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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Oct 27. 2023

[85호][청년] 우리는 어떤 사이야

미듬



안녕하세요. 가족 실태 조사 나왔습니다. 법적 기준과 관계없이, 현재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 관계를 알려주세요. 

A: 같이 사는 사람은 없고요. 고양이랑 같이 살아요. 고양이가 제 가족이에요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이성애 혼인으로 구성된 혈연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한다.1) 하지만 이와 같은 형태의 가족, 즉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3·4인 가족은 33.6%에 불과하다.2)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2030세대 인식조사’에 따르면, 결혼할 의향이 없는 미혼 청년은 40%에 다다른다.3) 이성애 결혼과 혈연관계로 이뤄진 자녀의 형태가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한부모 가정, 동성 부부와 성인 입양 등 집계되지 않은 수많은 가족 관계를 고려한다면 가족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진다.

 실제 청년이 꿈꾸는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관계를 넘은 다양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새로운 관계를 꿈꾸는 청년 두 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학에 입학해 만난 바다. 차가운 첫인상에 비해 의외로 웃음이 많다. 빨간 머리가 어울린다. 

1.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첫째로 태어났고, 유독 엄마와 감정적인 유대가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엄마랑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흔히들 언급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경험을 했어요. 겪고 나니 가족 사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가족이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공유하고 해소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무책임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 나와 기숙사에서 살게 됐는데 막상 친구한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기는 어려웠고요. 이때 감정적으로 적당히 연결된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엄마, 아빠, 아들 하나, 딸 하나로 이루어진 ‘정상 가족’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성소수자이기도 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아내나 엄마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정상 가족을 이룬 제 모습을 떠올리면 피가 마르는 느낌이에요. 보통 개인이 가족 내에서 부여된 역할에 억압당하기도 하잖아요. 각자의 역할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2. 바다가 생각하는 미래에 관해 듣고 싶어요. 어떤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삶을 꿈꾸나요?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요. 구성원 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가족 같은 식구와 왕래가 있다면 어떤 공간이든 괜찮아요. 같은 건물이나 옆집에 살며 필요할 때 연락하고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어요. 아침에 가족을 깨워서 밥을 준비해 주고 하루의 소소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떠올려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꽃집이나 과일가게에 들려 자그마한 선물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선물하는 걸 좋아해서요. 상대방을 생각하며 물건을 고르는 과정이 즐겁고, 이것저것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거든요.

 이런 삶을 유지하다가, 한 20년쯤 지나면 폐교를 구매해 직접 가꾸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다만 졸업 이후에 여러 일을 해보고 다양한 것을 시도해 봐야 폐교에서 사는 삶이 맞는지 결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자산을 축적하고 삶을 아우르는 노하우를 얻는다면, 그곳에서의 삶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실현할 수 있다면 직접 농작물을 기르면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 거예요. 상추, 오이, 토마토, 가지 그리고 과일나무까지 길러보고 싶어요. 교실을 각자 방으로 꾸미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내 손으로 밭을 갈며 삶을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3. 어떻게 관계를 이루어 나갈 생각인가요? 혹시 관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걱정되는 게 있나요?

 대학에 다니는 20대 중반까지, 대안 가족에 대한 꿈을 구체화할 생각이에요.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싶어요. 제가 경험해 본 건 대학 내부 사회뿐이니까, 졸업한 후 사회를 겪어본다면 계획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점도 분명히 있죠. 제가 꿈꾸는 가족을 꾸리더라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요. 가족을 이루기 위한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어도, 이런 불안 때문에 함께하는 삶에서 여유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공동체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도요. 미래를 함께 그릴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련의 과정이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거지를 옮기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폐교처럼 고립된 공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같이 살 사람을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좌절될 수 있는 부분은 많지만, 나와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있다면 꿈꾸기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4. 현재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에 벗어나, 많은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가 필요할까요?

 가족의 모습이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의 모습과 유지 기간은 들쭉날쭉할 수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보통 자신이 태어난 가족과 상호작용하는데, 그들의 시야나 생각을 전부라고 여기면 새로운 삶을 꾸리는 시도가 차단되기도 하니까요. 어떤 사람은 대안 가족이나 관계가 이룰 수 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사회적으로 다양한 가족과 관계가 미디어에 계속 노출된다면, 대안 가족이나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 확장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제도적인 지원이 부족하더라도 언젠가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에서 만난 새벽. 과묵한 첫인상과 정반대인 수다쟁이이다. 

1.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는 여러 친척과 함께 살았어요. 그런데 내부에서 혈연관계를 중시해서 이상적인 공동체는 아니었어요. 핵가족 간의 경계가 명확했고, 친척들은 항상 잠시 살고 있는 가족일 뿐이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어요. 가족이 뭐길래 함께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섭섭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너무 난처했어요. 우리 가족은 흔히들 말하는 정상적인 형태가 아닌데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아빠랑 언니만 써서 낸 기억이 있거든요.

 이제는 독립하면서 원가족과 분리된 개인으로 살게 되었지만, 계속 가족에 목말라 있어요. 원가족이 원하던 가족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집을 나오게 됐는데, 막상 독립하니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남자랑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가족을 만들 방법이 한정적이고, 누구랑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기 힘들더라고요. 다들 혈연 중심 가족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지만, 그들도 결국에는 혈연 중심 가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혈연 주의의 공고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저는 독점적인 관계가 아니면서도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러던 와중에 망원동에 거주하는 퀴어 이웃들에 관한 기사를 읽었어요. 동네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일상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 좋아 보였어요.4) 망원동 퀴어 커뮤니티 사람들처럼 그런 느슨하고 포용적인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어요. 


