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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Oct 20. 2023

[85호][청년] 문과는 뭘 하나요

사람

 취업박람회에서 전공을 말했을 때 미묘한 표정을 짓는 담당자를 만나본 적 있나요? 전공을 밝히니 대학원 진학을 만류하는 사람은요? 아니면 전공 활용에 관해 강력히 어필하는 교수님을 만난 적은요? 모든 것에 해당된다면 당신은 문과일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저는 어문학과 인류학을 전공했습니다. 취업보다는 배우고 싶은 걸 선택하고 싶었어요. 미래의 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중요했으니까요. 물론 전공을 선택한 후 열성적으로 공부하고 싶던 날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이 학문이 필요 없다고 여긴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고 나니 문득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정말로 취업이 그렇게 어렵나? 스펙도 별로 없는데 전공도 이러니 큰일이다. 하는 생각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고 싶은 거 공부하다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기도 합니다. 철학과 문학이 환영받으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야 한다는 농담에 웃었는데, 점점 그 말이 형태와 질감을 갖추어 찾아오는 기분이 듭니다. 


만약 경영을 선택한다면

 1학년이 끝나고 2학년 1학기를 시작하기 전 1월, 전공 선택을 앞둔 날, 경영학과와 문화인류학과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도 경영학과를 가는 게 취업에 조금이라도 유리하지 않을까? 취업이 어려워도 경영을 전공하면 좀 나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사회는 좀 더 심각했던 것 같다. 통계로 보자면, 2023 연세대·고려대 인문계열 학과에 합격 후 등록하지 않은 학생은 전체 모집인원의 32.1%인 499명이었다.1) 서울대 진학률을 기준으로 뽑은 전국 24개의 고등학교2) 와 자사고의 3학년 학급 중 68%가 이과였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2022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국내 기업의 신규 일자리 10개 중 6개는 이공계 졸업자가 차지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3) 뒤이어 인문계열(36.7%), 기타 전공계열(2.3%) 순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개 채용 감소로 인해 더욱 어려워지고 있으며 채용 시 경력자 이상의 역량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풍조를 보며 나 역시 점점 불안해진다. 치열하게 살아도 문과인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없다. 학문의 가치와 나의 생존은 별개다. 밥도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문학이나 철학이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 차라리 코딩을 배우면 취업이 편하지 않을까? 코딩을 배우고 디자인을 공부하자. 나의 존재와 행복을 고민하는 건 취업 이후에,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니 쓸모없는 고민보다는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배우는 게 우선이다.

 순진했던 시기가 지나자 남은 것은 걱정뿐이었다. ‘문송하다’와 문과 취업난이라는 말만 귀에 쏙쏙 박힌다. 일반적인 문과 전공생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공은 사회에서 쓸모가 없으니 말이다.

   

▲ (좌) 사회에서 통용되는 문과 인식 ⓒ출처 불명 | (우) 문과의 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림 ⓒ출처 불명


 사람이 만든 것

 그러나 쓸모와 재화의 잣대로 삶을 판단하다 보면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이 남는다. 과연 인간의 삶이 경제적 가치만으로 지탱되는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무용해 보이는 존재가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냐는 물음에 영화 한 장면을 빌려 답하고 싶다. 영화 <쇼생크 탈출(1995)>은 주인공 앤디가 누명을 쓰고 감옥 쇼생크에 구금된 후 탈출하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 감옥의 죄수들은 무감한 하루하루를 반복한다. 그러나 앤디만이 그곳에서 쓸모없는 기행을 일삼는다. 간수 몰래 감옥의 스피커를 조작해 음악을 틀고,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도서관을 고치고 책을 기증받는다. 하지만 음악이 울려 퍼지자 죄수들은 하던 일을 잊고 음악에 빠져든다. 앤디의 동료였던 레드는 훗날 자신이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순간이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감옥에선 의식주가 전부 해결되었지만, 죄수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생존이라는 기본 목표 외에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은 다각적인 세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세계가 혼합될 때 인간의 행복은 다채로워진다.4) 삶을 이루는 층위는 다양하다. 생존, 따뜻한 잠자리, 슬픔을 나눌 친구. 이 모든 구성이 삶의 굴곡과 온도를 만들어 낸다. 앤디는 무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음악과 책이 주는 기쁨을 알았다. 그 안에는 삶을 더 복잡하게 하는 아름다움과 즐거움, 사람에 관한 이해와 사랑이 들어있다. 허무맹랑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 감각하고 체득해야 하는 어떤 것들이다. 이것은 허기를 채우거나 나를 지킬 무기는 되지 못해도 더 나은 삶, 미래, 자유를 꿈꾸게 한다. 


