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는 대학도, 직장도 모두 남초 사회 안에 속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해 보자면 대학교 때는 여성 비율이 약 20% 정도였고, 회사에서는 나름 균등하게 신입을 뽑는 곳이라 3-40%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다만 보통 보면 입사한 여직원들의 학점, 영어점수, 자격증 등의 스펙이 더 높긴 했다) 남성과 동일하게 경쟁해서 교육을 받고 직장에서도 연봉을 동일하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남녀 차별이라는 것을 살면서 느끼지 못하고 산 것 같다. 이공계가 남성이 유리하다는 학설은 어릴 때부터 남학생이 수학을 더 잘한다고 세뇌되었기 때문에 학습돼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런데 회사를 쭉 다니다 보니, 어떤 롤모델이 될만한 여성 고위직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초 회사라 비율상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육아휴직하면서 1-2년 쉬고, 진급 누락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안정성을 위해 지원 부서로 빠지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같은 동기 사이에서도 연봉의 갭이 점점 생기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카리스마 있고 일 잘하던 여자 선배들은 이 현실을 박차고 (?) 진즉 회사를 나가 다른 것을 도모하는데 이 때문인지 롤모델이 더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내부에서 롤모델 찾기를 포기했다.
이런 현실이 영국은 덜 할까 했는데, 이곳도 남녀 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내 직군 레벨의 남성이 여성보다 연봉을 10%가량 더 받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나는 다행히 여성 임원이 평등하게 적용시키라고 우겨서(?) 동일하게 받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여직원들이 육아 등의 이유로 어드민이나 지원 부서로 가는 경향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꼈고, 때문에 프로젝트 회의에 들어가면 보통 90 %가까이가 남성이라 내가 있던 한국 회사 보다 오히려 불균형이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소수 인종을 포함하여 젠더, 성소수자까지 아우르는 Diversity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트렌드다.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자 뭐 그런 취지 같다. 그러고 보면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동양의 여성이니 거의 마이너 오브 마이너인 셈이다.
이런 무의식적인 생각이 내 내면에도 깔려 있는 것인지 왠지 ‘더’ 적극적 이어여 하고, ‘더’ 논리적이어야 하고, ‘더’ 뭔갈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 은연중에 있는 듯하다. 혼자 생각하는 자격지심일수도 있겠지만. 이를테면 미팅에서 나 혼자 동양 여성이고, 99%가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항상 좀 더 논리적이고, 똑부러져 보이려 하고, 주장을 더 세게 말하려 한다. 그래야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무시를 안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요즘 느끼는 것이 어느 사회나 여성, 특히 엔지니어들은 많이 없기 때문에 뭔가 ‘쎈캐?’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도 그런 여성들이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롱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여성 엔지니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더 경력계발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본 영국에선 그러한 것 같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이것도 누군가에겐 블루오션일 수 있다. 직접 경험해 보진 않았지만 세상 어디든 당연히 메이저, 주류가 되는 것이 사는데 좀 더 편하긴 할 것 같은데, 어쩌겠나 나는 아닌걸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