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최정원
언론言論
1. 개인이 타인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말이나 글이나 전파 등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발표하는 일.
2. 신문·라디오·텔레비전·통신·잡지 등을 통해 뉴스나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1)
‘권력의 감시자’, ‘민주주의의 근간’, ‘제4의 권력’.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에서 펜이 상징하는 대상 중 하나. 이 거대한 수식어들이 손을 모아 가리키는 끝, 그곳에는 ‘언론’이 있다.
인류와 언론의 동행은 공고문 형식의 문건이 등장한 기원전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 빠른 정보 전달과 소통을 도맡았던 언론의 영향력은 기술·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이 거듭될수록 점차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가 되었다. 그들이 실어 나르는 정보들은 때로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언론의 자유로운 발언을 억압하고 언론계는 셀 수 없는 검열과 통제에 맞서 투쟁을 반복해 왔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탄생과 발전으로 한층 강화되었지만, 압박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한 언론계와 시민 사회의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경없는기자회는 2002년부터 매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를 발표한다. 한국은 올해 ‘62위’를 기록했다. 작년보다 15위나 하락한 수치로, 순위가 60위권으로 떨어진 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언론 자유 국가 분류에서도 ‘양호함’이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문제 있음’ 딱지가 붙었다.2) 유신 정권의 폭력적인 언론 탄압에 저항하고자 채택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이 ‘자유언론’은 과연 유효한가? 62위라는 수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대한민국 자유언론, 저항과 투쟁의 역사
한국 언론 발전의 역사는 다른 나라와는 상이한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근대 언론이 시작된 1883년부터 일제강점기, 광복, 군부 독재, 민주화 등 수없이 많은 변혁을 겪어온 언론의 역사 때문이다. 저항과 투쟁이 반복된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부당한 권력의 폭압 아래, 언론은 자유를 수호하기도, 파괴하기도 했다. 최초의 민간 신문이자 민주주의와 자주화 등 근대화 사상을 사람들에게 알린 「독립신문」(1896)부터 일제가 노골적으로 언론을 탄압하던 시기, 항일 민족지로 기능한 「대한매일신보」(1904) 등은 근대 언론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며 여론 형성에 앞장섰다. 「조선독립신문」(1919)과 같은 수많은 지하신문3)은 비공식적일지언정 항일과 독립을 비추는 불씨였으며,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과 그에 굴복한 이들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4) 이렇듯 언론은 권력에 대항하며 대중의 힘을 응집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자의 권한 확대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독재 정권의 언론통제 양상은 유사하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대대적으로 억압하지만, 친정부적 보도를 하는 언론은 살려둔다. 시민 사회에 자신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퍼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다. 군부 독재 시기의 언론 탄압 역시 동일하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 아래에서는 극심한 언론통제로 인해 취재를 해도 기사를 싣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부 언론들은 굴복을 택해 박정희 정부의 지배 수단이 되었다. ‘헌정사상 최악의 언론 탄압’을 시행한 전두환 정부는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려 들었다. ‘언론통폐합’, ‘언론기본법’ 등 폭력적인 언론 탄압 정책에 따라, 언론은 정부의 수족이 되어 정권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언론으로서의 ‘자아’를 상실했다.
일부 일선 기자들은 이를 비판하며 강력히 저항했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채택했다. ‘보도지침’에 대해서는 검열·제작 거부로 대항했다. 정부는 대량 해직과 징계로 응징했지만,5) 한국 언론은 이들이 ‘펜으로 맞서’ 써 내려온 역사를 기억해야만 한다. 백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일련의 아픈 역사를 경험했던 만큼 지배권력에 대한 저항과 독립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의 존속 자체가 그 가치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살아남은 자유언론의 가치가 여전히 남아있는지,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볼 때다.
