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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Sep 02. 2024

[87호] 여는 글

 안녕하세요.     


 언제나 그렇듯,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상투적인 인사가 오늘은 조금 무겁게 느껴집니다.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기 때문일 겁니다.     


 무력감에 대해 생각합니다. 확연한 것이 없고 모호하기만 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주춧돌 없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말은 언어로 구현되지 못하고 혀끝에서 맴돌지만, 내뱉는 것보다는 삭히는 게 편하다며 홀로 위안 삼습니다. 들어야 할 목소리는 점차 들리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섬멸하고, 우린 그 속삭임을 당연한 듯 금세 잊습니다. 진실을 짓누르는 사실이 이곳에 만연합니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글만이라도 명확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자엔 망각과 모순만이 넘칩니다. 수만 겹의 허물이 덧씌워진 문장은 한없이 두껍고 길어져, 본질과 동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작열하는 의지는 원래도 없었으나, 타오르던 알량한 불길마저 전소된 기분입니다. 당위를 좇는다 생각했는데, 무엇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불확실성만이 유일한 이치일지도요.     


 그럼에도, 근맥은 근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그 ‘무언가’를 찾으려 애써 봅니다. 확실한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순적인 사회와 우리, 중첩되는 감정, 그것들의 통로에 대해 말해 봅니다. 뭉개지는 단어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고민해 보기도 합니다. 무력함과 허망함이 집어삼켜도, 한 번 더 해야만 하는 말들을 골라냅니다.      


 어지럽고 추상만이 가득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으려던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당신께 와닿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모쪼록 이번 근맥이 그런 존재이길 바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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