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1)
벚꽃잎에 뒤덮인 이곳은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 싱그러운 잔디밭에 누워 낮잠을 청해도 되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외연을 넓혀볼 수도 있어. 자연스러운 호의와 선의가 배어나는 마주침, 신뢰에 기반해 관계 맺기를 거듭하다 보면 이곳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지. 어떤 학우는 마음을 풀어헤친 채 존재하는 경험이 소중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학우는 가부장제 사회의 왜곡된 여성상을 잊고 여성들과 교류하는 게 좋다고 일러주었어. 나 역시 그 마음을 알아. 존재에 덧씌워진 낙인과 오해를 벗어낼 때 얼마나 큰 환희를 느끼는지 말이야. 지난 몇 년간 마주한 학우들은 자유롭고도 가벼운 몸짓으로 캠퍼스를 거닐고, 떠들썩하게 웃고 소리치고 있었어. 그래서일까, 한없이 무겁고 갑갑한 내 마음이 두드러지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하거나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가 될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꽤 자주,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야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느끼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2)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다만 내게 덧씌워진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직시하지 못했을 뿐이지. 우리는 나자마자 성기의 외형을 기준으로 '둘 중 하나'의 성별을 부여받으니까. 이후로는 그 성별대로 길러지고 그것만을 인지하도록 교육받지. 나 역시 여성으로 분류되며 삶을 시작했고 이십여 년을 그렇게 길러졌어. 정체성을 깨달은 날에 발견한 건, 내면에 숨어있던 ‘남성적’인 신체나 정신 따위가 아니었어. 주방 가위로 옷을 난도질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이질감과 분절감에 꼬불꼬불하게 말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에 시퍼런 멍을 새겨놓던, 그런 흉터 같은 기억을 알아챘지. 좋아하는 노래에 그런 말이 나와. 숨겨야 할 마음들이 너무도 많아서 가끔 우린 스스로도 속는다고.3) 구태여 나를 ‘트랜스남성’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더 이상 스스로 속이고 싶지 않아서야. 겨우 알아차린 나를 또다시 외면하거나 침묵시키지 않기 위해서야.
갈 곳이 없다.
모든 게 잘 풀리는 듯했지. 여성이 비교적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고, ‘소수자’와 연대하기를 꺼리지 않는 여대에서 정체성을 깨달았잖아. 트랜스젠더라면 몰라도, 비혼과 페미니즘은 입에 담기 어려운 곳은 아니므로 정말 복에 겨운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트랜스인 나는, 트랜스이길 ‘선택’해 버린 나는 이곳에서 조금도 숨 쉴 수 없었어. 슬프게도 이곳에는 그런 존재들을 위한 자리가 없거든.
월요일에 듣는 여성학 교양수업에서 어떤 학우가 “트랜스젠더는 성별이분법을 강화하고 여성의 지위를 추락시키는 해로운 존재”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어. 곧이어 강의실은 여성학도들이 든 손으로 꽉 채워져 콩나물시루처럼 변해. 그 주먹과 손바닥이 곧 내 몸을 관통할 창처럼 보였고, 난 불안에 빠져 온몸을 떨어. 그럴 때면 과거와 현재, ‘다가올 미래’ 따위의 구분이나 체계, 문법이 사라지고 말아. 어느 날 마주했던 불안과 혐오가 물밀듯 현재로 닥쳐오지. 혼란한 것. 극복의 서사로 교통정리 할 수 없는 공황 앞에서는 시제도 공감각도 무용해지고 말아. 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혐오의 소리와 내 생각을 혼동하고 실제로 혼용해. 그래,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는걸. 그 말은 진실일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속삭임으로 달래보아도 어김없이 반문, 합리화, 위로, 모면, 괴로움, 분노가 쏟아져. 고함치거나 뛰쳐나가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면서 소리가 멎어 들기를 기다렸어. 훗날을 기약하였는지, 절절 비는 심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
솔직히 편입도 고민했어. 내 정체성을 알게 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지. 왜 편입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여대는 ‘여자’들의 공간이라고 하더라. 맞는 말이야, 하지만 ‘여자’의 범주는 어떻게 정해지지? 여성학은 늘 여자의 범주와 소수자로서의 여성이 위치한 맥락에 관해 질문해 왔어. 그리고 그 작업은 계속해서 또 다른 소수자들과 연결되는 것이었지. 그러니 우리는 질문을 멈춰서는 안 돼.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째서 누군가 트랜스이길 택한다면, 일순간에 그가 지정성별로서 살았던 삶과 그 흔적들로부터 유리된다고 생각한 걸까? 트랜스남성이길 택하는 순간 여성으로서 마주해온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 그리고 삶에 집적된 문제가 마법처럼 해소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이게 여대를 떠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 사람들은 내가 왜 여대를 떠나지 않는지 궁금해하지. 뒤늦게 정체성을 깨달은 트랜스남성이 성별정정 후 여대 졸업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할 위험, 재학 중 화장실 문제와 디스포리아에 시달릴 것을 짐작하면서 말이야. 상상력은 그 트랜스남성의 음흉한 속내에 관한 것으로 뻗어나가. 그에게 어떤 변태같은 욕망이 있는 걸까? 어쩌면 본인도 정체성에 확신이 없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짐작조차 못 해.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여대에 계속 있기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가난이라는 걸. 사람들은 아마 허무할 거야. 단지 편입할 돈이 없는 거라니.