 다양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는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것, 즉 실용적이거나 효율적인 영역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수치와 물질, 데이터보다 더 직관적이고 빠른 것이 있다. 분명 존재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의료인류학자 이기병은 저서 『연결된 고통』에서 노동자의 고통을 사회 맥락적으로 파악하며 환자 개인의 서사에 집중한다. 과학적 증명이 없는 그들의 아픔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되기 때문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효율과 효과가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은 '질병 코드'로 암호화된다. 고통과 증상을 통해 몸이 말하고자 했던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목소리는 검열되고 절삭되어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5) 대표적인 예시가 우울이다. 정신의학의 발달로 우울의 범위는 확장되었다. 병리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아픔을 우울의 범위에 집어넣는 현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6) 이는 우울의 본질이 단순한 질병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고통과 통증이 분명해도 질병으로 소명되지 않는 이상, 아픔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질병으로써 증명된 우울은 단순한 치료 대상으로 전락한다. 개인에게 고통이 찾아온 맥락은 수몰되며, 통증을 얻게 된 구조는 해결 대상에서 제외된다. 디지털 부호로 표현된 환자의 고통은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든다. 개인의 고통은 더 나은 의료 기술과 약물에 의존해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된다.


 인문학7)적 관점은 과학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더듬어 사람과 사회를 연결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가한 고통과 억압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만약 나의 우울이 타인의 혐오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를 개인적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혐오가 생성된 맥락에는 반드시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 있으며 그것을 방관하는 것 역시 사회적 책임이다.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난 고통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인문학은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가시화를 돕는다. 증명할 수 없는 세상을 개척하고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를 파악한다. 우리의 아픔이 과학의 영역에선 실재할 수 없듯, 수치화되고 이론화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적다.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익 창출이 모든 일의 당위이자 근거가 된다. 우리는 이에 휩쓸려 단순히 눈으로 확인되는 요소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하지만 숫자와 이론, 물질만 남은 세계에서 사람이 설 곳은 없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과학과 물질은 필연적으로 빈곤해진다. 실용적인 것은 언제나 근원적인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사라진다면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더 단단한 사회를 만든다. 좋은 사회란 기술과 과학으로 편리함을 끌어올리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을 위해 기술과 과학을 사용하고, 함께 논의하는 사회다. 인문학은 여전히 실용성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좋은 사회가 무엇이냐는 질문 역시 사람을 기반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떠한 사회가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이 경제적 빈곤에 처했을 때뿐만 아니라 혐오를 마주했을 때,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때 등 다양한 상황과 문제를 발견하고 상정해 대비책을 논의하는 것이다.

 결국 이 글로 말할 수 있는 건 인문학의 쓸모 따위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의 학문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지도 않겠다. 이 글의 역할은 (상투적일지는 몰라도) 재화의 가치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다시 한번 짚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지 않냐고 되묻는 것 정도다. 


 물론 물질적 풍요 역시 중요하다. 인문학이 인간의 생존보다 상위의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지 못했다면 인문학을 고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낭만과 당위를 함부로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문과를 택하기 쉬웠다. 진지하게 전공을 고민했지만, 생존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나의 위치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떠들어도 이를 공감하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인문학을 찾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일상을 파고드는 작은 부분부터 사회를 이루는 큰 부분까지의 해석을 위해 인문학에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누군지 고민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것. 사회를 이루는 근간에는 이 과정이 반드시 존재하며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인문학 없는 우리는 그 어떤 조각도 남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이다.



1) 남지원. (2023). 서울·연세·고려대 1,343명 등록 포기···의대로 ‘연쇄 이동’ 뚜렷. 경향신문. (2023.07.29. 접속).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2191620001#c2b 

2) 조유라. (2022). 상위권 고교학급 70%가 이과반…심화되는 ‘이과 쏠림’ 현상. 동아일보. (2023.07.30. 접속).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619/113998851/1 

3) 임주형. (2022). 이공계는 갈수록 '귀한 몸' 되는데…문과 졸업생들 '한숨'. 아시아경제.https://www.asiae.co.kr/article/2022032215220837786 (2023.07.19. 접속).

4) 김선욱. (2016). 인간의 조건과 행복 - 아렌트와 하버마스를 통한 행복의 구조 이해 -. 철학논집, 44, 39-67.

5) 이기병. (2023). 연결된 고통. 고양: 아몬드.

6) 이정연. (2022). 우울의 시대: 우울의 의료화와 ‘우울증’의 자전적 서사 담론의 의미. 현상과인식, 46(1), 125-152.

7) 이 글에서 의미하는 인문학은 단순히 문학, 사학, 철학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을 다루고 이해하는 모든 학문을 포함해 사용함을 밝힌다.



참고문헌

김선욱. (2016). 인간의 조건과 행복 - 아렌트와 하버마스를 통한 행복의 구조 이해 -. 철학논집, 44, 39-67.

남지원. (2023). 서울·연세·고려대 1343명 등록 포기···의대로 ‘연쇄 이동’ 뚜렷. 경향신문.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302191620001#c2b (2023.07.29. 접속). 

손해용. (2022). 코로나에 심화한 ‘문송합니다’…문과 전공 취업만 더 힘들어졌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8075#home (2023.07.29. 접속).

이기병. (2023). 연결된 고통. 고양: 아몬드.

이정연. (2022). 우울의 시대: 우울의 의료화와 ‘우울증’의 자전적 서사 담론의 의미. 현상과인식, 46(1), 125-152.

임주형. (2022). 이공계는 갈수록 '귀한 몸' 되는데…문과 졸업생들 '한숨'.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kr/article/2022032215220837786 (2023.07.19. 접속).

조유라. (2022). 상위권 고교학급 70%가 이과반…심화되는 ‘이과 쏠림’ 현상. 동아일보.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20619/113998851/1 (2023.07.3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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