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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근영 Oct 13. 2016

당신은 부탄에서 왔나요?

마지막 샹그릴라, 부탄을 다녀와서


최근 인터넷에는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한 글이나 영상이 자주 등장한다. 부탄과 가장 많이 연결되는 ‘행복’이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일본 작가가 쓴 책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에는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느끼다’라는 부제까지 달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곳, 마지막 샹그릴라로 불리는 나라, 부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며칠 전 나는 9일간의 부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직접 가보고 느낀 점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부탄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1990년대 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일하던 나는 겨울이면 주말마다 스키를 타러 다녔다. 크리스마스 휴가에 친구들과 스위스에서 스키를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따스한 겨울 햇살 쪽으로 온몸을 내밀고 있던 내게 강한 프랑스 억양을 가진 여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Excuse me. Are you from Bhutan?"

'부탄? 북한? 뭐라고 발음한 거지??'

그녀의 말을 빨리 이해하지 못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탄 사람이든 북한 사람이든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음... 뭐라고요?"라고 되묻는 내게 그녀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부탄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했다.

부탄은 강대국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다. 참고 구글지도


히말라야 산맥 부근 네팔 근처에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난생처음 받아보는 질문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일본 사람 또는 중국 사람이냐는 소린 수없이 들었어도 부탄이라니! 크기도 작고 가난한 나라로만 인식되어 있던 부탄에서 왔냐는 말에 왠지 기분이 상했다.

"No. I'm from South Korea."

유난히 South를 강조하며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못내 아쉬워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옆에 있던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얘들아, 내가 오늘 좀 없어 보이니?"

패션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패셔너블하고 도회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었기에 어째서 빈국에서 온 사람 같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아냐, 걱정 마. 넌 오늘도 여전히 이쁘고 부티나 보여"

이탈리아 남자들은 늘 준비된 아첨꾼이다.

"내 생각엔 저 여자분이 부탄이라는 나라에 다녀온 적이 있나 봐. 네가 부탄 사람이 아니라서 실망하는 걸 보니 거기가 좋았었나 본데?"

긍정적인 친구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일본 사람이냐는 말보다 중국사람이냐는 질문이 더 기분 나빴을 때였다. 하물며 부탄 사람이냐는 말에 내 표정은 일그러졌고 쉽게 펴지지 않았다. 물질의 가치를 중히 여기던 나는 그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 이후 내 모습을 더 화려하게 꾸미는데 신경을 썼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시간이 지나자 부탄이라는 단어는 나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십수 년이 지나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몇 달 전부터 사 둔 론리플래닛 부탄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보게 된 GNH에 관한 기사.

경제성장 위주의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에서 벗어나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든 나라는 다름 아닌 부탄이었다. 왜였을까.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 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은행에서 고액자산가의 자산을 관리하는 PB로 일하면서 물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늘 의문을 품고 있던 내게 GNH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은행 잔고에 수십억, 수백억이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벌려는 부자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투자상품의 수익률과 직결되는 주가지표에 매일 촉각을 세우고 들여다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민총행복 지수는 세상의 어떤 경제지표보다 강렬한 울림이 있었다. 따뜻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났다. 직접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한지 알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른 나는 부탄에 있는 여행사로 이메일을 보냈고 예상을 깬 빠른 답변과 함께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례적인 폭염을 기록하던 대도시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태국 방콕에서 출발하는 부탄 에어라인에 오르며.


부탄의 언어는 종카어이고 문자는 티벳문자와 같다.


부탄 에어라인의 기내식 봉투



한국에서 부탄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멀다. 직항이 없어 방콕이나 카트만두 또는 인도의 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국영항공인 '드룩 에어'와 민영항공인 '부탄 에어라인'이 있고 비행기가 작다. 개별 자유여행이 제한되어 있어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여행 체류비를 미리 송금해야 비자 발급이 된다. 발급비용은 미화 40불. 연간 정해진 숫자만큼의 방문객에게만 비자가 발급된다. 왜냐하면 'High Value, Low Impact' 즉, 방문객 수를 제한해서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관광정책이 있기 때문이다. 1인당 하루 체류비는 미화 250불(비수기 200불)이며 3인 미만일 경우 대개 30-40불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체류비에는 숙박비, 세 끼 식사, 차량, 가이드, 입장료가 전부 포함되어 all inclusive package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스나 알콜음료는 별도로 돈을 내야하며 기념품 구매비용과 가이드 팁은 따로 준비해 가면 된다.

9일간의 일정으로 예상 경비를 계산하니 자유여행으로 몇 개국은 다녀올 수 있는 금액이 나왔다. 잠시 망설였으나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몸살을 낫게 하려면 대가를 치러야겠지. 높은 여행 경비를 내고 다녀올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경험한 자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자그마한 파로공항에 내려 자유롭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아시아에서 가장 붐비는 여행지 방콕에서 스톱 오버 후 이른 아침 부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성수기 중에서도 방문객이 가장 많다는 10월이라 그런지 작은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로 섞여있었다. 인도 콜카타를 경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로 공항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 사이를 아슬아슬 스치듯이 활공하던 비행기가 마침내 활주로에 닿았다. 파란 가을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포옹하듯 맞아주었다.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자그마한 공항의 입국장으로 걸어 나오며 신기한 듯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보였다. 도착과 동시에 나도 이미 행복해져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깡총거리기 시작했다.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 파로공항 도착터미널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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