그 이유를 듣고도 말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한 선배는 깐깐한 표정과 팔짱으로 무장한 채, 가난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말했어. 그는 내게 핑계 대지 말라며, 휴학을 하고 ‘본가’에서 편입 자금을 모으랬지. 나는 달싹이는 입을 꾹 눌러두고 생각했어. 어째서 내게 ‘본가’가 있으리라 짐작한 걸까? 성정체성, 계층, 가족 형태······ 저 선배는 또 무엇을 전제하고 있을까? 나는 그제야 종종 마주했던 불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어. 그들은 빈곤하고, 탈가정한데다, 트랜스남성이기까지 할 수 있다고는, 그렇게 ‘예외적인’ 요소를 몽땅 지닌 존재가 바로 옆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거야.
그 선배에게 열일곱에 “동성애자 자식은 둘 생각 없다”는 말을 들으며 집에서 쫓겨났다고, 여기저기 빌붙어서 수능도 겨우 치렀다고, 밤낮으로 일해도 생계나 겨우 유지할 뿐 편입할 여력은 없다고, 삶이 너무 위태로워서 ‘그깟 학위’를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그런 말을 들려주면 내 존재를 허락받을 수 있을까? 그 선배는 내 ‘사정’이 닳을 대로 닳은 수치심과 비참한 마음의 부산물이란 걸 알고 있을까? 그것을 아무렇게나 요구하고 취한 데에 죄책감을 느낄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심사하고 처우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마냥 굴지. 갑자기 그치들에게 넌더리가 나더라. 그래서 나는-수백 번 말했더니 이제는 남의 삶처럼 느껴질 지경인-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침묵으로 대화를 마쳤어. 해명하기 위해 삶을 요약하는 짓이 그 시기를 버텨낸 나를 모욕하는 것 같았거든.
학교생활이 몸에 익은 무렵이었나. 그런 날이 있었어. 수업 중에 졸음이 쏟아져서 잠시 에브리타임에 들어갔지. 웃긴 글 좀 보고 정신 차리는 건 다들 자주 하는 일이잖아. 그런 생각에 접속한 에브리타임에는 트랜스젠더/퀴어를 향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비방이 가득 차 있더라. 찾아보니, 시작은 누군가 왕래가 잦은 곳에 ‘그런’ 포스터가 붙어있는 게 황당하다는 글이었어. 삽시간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포스터를 옮겨 달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소수는 그 의견이 정당한지를 두고 언쟁을 벌였지. 수업을 마친 후 게시판에 가보니 포스터는 먼지 가득한 복도 끝에 붙어있더라. 그늘진 곳, 쿰쿰하고 싸늘한 곳, 너덜너덜한 몸으로 곧 추락할 듯 붙어있는 종이가 꼭 내 모습 같아서 심장이 괴롭게 떨렸어.
문제는 그 일로 과열된 커뮤니티에서 감당키 어려운 수준의 혐오 발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대화는 말싸움으로 번졌고, 게시판엔 점점 더 ‘자극적인’ 사진과 단어가 올라왔지. 수업 사이 시간표를 확인하려다가, 학식을 구경하려다가, 동아리 정보를 찾으려다가 그것들을 보고 말았어. 상처가 여물기도 전에 다치기를 반복해서 마음이 헐어버릴 지경이 되니 무의식중에 포스터를 붙인 사람을 탓하게 되더라. 왜 미움 살 게 뻔한 일을 해서,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데······. “모든 트랜스젠더퀴어의 대학 생활을 응원합니다!” 그 문구가 그리 야속할 수 있을까.