2024 자유언론의 현주소
2024년 현재, 슬프게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국정원 동원, 사찰과 징계, 해직, 프로그램 폐지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정부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을 찍어 눌렀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땐 보도지침 수준의 통제를 가했다. 한국 사회가 겨우 되찾은 언론의 자유와,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망가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망령은 현시점에서 꼭 닮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 정부의 언론통제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보도다. 이를 최초 보도한 MBC는 말 그대로 ‘찍혔고’, 여당의 고발과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가 뒤를 이었다. 류희림 위원장 아래 방심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에 법정 제재 최고 수위인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정부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사를 향한 보복성 징계가 시작됐다. 방심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9조를 근거로 들며 언론사의 ‘공정성 위반’을 주장했다. 해당 규정에는 “방송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와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해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추상적인 조항은 해석을 모호하게 만든다. 명확하지 않은 ‘공정성’의 기준이 악용 우려를 자아냄에도,6) 방심위의 판단에 따라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징계를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공정한’ 판단으로 볼 수 있을까.
방심위의 법정 제재 남발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방심위는 형식상 민간기구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제재를 집행하는 주체는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연이은 법정 제재에 방송사들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올해 방통위는 상반기만 집계했음에도 최근 10년 중 가장 많은 소송 비용을 지불했다. 지난 1월 1일부터 4월 19일까지 총 1억 3970만 원이 든 건데, 올해 제기된 소송 11건 중 8건은 류 위원장의 취임 이후 발생했다. ‘공정성 위반’이라는 명목 아래 행정력과 세금이 과도하게 낭비되고 있다.7)
한편, KBS는 낙하산 사장의 취임 이후 졸속 장악이 진행되고 있다. 예고 없는 인사 교체8)와 시사·교양 프로그램 폐지,9)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이유로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 무산 등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심지어 지난 7월, 사측은 시사교양국 해체 후 소속 PD들을 보도본부 아래로 재배치하는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10) 사측은 공정성 제고 등을 이유로 제시했지만, 일선 구성원들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언론의 손발을 묶어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훼손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권력을 향한 비판을 거세하려는 사측의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4년 전에도 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도본부로 이관시킨 후 제작 자율성을 탄압한 전적이 있었던 것이다.11)
부서·매체별 업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본부 조직을 통폐합하겠다는 고민 없는 대책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통폐합의 이유로 든 ‘인력 효율화’와 ‘향후 미디어 환경의 기술적 변화’는 급작스러운 개편안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엉성히 포장된 통폐합 안은 구성원 분산 및 영향력 축소라는 우려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머지않아 언론 전반의 정치·자본 권력에 대한 직접적 비판, 또는 관련 보도를 더 이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권력이 시민의 눈과 귀까지 통제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심지어 언론을 향한 국가권력의 테러가 ‘가벼운 농담’으로 취급되는 현실은12)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언론에 가한 행위의 요약본과도 같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언론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40여 년 전, 군부 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연상시킨다. ‘자유언론’을 향한 명백한 위협이자 협박,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자유언론의 가치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2024년, 권력의 사유화를 남발하는 정권 속에서 부러진 자유언론의 기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자유언론을 수호하라
자유언론의 기는 부러졌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사망 선고는 포기하는 순간 내려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유언론을 수호하기 위한 움직임을 기억하고, 그 맥을 계승하는 것이다.
