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브런치스토리에서 시작합니다

by 김혜민

인사드려요.


이름은 김혜민입니다. 사는 곳은 네덜란드예요. 가족과는 한국어로, 그 외의 이들과는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소통하며 살고 있어요. 낮은 하늘에 닿아 있는 키 큰 나무들, 이름은 몰라도 안면은 있는 크고 작은 새들, 평범하고 소박한 이웃들과 작은 동네를 나눠 쓰고 있어요.


북해를 끼고 앉은 네덜란드는 지금 긴 겨울을 지나는 중입니다. 밤은 밤답게 깜깜하고 조용해서 깊은 잠을 자기에 좋아요. 그런데 아침도 밤같이 깜깜해서 잠에서 깨기가 힘들지요. 낮은 밤 못지않게 어둑해서 햇빛을 기대했다간 실망하는 날이 구 할입니다. 해의 빛에 의지할 수 없는 길고 어두운 북유럽의 겨울은 스스로 빛을 내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어요.


현지 재료로 비슷하게 만든 한 끼의 한국 밥상은 빛입니다. 책장에서 뽑아 든 한글책 한 권도 빛이고, 오랜만에 찾아 듣는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 한 곡도 빛이죠. 이런 빛에 마음과 생각이 반사되어 만들어진 형상을 모국어 문장으로 써내면서 타국에서의 섬 같은 일상을 밝힐 빛을 모으고 있어요.


글쓴이가 보는 풍경, 듣는 소리, 쓰는 언어, 먹는 음식, 맡는 냄새, 느끼는 온도가 글을 만들어 냅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누구라도 고유한 글을 쓸 수 있지요. 서로 다른 일상을 사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의 고유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속에 담긴 풍경과 생각을 짐작하고 더 나아가 공감하는 과정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신비한 상호작용입니다. 다채로운 글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이 한데 모여 있는 브런치스토리는 이야기로 만드는 포틀럭(potluck) 파티입니다. 저도 제 이야기 담긴 솥 하나 번쩍 들고 파티에 함께하려고 왔어요. (논-파티형 인간이라 실제 파티였다면 안/못 왔을 거예요)





Mauritshuis, Den Haag | Gerard ter Borch, Woman Writing a Letter, c. 1655


그림에 대한 적극적인 기호는 없어요. 화가 혹은 화풍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도 없고요. 우연히 방문한 미술관에서 지나치듯 본 그림이 무단히 마음에 들면 작가와 제목과 시기 정도 찾아보는 소극적이고 주관적인 관람인입니다. 방방곡곡에 미술관이 널려있는 거주 국가의 특징 덕분에 소극적인 관람인에게도 어렵지 않게 대단한 화가들의 명화들을 마주칠 기회가 종종 생겨요.


그동안 스쳐간 수많은 그림들 중에 가장 많은 눈길을 주고 엽서도 사고 정보도 찾아본 그림이 바로 이 작품, '편지 쓰는 여성(Woman Writing a Letter)'이에요. 헤라르트 텔보르슈(Gerard ter Borch, 혹은 Terborch)라는 화가의 작품이지요. 네덜란드 헤이그(The Hague)에 있는 마우리츠하우스(Mauritshuis) 미술관에 가면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미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ral Earring)'를 만날 수 있는데요, 그 소녀의 이웃이 바로 이 편지 쓰는 여성입니다. 같은 전시실, 같은 벽에 두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어요. 그 벽면 앞에 서 있는 관람객들의 시선은 대부분 진주 귀걸이 소녀에게 향해 있지만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자그마한 액자에 담긴 편지 쓰는 여성이 담담히 앉아 있지요. 바로 옆에 슈퍼스타가 있는데도 주눅 들지 않고 차분하고 평온하게 앉아 본인이 써야 할 것을 쓰고 있는 그녀의 잠잠함은 볼 때마다 감동이에요. 첫눈에 반한 이유입니다.


텔보르슈 선생님은 주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친밀한 시선으로 그렸대요. 특히 이 편지 쓰는 여성은 베르미어 선생님께도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연결 고리가 바로 저 머리카락 끝에 묶여 달랑거리는 파란 리본에 달린 진주 장신구라고 해요. [마우리츠하우스 웹사이트에서 그림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그래서 진주 귀걸이 소녀가 파란색 머릿수건을 두른 채 동그란 진주 귀걸이를 걸고 있는 모양이에요.