친구는 울면서 줄담배를 피우는 내 꼴을 보더니 에브리타임을 지우라고 조언해 줬어. 아주 간단명료한 해결책이지. 그런데 한구석에 있던 포스터가 떠올라서 그 말만큼은 절대 따르고 싶지 않더라. 그 논리가 모든 곳에 도사린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온라인 공간, 화장실, 강의실, 식당······ 결국 ‘여대’에서 나가라는 말로 귀결되지. 이곳에서 졸업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조용히 숨죽여 살 거나, 계란으로 바위 치듯 혐오에 맞서 싸우는 거지. 어때?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는 나를 더 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서, 지난 몇 년간 두 가지 모두 시도해 봤어. 어떤 말이 나와도, 어떤 대화가 오가도 조용히 있는 것. 하지만 연기하고 침묵하더라도 내 신체는 지워낼 수 없더라. 트랜지션이 제법 진행된 후에는 더 많은 추궁을 받을 게 분명했지. 후자는 말할 것도 없어. 날 드러내며 혐오와 싸우는 일에는 늘 숱한 사이버불링과 신상에 관한 위협이 따라붙거든. 결국 버티고 버티다 백기를 드는 것으로 끝나버렸어.
내 정체성을 제거할 수 없고 숨기기도 어려운데, 온몸을 불살라 싸우기에는 너무 지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결국 ‘합리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어. ‘여대에서’ 트랜스젠더의 인권과 존재까지 포용하라는 요구,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고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지 말라는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합리화하기 시작한 거야. 어쩌면 친구의 조언이 맞았을지 몰라. 이 ‘합리적’인 사고는 나를 뒤흔들어놨거든. 지금도 여대는 ‘충분히’ 진보적이고, 더 급진적인 요구는 비현실적인 데다 괜한 분란만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이상하게도, 다수의 의견에 맞춰가다 보니 트랜스젠더/퀴어로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분노를 참기는 더 쉬워지더라. 졸업 때까지 숨죽이고 살면 되는 거잖아. 모두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지는 않잖아. 안 그래?
잇고, 그리는 일
안정은 얼마 가지 못했어. 성별정체성은 나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일 뿐인데도, 학교 안에서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거든. 뇌리에 박힌 혐오 발언들이 내가 소수자라는 사실을 숨 쉬듯 의식하도록 만들었지. 종국에 나는, 마치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 환원되어 버린 것처럼 굴기 시작했어. 매사에 ‘욕먹을 짓’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괜찮은 트랜스도 있다”라는 말을 듣는 데 집착하는 거야. 내 존재가 정당한지, 내 정체성이 실은 착각에 불과한 게 아닌지 실험하고 또 시험해. 아, 그때부터는 나의 정신병이 곧 트랜스젠더의 정신병인 거야. ‘나’의 정체성에 관한 불확실성은 트랜스젠더 존재의 불완전성처럼 남는 거야. 나조차도 내가 정말 미친 사람 같아서, 그 꼴이 비웃겨서 울분이 나더라. 트랜스젠더는 다 미쳤고 혼란에 빠졌다는 둥 그 괴담같은 저주가 나를 통해 실현되는 꼴이지!
그 뒤에는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아니? ‘미친’ 트랜스젠더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려 들었고, 구태여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사회에 ‘녹아들지’ 않는 트랜스젠더를 타자화했어. 정신병에 시달리고, 아프고, 괴상하고, 흉측하고, “모자란” 그들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했지. 적어도 나는 ‘그런’ 트랜스가 아니라고, 나는 트랜스젠더같은 게 아니라고······. 나는 논바이너리, 부치, 레즈비언, 여성, 성별 없음, 미지, 퀘스쳐너리, 젠더퀴어, 퀴어 아닌 성소수자. 아니, 당신이 가장 덜 미워하는 것이 되겠다고.
“정상성에 대한 비판은 이분법적 위계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구조들을 해체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지적하듯 서구 형이상학이 구축하는 틀 자체가 이원론이기 때문에, 이원론을 해체하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너무도 깊숙이 사회와 문화와 우리의 의식에 스며들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지는 정상성의 위계를 해체하는 작업이 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담론은 선/악, 도덕/퇴폐, 공/사, 보편/특수, 남성/여성, 건강한 것/병리적인 것/, 비장애/장애, 백인/유색인, 부유함/가난함 등의 수많은 이분법에 의해 지탱되고, 또 그러한 다양한 이분법적 위계를 계속 재생산한다. 따라서 ‘우리도 정상이다’, ‘우리는 병리적인 존재가 아니다’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그럼 나 대신 누군가를 비정상 또는 병리적인 것으로 낙인찍고 나만 혼자 탈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4)
정신이 사분오열한 끝에 깨달았어.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어. 요구는커녕 묻고 대답하는 것조차 어렵게 하는 압력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 ‘눈치 없이’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걸 밝히기. 노트북 한켠에 붙인 스티커. 무엇을 여성으로, 무엇을 트랜스젠더로 인정할지 논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네 ‘인정’은 필요도, 의미도 없다고 면박 주는 상상.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말을 하는 것.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믿지 않아도 꿋꿋이 비웃음 사는 일.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던 날들. 익숙한 것.
