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로 돌아오는 마음

by 김혜민

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 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한동안 무엇도 쓰러 오지 못했어요. 잊은 듯 내버려 둔 이 공간은 그 사이에도 여전히 '내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네요. 기다리다 지쳐 휑하니 가버리지도 않았고, 서운해하며 등을 돌리지도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덤덤히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리네요.


내가 없는 동안에도 나의 자리가 그대로 있는 것, 이게 대단히 안심이 되는 거군요. 왜, 한동안 떠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은 설렘보다는 조금 더 두려움에 가깝잖아요. 저는 그렇더라고요.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잠시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가는 길에는 마음이 급해져요. 내가 앉았던 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다른 누군가가 앉아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몇 주 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다시 연구실에 나가는 첫날은 괜스레 '내 자리가 없어졌으려나, 누구 다른 사람이 앉아 있으려나' 싶은 근거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들던 기억이 있어요. 실제로는 그럴 일이 없는데도 말이에요. 인간이 살면서 하는 걱정 중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던데, 전형적인 쓸데없고 근거 없는 걱정인 거죠.



'꽃자리'라는 예쁜 말이 다 있네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것만 해도 안심인데, 그 자리가 '꽃자리'이기까지 하다니, 그런 욕심을 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앉은 이 자리가 꽃자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꽃자리에 앉으면 상쾌한 향기가 솔솔 날까요. 엉덩이가 푹신푹신할까요. 감옥도, 쇠사슬도, 동아줄도 스스로 만든 굴레라면 꽃자리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미 꽃자리에 앉아 있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근거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리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주렁주렁 달린 불안의 추들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요.


너는 꽃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가시 방석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시인의 단언에 기대고 싶어요. 아직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지만, 저렇게나 딱 잘라 말하는 걸 보면 진짜 꽃자리가 맞는 게 아닐까요.


꽃자리든, 가시 방석이든, 일단은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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