정부와 언론사주에 의해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은 자유언론 수호의 구심점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있다. 민언련은 1985년 창간한 기관지인 「말」을 통해 전두환 신군부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시민단체로 전환하여 언론 감시, 시민 언론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13)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은 1988년 창립된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하 언론노련)’의 “민주언론 실천과 언론노동운동의 성과를 계승”한다. 매체 산업 종사자의 노동 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편집권 독립, 언론인 자정, 공정 및 민주 언론 등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총파업과 연대 활동 또한 진행한다.14) 언론을 규제하기 위한 ‘언론윤리위원회법(1964)’ 제정에 맞서 창설된 ‘한국 기자 협회’는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의 주축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기획·탐사보도15)와 ‘취재에 성역은 없다’라는 의식이 퍼졌다. 이는 언론이 사회의 감시자로서 국가와 시민의 견제 관계를 뒷받침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거대해진 영향력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언론이 정보의 경유지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인 만큼, 때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자본주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며, 언론 권력은 ‘자본’의 힘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매체 간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생존과 성장을 꾀하려면 수입이 확대되어야 했다. ‘광고’가 언론 수입의 큰 비율을 차지함에 따라, 재벌과 대기업의 자본 투입은 필연적이었다.16) 하지만 광고 수입에 의존할수록 보도가 도구처럼 쓰일 가능성 또한 커졌다.17) 기업으로의 ‘종속’, 즉 ‘소유’로 인한 개입이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24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11개의 언론사를 자본이 소유하면서 지배구조가 바뀌었다. 올해 2월 YTN의 최대 주주가 건설회사를 모체로 둔 기업으로 변경된 것처럼, 건설·금융·IT·부동산 기업 등이 언론사의 대주주가 되고 있다. 대주주가 바뀐 뒤 기사가 삭제된 사례도 적지 않아, 자본이 편집권의 ‘독립’을 인정할지조차 우려스럽다.18) 경제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신문에도 예외는 없다.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경제신문」 지분 중 약 91.5%가 국내 52개 기업의 손에 있다.19) 비록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더라도, 경제신문이라면 이 땅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든 이들을 위해 더 객관적이고 치우치지 않은 보도를 실천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과연 권력은 소유물의 비판을 ‘허락’할까? 언론이 자본에 기대게 된 순간부터 예견된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언론의 공적 가치가 어그러진 것은 자본의 잠식 때문만은 아니다.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 보도 전략과 타블로이드화20)는 탐사보도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전락시켰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언론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흔히 ‘언론답지 않은 언론’을 비판할 때 쓰이는 표현인 ‘기레기’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전원 구조’ 오보와 도를 넘은 취재 경쟁, 자극적인 보도, 받아쓰기에 급급한 언론의 작태에 ‘언론=기레기’라는 공식이 말 그대로 ‘공식’이 된 것이다. 당시 정부의 언론통제가 있었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이 가진 영향력을 알고 있음에도,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꾸준한 자정과 의식 제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통스럽고 지난한 투쟁으로 쟁취해 낸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서는, 이 말을 오남용하지 않기 위한 내부적 노력이 절실하다.
결국 언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걸까? 대안언론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대안언론이란, ‘기존의 주류 언론에 대항하는 비판적이고 규모가 작은 새로운 개념의 언론’을 뜻하며,21) 항상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을 전제한다. 정치 및 자본 권력에서 독립하지 못한 주류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이끌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의도된 편파보도’를 실천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권력관계에 유착되어 정치적 입장을 선전하는 주류 언론과 달리,22) 조명받지 못한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주류 언론과 대안언론을 딱 잘라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안언론은 주류 언론에 몸담았던 이들로부터 시작하기도, 주류 언론의 문법을 차용하거나 변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대안언론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주류 언론과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 형성이다.23)
대표적인 예시로는 대안언론과 신사회운동24)의 결합을 들 수 있다.25) 대안언론은 환경, 평화, 여성 등 기존의 정치 담론과 언론 의제에 포함되지 못한 영역을 가시화했다.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으로서 도외시되었던 가치들을 확산시키고, 사회운동을 활성화한다.26) 새로운 의제를 심층적이고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사회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비전문 언론인이자 20대 청년들이 만드는 「고함20」, 장애인의 저항을 기록하는 「비마이너」, 국제주의·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노동자 연대」, 오직 페미니즘 콘텐츠만 보도하는 「일다」 등 그 형태도 다양하다.
사회에서 소외되던 이야기를 끊임없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대안언론만이 아닌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가 동반되어야 한다. 후원, 구독 등 참여의 방식은 다양하게 열려있다. 시민은 단순한 언론의 소비자가 아닌 언론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다. 대안언론이 표방하는 가치에 공감할 때, 언론-시민은 물론 시민 간의 연대와 지지 역시 가능해진다.