학내 퀴어 동아리에 가입했어. 정말 신기한 경험이야. 캠퍼스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는 못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눈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참 즐거워.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 해야 할까. 동아리 사람들과 만나고 가장 놀랐던 건, 그간 홀로 품어온 고민이 이 집단 공통의 것이었단 사실이야. ‘정신병’ 정도로 치부했던 생각이 함께 논할 만큼 중요한 것임을 확인한 날, 나는 그간의 삶에 어떤 자긍심이 느껴졌어. 단지 뭉쳤을 뿐인데 스스로 더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거야. 사실 처음에는 동아리 사람들의 행동에 참 많이 당황했어. 저런 행동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 단어’를 ‘이런 공간’에서 말해도 괜찮을까? 이건 위험한 발언이 아닌가? 옳고 그름, 추함과 고결함의 경계를 아무렇게나 휘젓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다면 거짓일 거야. 하지만 머잖아 느꼈어. 여대에 입학함으로써 내 존재에 덧씌워져 있던 낙인과 오해를 한 겹 걷어냈을 때처럼, 이 안에서 나는 어떤 환희와 해방을 만나고 있음을. 욕망에 더 솔직해짐으로써 자긍심을 길어낼 수 있음을 말이지.
저번에 말했던 ‘그 언니’ 있지? 잘 안됐는지 또 부치 소개해 달라더라. 더 이상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말야. 맞다, ‘포도’는 고래포차에서 망한 쓰리썸 이야기하다가 또! 내 치즈계란말이 위에 토했어. 이럴 때면 내가 얘네한테 사랑한다고 말한 게 거짓말 같다니까. 누군가는 더럽고 불쾌한 욕망, 너무나 사적인 것, 밑바닥에 있는 삶, 정도 없이 솔직한 말들로 가득 찬 우리의 술자리를 터부시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이 기나긴 침묵 끝에 터져 나온 것임을 알고 있어. 늘 거짓으로 말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라, 이곳에 와서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는 걸 말이야. 그렇게 이 사람들이 자유롭게 제 일상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 그러고 나니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 그래, 한때는 아주 지독하게 괴로워서 어떤 피해도 보지 않고 졸업하기만을 바랐어. 숨을 꾹 참고 버틴 적도, 혈혈단신 싸워서 바꿔내려던 적도 있지. 모두가 잊은 말을 되새기며 울던 날도 기억나. 내가 너무할 정도로 무능해서 울화가 치밀기는 또 얼마나 치밀었던지.
있잖아, 이제는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움직이고 있어. 변화를 바라도 될지, 언제가 적기일지는 재어보지 않아. 지금에 이르러 대단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은 아니야. 당장 변화해야 한다고, 적어도 변화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 뿐이지. 이걸 해야 해. 바꾸지 못하더라도 이 흐름을 이어내야만 해. 그래, 나는 나를 재생시킨 사람들의 삶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변화를 단념할 수가 없어. 더 이상 ‘트랜스’에 천착하지도 않아. 그보다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내는 일에 관해 생각하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움직이는 거야. 내 목소리와 ‘그 언니’의 깔깔한 말투, 몸이 얇은 선배의 스포츠머리와 신입부원의 들뜬 방황이 서로 연결되도록. 헐거워진 손 틈새로 굴러떨어진 사람은 없는지 살펴 가면서. 우리가 솔직함을 배우고 아무렇게나 끄집어낼 수 있는 퀴어한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어쩌면 나는 이곳에서 여대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아가는 걸지도 몰라. 이 지겹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꽤 괜찮은 미래를 살아내려 함으로써 말이야.
투쟁하는 공통의 맥락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에 갔어. 엄숙할 것 같았는데, 북 치고 장구치고(난타 공연이 정말 멋있었어) 신나게 놀더라고. 처음엔 이 추모의 윤리성에 관해 고민했는데, 흐름에 따라 웃고 떠들다 보니 무언가 재생되는 것만 같더라. 그게 몸인지, 마음인지 아니면 용기나 존엄일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을 살아낼 수 있는 생명력이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1년을 다시 버텨내는 거겠지? 봄엔 여성의 날, 여름엔 퀴어퍼레이드, 가을에는 이태원 참사 추모의 날, 겨울에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라는 쉼터를 두는 거야. 잠시 그 쉼터에 모여서 그리운 얼굴을 보고 기억하는 것으로 또 한 계절 흘려낼 힘을 얻지……. 행진하면서 노을 진 하늘을 봤어. 콩나물 같은 깃대와 바람이 없어도 흔들리려는 형형색색의 천이 참 귀엽더라.
