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몇 가지 편견
지난주가 이곳에 온 지 정확히 2년째 되는 날이었다. 햇수로는 3년 차다. 올해도 몇 개월 남지 않았으니, 햇수로만 따지자면 좀 오래 산 느낌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남편과 이벤트라도 하나 만들까 했으나, 추석 연휴를 맞아 대학 동기가 오기로 해서 그냥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주변 지인들이 매달 한 팀(?) 씩 오다 보니, 민박집을 운영하는 느낌도 든다. 효리네 민박 부럽지 않다. 평화롭고 잔잔한 호수 같은 생활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던져져 삶에 약간의 파동이 있는 느낌이랄까. 뽀송하게 이불 빨래하고, 매 끼니 음식을 준비하고, 주변 관광지를 찾다 보면 정말 시간이 번개같이 흘러간다. Cumbria 홍보 대사가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오면 흥미롭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일단 한국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회적, 경제적 이슈에 예전만큼 민감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것을 직접 당사자로부터 다시금 생생히 듣다 보니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감정에 덜 휘둘린다. 어쨌든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지만, 우리가 영국에, 유럽에서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고 있으니,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제법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것이 그런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을까?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 분명 한국보다 좋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근무시간도 짧으니 개인 시간도 많다. 그런데 내가 영국인이라면 100%, 200% 즐기겠지만, 난 외국인이라 100% 워라밸을 못 즐긴다. 이유인즉슨, 영어로 하루 종일 일하니까 진이 빠진다. 초반에는 집에 오면 그냥 바로 뻗었다. 영어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꿈에서도 영어로 대화하고, 남편은 심지어 영어로 잠꼬대를 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렇게 영어에 파묻혀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이들의 대화를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회의에서도 가끔 멍 때린다. 그러다가 정신 차리고 확실하게 묻고 또 묻고 도전의 연속이다. 단순히 주당 근무시간이 적으니, 시간이 남을 것이라는 착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소득
영국에서 일한다니 연봉이 무척이나 많은 줄 안다. 가뜩이나 나의 연령대가 가장 경제 활동이 활발한 세대인 만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얼마 전부터 돈 돈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다들 최대 관심사가 돈 연봉이다.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GDP가 높긴 하지만,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차이 없이 연봉이 고르게 분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 기준으로만 치자면, 한국의 삼성, 현대 등은 신입사원 연봉은 오히려 영국의 대기업보다 높은 편이다. 영국은 50,000파운드 (현재 한국 기준 7300만 원 정도)가 넘으면 세율이 40%이기 때문에, 실수령액이 많지 않다. 50,000파운드 이하일 경우 고용보험, 건강보험 포함해서 대략 21% 정도인데, 이는 연금을 제외한 세율이다. 연금까지 포함한다면 해당 구간의 실수령액은 한국보다 낮을 것이다.
-날씨
오늘은 다행히 해가 떴으나, 지난 2주간 비가 하루라도 안 오는 날이 없었다. 잠깐의 소나기라도 비가 무조건 왔다. 그나마 5월부터는 낮 시간도 길고, 맑은 날이 많아서 괜찮은데, 9월 넘어가면서부터는 구름도 많이 껴서 낮에도 회색빛인 것이 사람 기분이 축 처진다. 이 나라 사람들이 왜 우울증을 많이 겪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문제는 관광객들 혹은 사람들 대부분 가장 날씨 좋은 여름에 오니, 유럽은 날씨도 좋고 하늘도 예쁘고 엄청 살기 좋고 낭만적이라 생각한다. 햇빛이 없는 10월 이후에 오면, 일단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해가 없다 보니 한겨울에는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해서 비타민 D를 챙겨 먹는 것은 이곳에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다. 날씨, 해가 이렇게나 소중한 것인지 이곳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 해만 뜨면 밖에 나간다.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르는 해이니 일단 나가서 일광욕을 해야 한다. 이제 9월, 앞으로 점점 더 해를 보기 힘들어질 테니 따듯한 나라로 휴가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들의 선입견을 이해는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조금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타향살이가 결코 내 나라만큼 쉽고 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을 처음 해보는 것이고, 모든 것이 챌린지다. 다행인 것은 이들의 편견을 일 년에 아주 가끔 듣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혹 왜 거기서 고생하며 살고 있냐 물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하는데 최근에 읽은 책에서 좋은 구절 하나를 마침 발견했다.
여행은 탐험은 항해는 결국 그런것이다. 호기심과 용기를 가지고 남이 가지 않았던 곳으로 나아가는 것
- 대항해시대의 탄생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