일례로, 과거 정치·자본 권력이 언론 탄압을 자행하고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 때,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언론의 힘이 되어 주었다. ‘격려 광고’는 그중 하나다.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채택한 뒤, 정부는 광고 탄압에 돌입했다. 정부의 압박에 의해 광고주들이 줄줄이 계약을 취소하며 「동아일보」의 광고란이 텅 비는, 일명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가 터졌다.27) 지난 2007년 말 이후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중 하나인 삼성이 ‘언론은 이렇게 길들이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광고 탄압을 자행했다. 삼성그룹 불법 비자금 의혹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며 비판한 「한겨레」와 「경향신문」에 아무 말도 없이 광고를 끊어버린 것이다.28)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횡포로 텅 비어버린 자리를, 시민들은 직접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탄압받는 언론에게 보내는 응원임과 동시에 연대의 메시지였다. 이는 ‘자유언론’을 지키기 위해서는 언론인 자체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존재와 의식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증명이다.
앞선 ‘기레기’의 탄생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기레기에 불과한’ 언론을 향해 비판을 멈추지 않는 것은, 셀 수 없는 실망과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늘 소망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회의 목소리를 듣고 양심에 따르기를, 힘들지라도 정공법을 택해 공정한 보도를 지향하기를 말이다. 바람이 실현되려면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자유언론은 언론과 시민이 화합할 때 지켜질 수 있다. 언론은, 권력은 개인의 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언론인들이 자유언론 수호의 창이라면, 방패는 시민의 몫이다. 항상 반복되는 실망과 불신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포기하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므로.
또 한 번 부러질지언정
“테러로는 언론의 입을 막을 순 없다.” 언론을 향한 위협과 싸우는 언론인들에게는 하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애리조나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정신이다.29) 어쩌면 오늘날의 한국 언론에도 이런 정신이 필요한 게 아닐까. 작금의 세태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실은, 이미 사회가 지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에 익숙해졌다. 외면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소명마저 낡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감히 그 진부함을 끝까지 붙들자고 말해 본다. 권력은 우리가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알려 국민의 분별30)에 조력하기 위해서다. 자유언론의 수호는 곧 민주주의의 수호다. 끝없는 무력함은 그 사실까지 망각하게 만들곤 한다. 그러나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31)라는 영화 같은 신념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펜을 꺾어버린 이들과 권력의 입막음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쓰고’ 있다. 이 글을 읽어준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부탁한다. ‘그럼에도’ 쓰는 이들을 지켜봐 주길 바란다. 언론이 쓰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필요하다면 부러진 기라도 함께 들어 올려 싸워주기를 바란다. 언론과 시민이 서로를 포기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패배한다.
50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 당시 채택한 결의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하나.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하나.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하나.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 구글 한국어 사전 참고.
2) 정철운. 「윤석열 정부 2년 만에...세계 언론자유지수 62위 ‘추락’」. 『미디어오늘』. 2024.05.03.
3) 지하신문은 허가를 받지 않고 비합법적으로 숨어서 발행하는 신문을 의미한다.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언론」 참고.
5) 우리역사넷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국가기록포털 「필화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관련 항목 참고.
6) 남보라. 「추상적인 ‘공정성’ 조항...방심위가 MBC 폭풍 징계하는 근거였다」. 『한국일보』.
2024.04.23.
7) 박채연. 「방심위·선방위, 무더기 법정제재에 소송비용도 ‘역대급’」. 『경향신문』. 2024.05.12.
8) 이완기. 「KBS, 박민 사장 취임 첫날 뉴스 앵커 전면 교체」. 『서울경제』. 2023.11.13.
9) 이때 제작진 중 정규직보다 프리랜서가 많았던 <더 라이브>는 일방적인 폐지 통보 후 수십의 실직자가 발생했다.
강한들. 「KBS ‘더라이브’ 공식 폐지…제작진 “통보 받았다”」. 『경향신문』. 2023.11.17.
엄재희. 「‘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MC 거부해 폐지 위기」. 『PD저널』. 2024.05.14.
10) 노지민. 「KBS, 시사교양국 폐지 추진」. 『미디어오늘』. 2024.07.13.
11) 이다겸. 「“‘추적 60분’ KBS 보도본부 이관, 사실상 시사교양국 해체”」. 『매일경제』. 2024.07.16.
