동들이 아마 나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리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고 날씨 좋은 날이 연이어 온다면, '집 앞에서 뚝섬역까지 30분가량 천천히 걷기' 그중에 맘에 드는 카페가 있음 새도 되고, 예쁜 게 있음 하나쯤 사도 되고 똑같이 다양한 생각들과 행동들을 하도록 두는 것이다. 그러고 집에 와서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뭘 했는지를 적어보는 것.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계획해 보면 이런 아이디어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실제로 지난주 일요일에, 서울숲에서 요가수업을 듣고 집에 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 그냥 걸어서 집까지 가기로 했다. 그중에 나는 맑고 높은 하늘을 수도 없이 가만히 올려다보았고, 빵냄새가 좋은 카페를 지날 땐 멈춰 서서 냄새를 맡다가 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안에 입은 건 나시밖에 없었음에도 더위에 훌렁 카디건을 벗어버리는 나름의 대담함도 있었다. 그러다 집에 있는 신랑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 하릴없이 몇 마디 주고받았다. 가판대에서 파는 반짝반짝한 집게핀을 사고 싶어서는 멀리서 바라보다가 용기 내어 다가가기도 했고, 손으로 몇 번 만지작 거리다 내려놓았다. 사고 싶었고 8천 원 밖에 안 했지만, 내게 필요한가를 몇 번을 생각해 보니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8천 원도 꼭 필요해야 쓰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울적했다가 이래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귀여웠다.

별 것 아닌 것들이 고민이고, 별 것 아닌 것으로 기분 좋아하고, 작은 것에도 현혹되지만 또 굳건한 마음으로 나를 지키기도 한다. 그 길 하나 걸어오는 동안에도 생각을 쉬지 않는 등 분주한 삶을 제 손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자연을 좋아했다. 크고 위대하진 않으나 작고 소중한 사람. 그게 나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나와 우연히 만나는 시간 후에 발견하는 본인 스스로가 아주 귀여울 겁니다.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어려요. 세상이 우리에게 어른이길 바라고, 더 큰 것들을 해내길 기대하지만 우리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를 먹으며 적당히 아닌 척할 수 있는 스킬과, 의지할 사람들이 늘어날 뿐. 자세히 나를 들여다보면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를 발견할 거예요. 그 아이를 만나면 그대로 두고 지켜봐 주세요. 내버려 두어도 큰 잘못 안 하고, 잠시 방황하다 금세 돌아올 겁니다.

그리 나쁜 애가 못되어요.



♡ 오늘 나에 대해 알아낸 것들 ♡
- 반짝이는 거 좋아함
- 빵냄새 좋아함
- 맑은 날의 하늘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함
 - 8천 원이 큰돈이라 생각함
- 어른이 절대 아님
- 근데 똑똑한척하면서 말하는 거 잘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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