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月

지지부진한 봄날의 기록

by 김혜민

2025년 3월 13일

지지부진의 날들을 살게 된 후부터 가장 무서운 존재가 달력이야. 어두운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깼어. 잠깐 정신이 든 틈새로 '3월 중순이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어. 무방비 상태로 펀치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 뇌가 핑 돌더라. 마음 놓고 자고 있는 먹이에게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사자처럼 공포가 얼굴과 심장 위를 사납게 올라탔어. 멍하니 방파제에 앉아있다가 어마무시한 파도에 잡아 먹히는 듯한 두려움이었어.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내려앉았어. 얼굴 정면으로 물세례를 맞은 듯 숨을 절반 밖에 쉴 수가 없었어.


괜찮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침대 위에 등을 세우고 앉았어. 어떻게 해야 이 불안을 품어 다독일 수 있을까. 아드리안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 그녀의 명상 수업을 무작정 틀었어. 일단 숨부터 다시 찾아오자 싶었거든. 다행히 아드리안의 목소리 덕분에 호흡이 잔잔해졌고 불안도 서서히 잦아들었어. 하지만 다시 잠들기에는 마음이 여전히 조마조마했어.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았네.


'하루 두 시간'을 목표로 세웠었잖아. 야심을 내려놓고 안심할 수 있는 걸음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두 시간 조차 이렇게 쫓아가기 벅찬 황새걸음일 줄은 몰랐어. 옛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야. 황새걸음을 못 따라가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보다 더 안쓰러운 건 학교 메일함을 못 열어보고 앞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야.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연말에 지도 교수들과 소통한 이후로 몇 달 동안 메일함 주변만 맴돌았어. 혹시라도 지도 교수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이메일이라도 와있으면 어쩌나 무서워서 그래. 잘 지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래.


그래도 오늘은 「국문 버전 연구 요약서」를 화면에 띄워서 출력까지 했네. 글자체가 마음에 들어서 기분이 좋더라. 상담 선생님이 '논문과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관계(personal and emotional relationship)가 형성되어 버려서 그렇다'라고 했어. 아무개랑 함께 일을 하다가 잘 안 풀리는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다 보면 결국 아무개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피하고 싶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거야. 논문을 작업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관계 맺음의 상대방처럼 인식하게 되어버린 거지.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 마당에 관계 회복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떨까 싶어. 논문과의 관계를 작은 것부터 다시 덧대어 꿰매어 보려고 해. '너 오늘 글자체 아주 잘 어울린다!' 칭찬을 날리면서 관계를 조금씩 회복해 보고 싶어. 오늘은 글자체 칭찬까지는 했다. 내용을 제대로 읽지는 못했지만. 선뜻 읽어지지 않는 이 마음이 뭘까.


마음 컨디션에 몸이 저항 없이 휘둘리는 게 힘든 일이네. 이렇게 기분에 취약한 인간이었나 싶어. 상담 선생님이 그랬잖아, 기분과 일은 별 상관이 없다고. 죽상을 하고도 읽고 쓸 수 있다는 거지. 현재 상태로는 기분의 높이가 낮아지면 에너지의 높이도 낮아져서 스타트 모터를 작동할 만큼의 전력도 공급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배터리의 방전인지. 스타트 모터의 고장인지. 점화 과정의 오류인지. 연료가 없는 건지. 아니면, 엔진이 빠져 있는 건지. 시동이 잘 안 걸리네.



2025년 3월 14일

오랜만에 잘 잔 밤이었어. 그래도 몸은 유난스럽게 무거운 아침이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뭐. 괜찮아. 잘 잤으니 됐어.



2025년 3월 18일

무게를 털어내고 싶어서 꾸역꾸역 운동을 하러 갔어. 운동을 끝내고 사우나에 앉아서 숨 쉬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말을 걸어오셨어. 네덜란드어로 하는 말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정신 바짝 차리고 들었지. 살이 안 빠지는데 이게 다 견과류 때문인 것 같다고 낯선 나에게 진지하게 털어놓으셨어. 아무래도 견과류를 끊기가 어려우신가 봐. 할아버지는 육군에 복무하시면서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로 파병을 여러 번 다녀오셨대. 그 이유로 7년 전에 조기 전역하셨고.


너는 무슨 일을 하냐 물으셔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어. 답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내가 연구하는 사람이 맞나' 하는 별 도움 안 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기 쫓듯 떨쳐내고 그냥 말해버렸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삼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기는 한데, 지금 상태의 나에게는 잠시 사양하는 게 나은 조언인 것 같아. 이미 너무 망설이고 조심하며 사니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그냥 뱉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더라고. 머리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입을 막으려고 할 때 모르는 척하고 입으로 불쑥 뱉어 버리면 그 말이 내 귀로 다시 들리면서 안심과 위로가 되더라고. '자기 확신'까지는 아닌 것 같고 '자기 확인'이랄까.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건네는 응원이 되더라. 대답을 잘한 것 같아.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자리를 떠나시며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Succes met jouw onderzoek." 네 연구가 잘 되기를 바란다. 견과류와의 애증을 고민하는 어느 낯선 할아버지가 내 삶을 응원했어. 그 할아버지는 내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응원을 주워 모아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나에게 응원 한 덩어리를 냅다 준거야. 그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그 하루를 가누어 주었어.