2. 새벽이 원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궁금해요.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나요?

 누군가의 인생을 함께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아무래도 혼자 양육하는 건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명의 양육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공동 양육자가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망원동과 같이 느슨한 공동체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주거 형태와 위치 같은 구체적인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옆집에 살든, 같이 한집에 살든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정서적인 친밀감과 책임감을 가지는 거예요.

 아직 공동체가 실현되지 않아서 미래에 새롭게 맡을 역할은 잘 모르겠고, 공동체를 이루게 될 때 평범한 일상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지금은 혼자 사는 게 진저리가 나서, 미래에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을 것 같아요. 소속감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친밀한 사람과 무언가 같이할 때 풍족함을 느끼거든요. 또 돌봄 자체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플 때 지나가다 가족이 건네는 “괜찮아? 열 많이 나? 약 챙겨줄까?”라는 일상적인 말 한마디가 돌봄이 될 수 있잖아요. 지금의 돌봄은 제공하는 방식과 양이 한정되어 있는데, 돌봄이 여러 사람과의 상호 관계로 이루어진다면 더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제가 원하는 건 관계의 형태인 것 같아요.

  

3. 원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극복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언제든지 대안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이 공동체를 이룰 상대방이 존재한다면요. 나이가 들어 가족 형태가 바뀌게 될 때, 모두가 앞으로 어떤 가족과 살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관계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언제나 관계 맺기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겪어요.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도하다 보면 원하는 관계를 꾸릴 수 있다고 희망해요. 지금은 개인적 영역에서의 도전이지만 이게 구조나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개인이 노력할 필요는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상 가족’을 더 당연하게 인식해요. 정해진 가족 관계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요. 관계에 대한 어떠한 정의도 내려지지 않아야만, 개인이 다양한 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친구들이 연인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족처럼, 또 남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한테는 관계가 정형적인 방식으로만 정의되니까 사회적으로 관계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려워요. 친구도 하고 가족도 하고 연인도 하고,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들을 정의하지 않으면 다양한 방식이 보장될 수 있어요. 관계를 맺는 요소가 협소하고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 요소가 아예 없어지는 게 나아요. 


4. 현재의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에 벗어나, 많은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가 필요할까요?

 다양한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상상력이 없는 사회에서 억압을 느끼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느껴요.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노인 차별은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관계에서 오는 차별이기에, 미래에 다양한 것이 존중받는 사회가 온다면 차별도 해소될 수 있겠죠. 대안 가족 정착은 단순히 자유로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차별들을 없애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어요.

 사회가 변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삶을 그릴 때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자유는 다양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어요. 


앞으로는

 가족은 결혼과 출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족은 자연 발생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고 노력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것은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실질적 연결에 가깝다.

 사회가 정한 가족의 범위는 사회가 포용하는 구성원의 범위와 다르지 않다. ‘정상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구성원은 정책과 제도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현 사회가 요구하는 ‘가족’의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정한 일부만을 포용하는 사회는 개인에게서 서로가 연결될 기회를 빼앗는다. 

 우리의 상상력은 더 많은 연결을 부르고, 더 많은 존재를 포용한다. 실처럼 뻗어나간 연결은 나이, 성별, 국적,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5월, ‘친구 입양기’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다. 함께 사는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된 것이다. 이들은 “생활동반자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출산·입양밖에 없다”라며 “동성 친구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입양이니 입양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5) ‘정상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꾸리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변화다. 그러니 다양한 관계를 상상하고 꿈꾸고 이야기하자. 원하는 관계를 끌어안고 사랑하고 퍼트리자. 우리의 관계는, 가족은, 사회는 그 결말 속에 있을 것이다.

 


1) 법제처. 제779조(가족의범위).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AF%BC%EB%B2%95/%EC%A0%9C779%EC%A1%B0(2023.07.27. 접속).

2)국가통계포털. (2020). 「가족실태조사」. 여성가족부.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54&tblId=DT_154001_002&conn_path=I2(2023.07.30. 접속).

3) 김태원. (2023). 요즘 2030 결혼 안 한다고? …'이것' 해결되면 생각도 달라졌다.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TCOLRJXW(2023.08.17. 접속).

4) 시시선. (2020). 당신이 모르는, 퀴어들의 마을. 일다. https://m.ildaro.com/8868(2023.07.20. 접속).

5) 서혜미. (2023).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됐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2268.html(2023.08.16. 접속).



참고문헌

국가통계포털. (2020). 「가족실태조사」. 여성가족부.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54&tblId=DT_154001_002&conn_path=I2(2023.07.30. 접속).

김태원. (2023). 요즘 2030 결혼 안 한다고? …'이것' 해결되면 생각도 달라졌다.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TCOLRJXW(2023.08.17. 접속).

법제처. 제779조(가족의범위). 국가법령정보센터, https://www.law.go.kr/%EB%B2%95%EB%A0%B9/%EB%AF%BC%EB%B2%95/%EC%A0%9C779%EC%A1%B0(2023.07.27. 접속).

서혜미. (2023).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됐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2268.html(2023.08.16. 접속).

시시선. (2020). 당신이 모르는, 퀴어들의 마을. 일다. https://m.ildaro.com/8868(2023.07.2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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