편지 쓰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러움입니다. 부러워서 반했어요. (그걸 질투라고 하나요) 책상 덮개를 한쪽 옆으로 밀어 두고 종이와 잉크병을 안전하게 놓은 채 바른 자세로 앉아 펜을 들고 집중하고 있어요. 소음도, 방해도 없을 것 같은 공간에 곧게 앉아 거북목도 없이 쓰는 행위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그녀가 부러워요. 그녀도 나름대로 인생의 아픔과 슬픔이 있겠지요. 평온한 표정을 하고선 누군가에게 욕을 퍼붓는 편지를 쓰고 있거나 과도하게 징수된 세금을 돌려 달라 항의하는 편지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렇다면 더 부럽네요.


미술관에 가도 기념품에는 별 관심이 없는데 그녀를 만난 날에는 마우리츠하우스 기념품 가게에서 이 그림의 엽서를 샀어요. 집에 꼭 데려가야겠더라고요. 지금 그녀는 제 책상 왼쪽 벽면에 걸린 코르크 보드에 소중히 끼워져 있습니다. 매일 그녀를 쳐다보며 잃어버린 '나의 것'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편지 쓰는 그녀처럼 하루에도 몇 시간씩 몰두가 주는 평온 속에 머무르곤 했던 지난날들의 기억이 있어요.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려보니 그 평온이 이제 없더라고요. 여기저기 뒤져도 보고 기억을 더듬어도 보았지만 아직 되찾지 못했어요.


일상 속에는 펑펑 울 수 있는 공간도, 바락바락 화를 낼 수 있는 공간도, 안절부절 불안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도 없지요. 제때 울고, 제때 화내고, 제때 불안해야 그 슬픔과 분노와 불안이 나의 안과 밖을 점령하지 않고 배수로를 따라 물이 흘러 나가듯 배출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고여있는 감정들이 있어요. 고여있는 눈물과 분노와 불안의 밑바닥에 오롯한 몰두와 평안이 잠겨버린 것 같아요. 조금씩 '적는' 행위를 통해 고여있는 것들을 조금씩 퍼내어 보려고 해요. 물리적으로 가지지 못한 해소의 공간을 브런치스토리에 지으려고요. 울어도 되고 화내도 되고 무서워도 되고 불안해도 되는 아늑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글로 지으려고 해요.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하고 있으면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 무거운 다리를 겨우 이끌어 한 발자국 옮겨 놓다 보면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찾고 있던 잃어버린 평안과 중간 어디쯤에서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적기를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을 적어 보려고 해요.


첫 번째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쓰고 있는 논문 한 편에 대한 기록입니다. 국제법/인권법 분야 박사 학위 논문인데, 막연한 두려움과 공허함을 무릎 위에 얹은 채로 매일 미완성인 글 앞에 꿋꿋이 앉습니다. 무릎 위에 놓인 이 두려움과 공허함은 몇 해 전 인생의 큰 사람을 잃은 후에 찾아왔는데 여전히 놓인 채로 있어요. 논문 자체를 브런치스토리에서 소개할 기회는 없겠지만 논문을 마무리선까지 끌어가는 과정은 적어두려고 해요. 「지지부진한 날의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상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큰 상실을 슬퍼할 기회를 놓친 저에게 지금이라도 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 빈소 같은 글들입니다. 이 개인적인 기록은 앞으로 어떤 것을 적든지 그전에 반드시 먼저 채워야 할 필연적인 첫 단추입니다. 「상실 거두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네다섯 편의 글이 한 묶음이 될 예정입니다.


세 번째는 ‘아주 작은 책가게’에 대한 기록입니다. 책가게는 네덜란드에 있는 한국책 독자들을 위한 책 공유의 공간이에요. 여러 손을 거쳐 책가게로 온 책들이 여러 손에서 읽히는 작은 공간입니다. 한국의 후원회원들이 손수 골라 십시일반 후원해 준 책들로 꾸려진 공유서가를 네덜란드의 공유회원들이 서로 배려하며 이용하고 있어요. 보증금이나 연체료 같은 수동적 장치 없이 소통과 신뢰에 기대어 다정하고 능동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어디에도 선례가 없던 프로젝트라 2020년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실험의 연속입니다. 소소하지만 역동적인 책가게의 여정과 일상을 글로 남겨보려고 해요. 그 기록들은 「아주 작은 책가게를 돌보고 있어요」라는 이름으로 묶일 예정입니다.



(2025년 2월 12일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