2025년 3월 19일

삼일 연속으로 밤마다 꿈을 꿨어. 늘 이렇게 출연진이 많더라.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들은 대체 어떻게 꿈에 나오는 거지. 사람이 많이 나오는 꿈을 꾸고 나면 잠을 자면서도 진이 빠져. 아침에 눈을 뜨면,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파티에 괜히 가서는 밤새 구석에 구겨져 있다가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온 기분이랄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 뱅뱅 돌고 있어. 무서운 기분이 자꾸 올라오는데 그렇다고 도망을 갈 수는 없으니까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고만 있어. 왜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지 조차 못하고 있는 건지, 뭐가 무서운 건지 생각을 해봤어. 내가 쓴 글이고 내가 낸 아이디어인데 마치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나를 모른 척할까 봐 무섭더라고. 너 누구야, 하며 백지 같은 얼굴로 안면을 싹 바꿀까 봐 무서워. 내가 쓴 글을 읽었는데 이해를 못 할까 봐 무섭고, 다 까먹어 버렸을까 봐 무서워.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렸을까 봐 두려워. 아무래도 마음에 벽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지?

실험을 해보려고. 나는 논문 쓰는 로봇이다. 논문 쓰는 기계다. 매일, 매번 주문을 외우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 보려고. 상담 선생님 말대로, '그냥 해보지, 뭐'를 실험해 보려고. 앞도 없고 뒤도 없이. 생각 없이.



2025년 3월 20일

아드리안의 명상으로 시작했어. 아드리안이 그러더라,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냥 항복하라고. 상담 선생님도 두 개의 원을 그리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잖아. 하나는 '염려의 원(Circle of Concern)'이고, 다른 하나는 '영향력의 원(Circle of Influence)'이라는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의 두 가지 개념이었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의 한국어판에 이 용어들이 어떻게 번역이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개념이 등장하는 본래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담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이해해 보면, 한 사람이 가진 유한한 에너지를 자신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에 집중시키면서 살면 보다 주도적인(proactive) 인생을 살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결국 '영향력의 원'이 점점 커져서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 반대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면서 살면 늘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영향력의 원'은 점점 쭈그러들어서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낭비하고 영향력도 줄어들어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기만 한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는 거지.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유한할 뿐만 아니라 한 번 사용한 시간과 에너지는 재사용도, 재활용도 불가능하다고 전제했을 때, 어떤 원에 집중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개념이더라고.



한 번 사용해 버린 시간과 에너지는 다시 사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멤버십 일시 정지하듯 사용을 잠시 멈출 수도 없다는 사실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더라. '타임아웃!'을 외칠 수 없을 때는 '항복!'을 외치는 것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겠구나.



2025년 3월 27일

테니스 수업을 받고 왔어. 공을 한 소쿠리 때려눕혔더니 속이 시원하네. 야스퍼 선생님이 포핸드 스윙을 가르쳐 줄 때 늘 하는 말이 있지. '너는 라켓을 왼쪽 어깨 위에서 왼손으로 잡으면서 끝낼 때 스윙이 더 안정적이고 공도 더 멀리 나가더라.' 라켓을 잡은 오른손이 같은 스윙을 하더라도 왼쪽 어깨 위의 왼손을 도착점으로 박아놓고 그곳을 향해 스윙을 하느냐, 아니면 목표 지점 없이 허공에 스윙을 하느냐가 공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거지. 같은 길을 가더라도 도착선이 그려져 있고 깃발도 박혀 있는 표시된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끝이 어떻게 생긴 지 모른 채 앞에 놓인 길만 줄줄이 따라가는 것이 같은 여정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게다가 왼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왼손을 만나기 위해 슝 돌아가는 라켓이 허공을 향해 돌아가는 라켓보다 안정된 마음이지 않을까. 나도 이 지지부진의 여행 끝에 결국 도착하게 될 지점을 그림으로 그려서 눈앞에 붙여둘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야.



2025년 3월 31일

타국에 살면서 함께 모국어로 말하고 듣고 웃고 울고 먹을 수 있는 '동행'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일 년에 한두 번도 없을 이런 기회를 지난 주말에 이틀 연속으로 누렸어. 3월을 마치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인가 싶어. 또 하나의 선물로 새로운 친구를 받았어. 찻잔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주황색 여우,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에 매일 목욕하게 해 줄게. 찻물 안에 잘 있는지 문득문득 들여다보게 되네. 괜찮냐고 괜히 물어보게 되고.


달력 한 장 넘기기가 참 무겁다. 4월은 그냥, 조금 덜 무서웠으면 좋겠어.

삼월아, 때때로 무섭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고마웠어. 그래도 살아냈으니까. 내년에 또 만나. 그때는 이 시간의 고개를 넘어내고 난 후의 나랑 만나면 좋겠다. 안녕.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더디게 가는 경험