12)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는 ‘농담’을 했다.
김소연. 「황상무 ‘회칼 테러’ 언급 논란, 결국 사과 마무리」. 『한국경제』. 2024.03.16.
13) 민언련 공식 사이트 <걸어온 길> 참고.
14) 언론노조 공식 사이트 <조직 소개> 참고.
15) 기획보도는 매체에서 특정한 기획 의도를 갖고 내보내는 보도를, 탐사보도는 범죄, 비리, 부패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각종 사회 문제를 직접 조사하여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16) 이진로. (2010). 한국의 광고를 통해 본 자본과 언론. 2010년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학술대회, 165쪽.
17) 배정근. (2010). 광고가 신문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54(6). 110쪽.
18) 박서연. 「[분석] 2024년 한국 언론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미디어오늘』. 2024.05.17.
19) 언론노조. 「[보도자료] 91.5%…기업이 가진 한국경제신문 지분」. 『전국언론노동조합』.
2022.11.29.
20) ‘타블로이드화’는 상업화에 따라 비非타블로이드 언론, 특히 양질의 뉴스를 생산하는 양질의 언론이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특성과 가치를 수용하는 현상이다. 이때 타블로이드 언론은 자극적이고 품질이 낮은 저널리즘을 의미한다.
이나연·김창숙. (2023). 포털에 게재된 주요 언론사 기사의 타블로이드화. 미디어,젠더&문화. 38(2). 184쪽.
21) 두산백과. 「대안언론」. 참고.
22) 김수지. (2016). 대안언론의 공정성 인식과 실천 : 뉴스타파 사례분석. [석사학위,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DBpia.
23) 김은규. (2005). 다윗과 골리앗을 넘어서 : 대안미디어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 틀과 그 함의. 한국언론학보. 49(2). 277쪽.
24) 신사회운동이란, “1970년대 이후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크게 증대한 환경, 평화, 여성, 반핵, 반문화, 녹색당 운동 등 기존의 사회운동 영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롭게 등장한 사회운동”을 말한다.
김호기. 「신사회운동이란 무엇인가?」. 『참여연대』. 2000.03.01.
25) 김은규. 앞의 글.
26) 김은규. 앞의 글.
27) 허문명. 「박정희 정권 언론탄압...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동아일보』. 2013.07.16.
28) 김아영. 「12년 전, 삼성의 경향·한겨레 광고 중단…지지광고로 저항한 독자들」. 『한국기자협회』.
2020.02.05.
29)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1976년 미국 애리조나 지역의 부패와 마피아의 조직범죄를 파헤치던 탐사보도 전문기자 돈 볼스가 차량 폭탄 테러로 사망하자, 미국 전역에서 40여 명의 기자들이 모여 희생된 동료 기자의 뜻을 마저 잇기 위해 시작한 대규모 연대 협업 취재 프로젝트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언론사 간의 경쟁과 경계를 허물고 연대 의식을 공유한 의미 있는 행위로 평가받는다.
KBS. 「[애리조나 프로젝트] “테러로는 언론의 입을 막을 순 없다.”」. 『KBS뉴스』. 2007.06.24.
30)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 또는 올바른 사리 판단을 하고 시비를 가릴 능력을 의미한다.
31) 미국 정부가 30년간 숨겨온 베트남 전쟁의 내막을 보도하기 위해 노력했던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더 포스트〉의 대사를 인용.
참고문헌
강한들. 「KBS ‘더라이브’ 공식 폐지…제작진 “통보 받았다”」. 『경향신문』. 2023.11.17.
https://www.khan.co.kr/national/media/article/202311171116001(2024.08.02. 접속).
구글 한국어 사전. 「언론」. 『구글 한국어 사전』.
https://ko.fm/6Az(2024.07.05. 접속).
국가기록포털. 「필화 사건」. 『국가기록포털』.
https://theme.archives.go.kr/next/pen/viewHistory.do(2024.07.16. 접속).