이태원을 가로지르는 행진이 시작됐어. 요란하고 떠들썩한 음악에 맞춰 뛰고 또 뛰었어. 문득 두려워질 때면 사방을 둘러봤어. 슬픈 일이라곤 끼어들 틈새도 없는 미소들이 가득했지. 계속 춤추다 보면 그런 미래를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듯한, ‘그 미래’를 초대하려는 듯한 몸짓이 있었지. 슬플 틈이 없었어. 1년에 딱 한 번 모이는 날이니까 눈총에도 웃음으로 화답하고 최대한 떠들썩하게 환호하는 거야. 지금만큼은 우리끼리 신나게 웃어버리는 거야. 그런 추모의 윤리를 배웠어. 분노인지 연대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클락션. 버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사진을 찍더니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이는 사람들. 간혹 보이는 우호적인 웃음, 프라이드 플래그를 들고 함께 걷는 할아버지 무리, 경악에 빠져 입을 틀어막는 사람들.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게 몸을 흔드는 행진 무리와 덩달아 흥에 겨워 굽이치는 깃발. 그런 깃발 수 개가 모여 생기는 흐름. 그래, 그 흐름을 보고 알았어. 내가 찾던 답 말이야.
‘변화’라는 건 무엇일까? 우리에게 다가올, 다가와야 할 변화는? 아마도 계속해서 자리를 만들고, 버티고, 살아남으면서 다른 이들과 뭉치고 섞이는 것. 우리가 무엇을 위해 만나는지 되새기고, 딛고 선 맥락들을 기억하며 연대하는 것. 그런 모습 자체가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아. 그리고, 이게 여대라는 공간이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토양이 되어야 하는지의 답 아닐까?
함께하는 곳에서
누가 고통에는 익숙해질 수 없다고 하더라. 나도 그랬던 것 같아.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구에게 경멸당하는 삶이 싫어서 혐오 발언에 동의하고 정체성을 부정하기도 했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종종 고향에 돌아가는 상상을 해. 나를 완전히 추방했던 그 시골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행복한 명절을 보내다 오는 상상. 동창회에 나가 옛이야기를 하는 상상. 남자 같은 손녀를 못 견뎌 아예 손자 취급했던 할머니께 멋쩍게 웃으며 “이젠 정말 손자가 되었다”고 말씀드리는 상상. 이제는 대명절마다 ‘불효자 모임’을 가져. 나를 정확하게 불러주는 사람들과 함께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마시지. 우리는 터 잡을 수가 없어서 1, 2년 주기로 ‘고향’이 변하지만, 우리와 우리의 고향을 무엇이라 부르고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몰라 매번 단어 사이에서 갈피를 잃지만 말이야,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알고 있어.
나는 숨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았고 수많은 질문의 대답과 무언가의 이유를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 아픔과 깨끗하게 분리될 수 없다고 느껴. 그래도 더 이상 수치심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 이 지저분한 자긍심과 해진 수치심을 안고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 보려고 해. 한때는 그만 울고 싶어서 이곳을 더 빽빽하게 사랑하려고 했지. 지금의 나는 이들의 슬픔을 거들어주기 위해, 서로의 삶을 약속하기 위해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어. 어쩌면 정확하게 사랑하는 걸지도 몰라.
이제 다시 3월이 왔구나. 활짝 핀 벚꽃에서 눈 돌리고 조용한 지면을 들춰본 네가 이 글을 읽고 온 마음을 들키길 바라. 불안한 심장 고동 말고 후련한 눈물로 봄을 나기를 바라. 그렇게 무사히 첫 봄을 마치고, 후년에 찾아올 이들에게 더 나은 장소를 마련해 주었으면 해. 나는 지금 이곳에서 그렇게 할게.
1) 이승윤. (2024).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노래]. 역성 수록. MAREUMO.
2) 미미 마리누치. 『페미니즘을 퀴어링』, 봄알람, 2018, 16쪽.
3) 이승윤. (2024).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노래]. 역성 수록. MAREUMO.
4) 전혜은. 『퀴어 이론 산책하기』, 여이연, 2021, 64쪽.
참고문헌
미미 마리누치. 『페미니즘을 퀴어링』, 봄알람, 2018.
이승윤. (2024). 들키고 싶은 마음에게 [노래]. 역성 수록. MAREUMO.
전혜은. 『퀴어 이론 산책하기』, 여이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