김소연. 「황상무 ‘회칼 테러’ 언급 논란, 결국 사과 마무리」. 『한국경제』. 2024.03.16.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1647177 (2024.07.27. 접속).
김수지. (2016). 대안언론의 공정성 인식과 실천 : 뉴스타파 사례분석. [석사학위, 서울대학교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DBpia.
김아영. 「12년 전, 삼성의 경향·한겨레 광고 중단…지지광고로 저항한 독자들」. 『한국기자협회』. 2020.02.05. http://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47222(2024.07.20. 접속).
김은규. (2005). 다윗과 골리앗을 넘어서 : 대안미디어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 틀과 그 함의. 한국언론학보, 49(2), 255-282.
김호기. 「신사회운동이란 무엇인가?」. 『참여연대』. 2000.03.01.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711074(2024.07.30. 접속).
남보라. 「추상적인 ‘공정성’ 조항...방심위가 MBC 폭풍 징계하는 근거였다」. 『한국일보』. 2024.04.23.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2316420004765(2024.07.22. 접속).
노지민. 「KBS, 시사교양국 폐지 추진」. 『미디어오늘』. 2024.07.13.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443(2024.07.13. 접속).
두산백과. 「대안언론」.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7044(2024.07.24. 접속).
민주언론시민연합. 「걸어온 길」. 『민주언론시민연합』
https://www.ccdm.or.kr/ccdm_history/213039(2024.06.30. 접속).
박서연. 「[분석] 2024년 한국 언론은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 『미디어오늘』. 2024.05.17.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033(2024.07.20. 접속).
박채연. 「방심위·선방위, 무더기 법정제재에 소송비용도 ‘역대급’」. 『경향신문』. 2024.05.12.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5121447001(2024.07.22. 접속).
배정근. (2010). 광고가 신문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54(6), 103-128.
배형신. (2013). 팟캐스트 대안언론의 의제 및 역의제 설정 효과 분석. [석사학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일반사회교육전공]. DBpia.
언론노조. 「[보도자료] 91.5%…기업이 가진 한국경제신문 지분」. 『전국언론노동조합』. 2022.11.29.
https://media.nodong.org/news/articleView.html?idxno=29990(2024.07.21. 접속).
엄재희. 「‘역사저널 그날’ 낙하산 MC 거부해 폐지 위기」. 『PD저널』. 2024.05.14.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166(2024.07.27. 접속).
우리역사넷.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h71_0040_0050_0040_0040(2024.07.16. 접속).
이나연·김창숙. (2023). 포털에 게재된 주요 언론사 기사의 타블로이드화. 미디어,젠더&문화, 38(2), 181-228.
이다겸. 「“‘추적 60분’ KBS 보도본부 이관, 사실상 시사교양국 해체”」. 『매일경제』. 2024.07.16.
https://www.mk.co.kr/news/broadcasting-service/11068394(2024.08.02. 접속).
이완기. 「KBS, 박민 사장 취임 첫날 뉴스 앵커 전면 교체」. 『서울경제』.
2023.11.13.https://www.sedaily.com/NewsView/29X7YCPNVP(2024.07.25. 접속).
이진로. (2010). 한국의 광고를 통해 본 자본과 언론. 2010년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철 학술대회, 165-186.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직 소개. 소개」. 『전국언론노동조합』.
https://media.nodong.org/com/com-1.html(2024.06.30. 접속).
정철운. 「윤석열 정부 2년 만에...세계 언론자유지수 62위 ‘추락’」. 『미디어오늘』. 2024.05.03.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777(2024.07.05. 접속).
표준국어대사전. 「지하신문」. 『표준국어대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b96297e10f9f48b09d08f6bdeafb34d9(2024.07.10. 접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944(2024.07.16. 접속).
허문명. 「박정희 정권 언론탄압...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 『동아일보』. 2013.07.16.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130716/56469261/1(2024.07.20. 접속).
KBS. 「[애리조나 프로젝트] “테러로는 언론의 입을 막을 순 없다.”」. 『KBS뉴스』. 2007.06.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1378491(2024.08.03.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